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하녀 - 상류층에 대한 냉정한 경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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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0회 작성일 16-02-0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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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TV 드라마에 클래식을 좋아하는 부잣집 사모님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놓고 짐짓 음악에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녀에게 클래식은 ‘남들과는 다른 삶’, ‘고상하고 품격있는 삶’의 표상이었다. 그래서 새로 시집온 평민(?) 출신 며느리가 클래식에 문외한인 것을 몹시 못마땅해 했고, 이런 며느리 앞에서 인터넷 검색 수준의 클래식 정보를 늘어놓으며 묘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우아한 표정으로 모차르트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이른바 ‘고상하게 노는 것’으로 남들과의 차별성을 추구하는 사람 특유의 자부심과 우월감이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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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중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La mamma morta)] / 몽세라 카바예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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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는 상류층 가정의 불륜, 살인, 비틀린 욕망 등이 불러온 파국과 몰락을 그린 작품이다영화 정보 보러가기


하지만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역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가는 클래식을 빌미로 ‘짐짓 고상함을 가장한’ 사모님을 희화화시킴으로써 우리 시대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비웃으려 했다. 사모님의 허영심이 너무나 빤히 보이기에 우리는 그녀를 보고 웃을 수 있었다. 때로는 귀엽기까지 했다. 희화화된 사람은 증오나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저 가벼운 웃음이나 측은지심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상류층이 나오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가끔 드는 생각이 있다. 저것이 상류층의 참모습일까 하는 것이다. 왜 드라마에 나오는 부자들은 [서민 귀족]의 주인공 주르댕처럼 하나같이 몰취미에 무교양일까. 돈이 많으니 집을 꾸미는 데에도 남달리 신경을 썼을텐데, 살고 있는 집의 인테리어를 보면 그 요란함과 천박함이 삼류 모텔을 능가할 정도다. 비싸고 화려한 샹들리에와 가구, 벽지, 커튼, 장식품 그리고 벽마다 어김없이 걸려있는 이발소 그림. 이 모든 것들이 부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보고 ‘부자도 별것 아니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 희화화된 상류층은 작가에 의해 키치화(化)된 상류층인지도 모른다. 현실은 이와 다를 수 있다. 부자 중에 이발소 그림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예술에 눈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상류층의 취향은 심플하고 모던하다. 운동장처럼 넓은 거실에 꼭 필요한 가구만 들여놓고, 벽에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세계적인 거장의 추상화 한 두 점만 걸고 나머지 공간은 모두 비워두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클래식을 좋아해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즐겨 연주하고, 와인을 마시며 이탈리아 오페라를 듣는다. 그리고 뱃 속의 아이를 위해 마티스의 작품을 감상하고, 샤르트르의 연인이었던 시몬느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는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 나오는 상류층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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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에서 보기엔 남편 ‘훈’과 아내 ‘해라’의 관계는 아무 문제없는 행복한 부부처럼 보인다.





부잣집 하녀로 들어온 ‘은이’는 임신 중인 ‘해라’의 목욕과 마사지를 도와준다.




이혼 후 식당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가던 은이는 어느 날 한 부잣집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700평이나 되는 대저택에는 주인남자 ‘훈’과 그의 아내 ‘해라’, 그들의 어린 딸 ‘나미’ 그리고 오랫동안 집안일을 도맡아 해오던 집사 ‘병식’이 살고 있다. 은이는 병식의 지시에 따라 집안일을 하고 주인 내외의 시중을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피아노를 치는 습관이 있는 훈에게 와인이나 간단한 간식을 가져다주고, 쌍둥이를 임신 중인 해라에게는 목욕과 마사지를 해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은이는 훈의 가족과 함께 야외 온천이 있는 가족 별장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날 밤, 아내의 임신으로 오랫동안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훈이 은이의 방으로 들어온다. 은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훈의 몸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훈은 자신에게 몸을 허락한 대가로 은이에게 거액의 수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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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남자 ‘훈’은 어느 날 밤 와인 한 병을 들고 하녀 ‘은이’의 방으로 찾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집사인 병식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다. 병식은 훈의 장모에게 사위가 은이와 육체관계를 가졌으며, 그 결과 훈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훈의 장모는 딸 해라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사위 몰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은이 뱃 속에 있는 아이를 지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훈의 장모는 사다리에 올라서서 샹들리에를 닦고 있는 은이를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이 일로 은이는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검사를 받는 동안 의사로부터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이는 뱃 속의 아이에게 무한한 애착을 느끼며 반드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해라는 한의원을 찾아가 뱃 속의 아이를 유산시키는 약을 지어온다. 그리고는 그것을 은이가 먹는 보약 속에 섞어 놓는다. 유산시키는 약을 보약인 줄 알고 먹은 은이는 결국 뱃 속의 아이를 잃고 만다. 그 후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마지막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훈의 집을 찾아가 가족이 모두 보는 앞에서 목을 매달아 분신자살을 한다.

[하녀]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가 나온다. 별장에서 은이와 육체관계를 맺은 다음 날, 훈이 피아노로 치는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의 3악장이다. [템페스트]를 치면서 훈은 음식을 갖고 들어온 은이에게 가까이 오라고 고갯짓을 한다. 피아노 위에 거액의 수표가 놓여있다. 훈이는 피아노를 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은이에게 수표를 가지라고 얘기한다. 수표를 집어든 은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훈은 피아노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템페스트] 3악장의 현란한 선율이 잠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듯 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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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남자 ‘훈’은 ‘은이’와의 관계 후에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를 치면서 거액의 수표를 건네준다.


하혈을 한 은이가 병원에 실려간 후, 훈이 피아노를 치며 장모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가 연주하는 곡은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의 1악장이다. 짧지만 깊은 영감을 지닌 주재선율을 연주하며, 훈은 장모와 은이 뱃 속에 들어 있는 아이에 대해 얘기한다. 이 장면에서 구역질나는 상류층의 실체가 조금의 가감도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위는 자신의 불륜을 애써 모르는 척하는 장모 앞에 당당하게 말한다. 누가 감히 자기 애를 지울 생각을 했냐고. 그 말에 장모는 곧바로 꼬리를 내린다. 정말 보기만 해도 정나미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음악에 드리운 음영은 심오한데, 그 음악을 배경으로 나누는 등장인물의 대화는 역겹기 그지없다.

해라와 훈이가 와인을 마시며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듣는 장면도 생경하다. 여기서 나오는 오페라 아리아는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 중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이다. 영화 [필라델피아]에 삽입되어 더욱 유명해졌는데,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앤드류가 앙상한 팔에 링거를 꽂은 채 이 아리아를 듣는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활동했던 안드레아 셰니에라는 실존인물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오페라이다. 외교관이자 시인, 비판적인 저널리스트였던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정치를 일삼는 로베스피에르의 자코뱅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794년 6월,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에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르다노의 오페라에서 안드레아 셰니에는 백작의 딸 마들렌과 사랑하는 사이로 나온다. 하지만 혁명이 일어나 마들렌의 어머니가 살해당하고, 안드레아는 혁명군에게 체포된다. 하녀와 함께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건진 마들렌은 과거 자기 집 하인이었으나 지금은 혁명군의 우두머리가 된 제라르에세 안드레아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이때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어머니는 죽었어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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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녀]는 ‘은이’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 상류층 가정의 부조리, 몰락 과정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는 죽었어요. 폭도들이 내 방 바로 앞에서 어머니를 살해했지요. 어머니는 나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거예요. 그 끔찍한 밤에 베르시와 함께 가까스로 도망쳐 나오는데, 갑자기 검푸른 불꽃이 치솟으며 어두운 거리를 밝혔어요. 뒤를 돌아다보니 우리 집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 불타고 있었어요!

주위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였지요. 배고픔, 가난, 이별, 그리고 위험. 나는 병들어 갔고, 나를 위해서 착하고 순수한 베르시는 몸을 팔아야 했어요. 이렇게 나를 지켜주는 사람에게까지 불행을 안겨 주었어요.

(갑자기 막달레나의 눈이 빛나기 시작한다.)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 사랑이 다가왔어요. 사랑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속삭였죠.
그대는 살아야 한다. 내가 바로 생명이다. 그대가 찾던 것이 바로 내 눈 속에 있다.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그대의 눈물을 닦아 주리라. 나는 그대 곁에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주위가 온통 피에 물들고 진흙투성이라 하더라도 난 신성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난 저 높은 하늘로부터 이 땅에
내려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신이다. 내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 사랑!”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아리아는 강렬한 비탄과 절규,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다. 폭도들에 의해 집이 불타고 어머니마저 살해당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들렌은 어느 날 한줄기 빛을 보았다. 그것은 사랑. 그 사랑은 강렬한 생명의 힘으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강력한 신성의 힘으로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었다. 가사의 내용이나 음악 모두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매우 극적인 아리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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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의 마리아 칼라스. 그녀는 음악의 감정을 최대한 끌어내는 힘과 매력적인 목소리로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 인정받았다.


마리아 칼라스의 매력은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깊은 호소력과 폐부를 찌르는 강력한 에너지를 자랑한다. 꾀꼬리처럼 아름답기만 한 목소리가 가지지 못한 극적인 힘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는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강렬한 생명의 빛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녀]에서 이 노래는 아무런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훈과 해라가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장면에서 이 음악이 나오지만, 이들이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는 증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부부와 떨어진 자리에 어린 딸 나미가 앉아 있는데, 세 사람이 마리아 칼라스의 절절한 절규를 듣고 있는 장면이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 같다.

[하녀]에서 상류층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마지막에 은이가 목매달고 분신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제외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냉정하게 흘러간다. 상류층의 세련되고 고상한 취향을 보여주는 장치들, 예를 들어 베토벤의 음악과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 마티스의 그림, 보부아르의 책 같은 것들은 영화 속에서 ‘정서적으로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무심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등장인물을 희화화할 여지를 박탈할 뿐이다. 희화화할 수 없기에 웃어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기괴한 부조리극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냉정하게 경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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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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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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