영화속클래식 세상의 모든 아침 - 이승과 저승을 초극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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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8회 작성일 16-02-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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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음악의 끝은 죽음이라네. 난 사기꾼일세. 아무짝에도 소용없고 이룬 게 없어. 감미롭고 화려해도 부끄러울 뿐이야. 하지만 그는 음악 그 자체였지. 그는 불꽃같이 세상을 보고 저세상을 밝혀주었지. 그의 열망은 가늠할 수 없었네. 그런 스승님이 계셨다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은 17세기 프랑스의 뛰어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생뜨 콜롱브(Monsieur de Sainte Colombe)와 그의 제자 마랭 마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늙은 마랭 마레가 궁정악사들 앞에서 자신의 스승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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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쿠프랭 [세번째 어둠 속에서의 가르침] /
베로니크 장스, 레 탈랑 리리크, 엠마누엘 발싸, 크리스토프 루세
 
1JOD음악 재생
2CAPH음악 재생
3LAMED음악 재생
4MEM음악 재생
5NUN음악 재생
6Jerusalem, convertere ad Dominum Deum tuum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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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콜롱브는 사랑하는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전원 속에서 두 딸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랭 마레라는 젊은이가 찾아와 그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한다. 처음에 콜롱브는 거절하지만 음악에 대한 마레의 열정에 감동한 나머지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느 날 마레가 궁정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쫓아낸다. 진정한 음악보다 세속적인 출세에 더 마음을 쏟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스승에게 쫓겨난 마레는 어느덧 연인 사이가 된 스승의 딸 마들렌으로부터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비올의 모든 기법을 배운다. 이렇게 실력을 쌓아 궁정 음악가가 되는데 성공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마레는 마들렌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들렌은 그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마들렌의 병이 깊어지자 콜롱브는 궁전에 사람을 보내 마레를 데려오도록 한다. 마들렌은 마레가 직접 연주하는 [꿈꾸는 소녀]를 마지막으로 들은 후, 그가 자기에게 선물한 구두끈으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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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속에서 스승과 제자는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제공: 네이버 영화>


이제 나이가 들어 스승의 음악이 진정한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된 마랭 마레. 그는 매일 밤 말을 타고 스승의 오두막집으로 가 밖에서 몰래 스승의 비올 연주를 들으려고 한다. 하지만 가끔 중얼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비올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3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스승의 오두막집을 찾아간다. 그러다가 달빛이 유난히 환하던 어느 날, 드디어 스승의 부름을 받고 오두막으로 들어가 두 사람이 함께 비올을 연주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반목해온 스승과 제자가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전신(前身)으로 알려진 악기다. 중후하면서도 비단결같이 섬세한 소리로 17세기를 풍미하다가 17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몇 백 년 동안 잊혀졌다가 1960년대 중반, 옛 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이른바 원전연주 붐이 일면서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마니아를 제외하면 고악기와 고음악은 아직도 생소한 분야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이렇게 생소한 고음악의 매력, 그중에서도 특히 비올라 다 감바의 매력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에는 세계적인 고음악 연주자인 조르디 사발과 콩세르 나시옹이 연주하는 콜롱브와 마랭 마레의 비올라 다 감바 작품 [꿈꾸는 소녀], [슬픔의 무덤], [E단조의 환상곡], [꼬마 숙녀], [부드러운 가보트], [희롱], [아라베스크]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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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비올’, 또는 ‘비올드 감바’ 라 불리우는 고악기의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제공: 네이버 영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음악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아침]은 깊은 정적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오로지 음악과 시적인 내레이션, 영상으로 모든 것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그 침묵의 근저에 콜롱브의 ‘아내를 잃은 상실감’이 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말을 잃었다. 오로지 침묵 속에서 아내를 그리워한다. 그 그리움이 너무 사무쳤던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죽은 아내의 환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내는 시시때때로 그 앞에 나타나 그리움에 지친 그에게 다정한 미소를 보낸다. 그렇게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가 사라지곤 한다. 아내의 환영이 사라지자 콜롱브는 화가를 시켜 아내가 앉아 있던 자리를 그대로 그림으로 그리게 한다. 어둡고 음울한 배경, 짙은 초록색 탁자 위에 놓여있는 술병과 술잔, 과자 접시. 그 생기를 잃은 색조가 삶은 덧없고, 인생은 유한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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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롱브는 떠나보낸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자연 속에 오두막을 짓고 음악과 아내를 생각하며 지낸다. <제공: 네이버 영화>


콜롱브의 상실감을 [세상의 모든 아침]은 너무나 아름다운 시적(詩的), 음악적 이미지로 표현한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콜롱브가 교회에서 촛불 끄는 의식에 참여한 후 아내의 환영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교회에서 의식을 마친 콜롱브는 아내와 함께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한 콜롱브가 아내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아내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강가로 간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이다. 거기서 콜롱브는 아내와 작별한다.

바로 이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있다. 프랑스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이 작곡한 [르송 드 테네브르(Lecons De Tenebres)]이다. 쿠프랭의 가문은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파리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유명한 음악 가문이었다. 쿠프랭은 역시 음악가인 큰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썼는데, 두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그를 ‘대(大) 쿠프랭’이라고 부른다. [르송 드 테네브르]는 쿠프랭의 대표적인 성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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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시대에는 성주간에 시편을 읽으면서 촛불을 하나씩 끄는 의식이 있었다. <제공: Corbis>


[르송 드 테네브르]는 ‘어둠 속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가톨릭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리기 위해 사흘 동안 치러지는 성주간 전례에서 노래되었다. 쿠프랭이 활동하던 루이 14세 시대에는 이것이 수녀원에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음악적 이벤트였다고 한다. 의식은 성주간의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새벽에 시작해 아침까지 계속되었는데, 제단 앞에 나뭇가지 모양의 촛대에 촛불 15개를 켜놓고 시편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는 식으로 의식이 진행되었다. 그중 마지막 촛불은 제단 뒤에 감추어 놓았다가 마지막 기도를 할 때 앞으로 가지고 나와 기도가 끝나면 끄도록 되어 있다.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는 것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차례로 버림받는 상황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의식의 마지막 순간, 촛불이 모두 꺼진 어둠 속에서 소프라노가 청아한 목소리로 [르송 드 테네브르]를 불렀다.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빛나는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 이 의식은 당시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연주에는 오페라 가수들이 동원되었다. 성주간에는 오페라 극장이 문을 닫고, 즐거움을 위한 모든 공연이 금지되었지만 사람들은 오페라가 공연되지 않는 기간에도 [르송 드 테네브르]를 통해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음악으로서 [르송 드 테네브르]를 감상하기 위해 성주간 의식에 참여했다. 경건한 예배의식이 세속적인 음악 이벤트로 변질된 것이다. 프랑스의 한 신부는 종교적 심성에 충만한 슬픔을 표출하는 유일한 기회가 세속적인 여흥으로 변질된 것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르송 드 테네브르]의 가사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비가(悲歌)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원전 586년에 멸망한 예루살렘의 운명과 이스라엘이 지은 죄, 예수의 고난에 대해 처절하게 통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레미야의 애가에 그동안 많은 작곡가들이 곡을 붙였다. 쿠프랭의 [르송 드 테네브르]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쿠프랭은 세 편의 [르송 드 테네브르]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의 롱샹 수녀원의 요청으로 성금요일을 위한 [르송 드 테네브르]를 작곡했으며, 그 후 수요일과 목요일을 위한 곡도 작곡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요일을 위한 [르송 드 테네브르]만 남아 있다. 이것은 첫 번째 가르침, 두 번째 가르침, 세 번째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것은 이 중 세 번째 가르침이다.

노래는 가사를 붙이지 않고 히브리어 알파벳을 노래하는 서창으로 시작한다. 라틴어 가사는 모두 5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절을 시작하기 전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노래하는 서창이 나온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주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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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콜롱브의 큰 딸 마들렌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모든 비올 기술을 마랭에게 가르쳐 주지만 결국 그에게 버림을 받는다. <제공: 네이버 영화>



적들이 뻗은 손이 예루살렘의 모든 보물에 닿았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자들이
성소에까지 쳐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당신께서 명하셨던 대로
공동체에 들이지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온 백성이 탄식하며 빵을 찾고
모든 귀중한 보물을 먹을 것으로 바꿔
기운을 차리려 합니다.
보소서, 주님, 살펴보소서
제가 멸시만 당합니다.

적들이 뻗은 손이 예루살렘의 모든 보물에 닿았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자들이
성소에까지 쳐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당신께서 명하셨던 대로
공동체에 들이지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온 백성이 탄식하며 빵을 찾고
모든 귀중한 보물을 먹을 것으로 바꿔
기운을 차리려 합니다.
보소서, 주님, 살펴보소서
제가 멸시만 당합니다.

길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여
멈추어서, 살펴보시오.
이내 아픔 같은 것이 또 있는지.
주님께서 고통을 내리시어
이루고 말리라 말씀하셨던
진노의 날의 형벌을 내리셨으니.

높은 데서 불을 내리시어
내 뼛속까지 처박으시고
나를 불타 없어지게 하셨네.
내 발에 그물을 펼쳐 놓으셔서
뒤에서 나를 낚아채셨다오.
그분께서 나를 황폐하게 하시어
온종일 이 몸은 괴로워한다네.

죄악의 멍에는 단단히 매여 나를 짓누르네.
그분께서 손으로 두르셔서
내 목 위에 올려놓으셨기에
나를 쇠잔케 한다오
주님께서는 나를 그들의 손에,
대항할 수 없는 그들에게 넘기셨다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주 너의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가사를 보면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통해하는 예레미야의 통곡이 지척에서 들리는 듯하다. 음악적으로 이 노래에는 그레고리오 성가 양식과 프랑스 양식, 이탈리아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먼저 그레고리오 성가의 영향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부르는 각 절의 서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 절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서창이 나오는데, 음악적으로 가장 청아하고 아름다운 대목이다. 두 명의 소프라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천상의 멜로디를 쏟아낸다. 그런 다음 라틴어로 비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노래에서는 하나의 음절에 여러 개의 장식음이 붙는 대목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는 전형적인 프랑스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쿠프랭은 여기에 이탈리아 양식을 접목시켰다. 그 당시 작곡가들 사이에서 이탈리아 양식을 모방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있었다. 가사의 의미나 억양을 그대로 살린 작곡 기법과 자유로운 화성, 갑작스러운 전조, 장조에서 단조로의 전환, 반음계의 빈번한 사용에서 이탈리아 양식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프랭은 폭발적이거나 엄청난 극적 효과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통곡 속에서도 절제와 격조를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쿠프랭은 “나는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좋아하지 깜짝 놀라게 하는 음악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했는데, [르송 드 테네브르]도 이런 그의 음악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강렬하거나 무거운 음악은 자제했다. 오페라도 작곡하지 않았고, 관현악도 작곡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오르가니스트 임에도 불구하고 오르간 곡도 거의 작곡하지 않았다. 음악가로서 그의 천재성과 개성은 보다 작고 소박한 양식, 예를 들면 하프시코드 독주곡이나 실내악, 그리고 독창이나 2성, 3성을 위한 성악곡에서 진가를 발휘하는데, 두 명의 소프라노를 위한 [르송 드 테네브르]는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본래 성주간에는 악기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융통성은 있었던 것 같다. 쿠프랭의 [르송 드 테네브르]는 베이스 비올과 오르간 반주가 있다. 하지만 악기는 멜로디에 화음을 맞추어주는 정도지 절대로 노래를 능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마지막 촛불까지 모두 꺼지고 어둠 속에서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르송 드 테네브르]. 음악을 듣는 우리는 ‘어둠 속의 가르침’보다 ‘어둠 속의 울림’에 더 깊이 매료된다.

“세월도 우리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소.”

배를 타고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는 아내에게 콜롱브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의 죽음을 끝내 인정할 수 없었던 콜롱브. 그 슬픔이 통곡하는 예레미야의 비가처럼 가슴 저리게 어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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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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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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