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엘리자베스 - 인간이 아닌 나라와 결혼하기로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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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4회 작성일 16-02-0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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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카푸르 감독의 [엘리자베스]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엘리자베스 이전에 메리 1세가 통치하던 1554년에서부터 시작한다. 메리 여왕은 헨리 8세와 그의 첫 아내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아버지인 헨리 8세가 자기 어머니를 왕비에서 몰아내고 앤 불린을 두 번째 왕비로 맞이한 후 공주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헨리 8세의 마지막 부인인 캐서린 파에 의해 간신히 공주의 지위를 회복했으며, 헨리 8세의 사후 왕 위를 물려받은 이복동생 에드워드 6세가 16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면서 여왕 자리에 올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메리는 왕 위에 오르자마자 로마 가톨릭을 옹호하고 신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폈다. 이 시기 수많은 개신교 성직자와 신도들이 박해를 당했는데, 사형에 처해진 사람의 수가 무려 3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메리 여왕은 ‘블러드 메리(피의 메리)’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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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모차르트 [레퀴엠] 중 제1곡/ 윌마 리프, 베를린 필하모닉(연주), 카랴얀(지휘), 볼프강 마이어, 비엔나 악우회 합창단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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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블러드 메리’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반역죄를 뒤집어쓴 신교도들이 모진 고문을 당한 후 군중 앞에서 화형에 처해지는 장면이다. 노퍽 공을 비롯한 메리 여왕의 측근들은 여왕에게 신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켜 엘리자베스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엘리자베스를 제거할 것을 건의한다. 엘리자베스가 살아 있는 한 그녀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반란 세력들의 준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1554년, 토머스 와이엇 경이 반란을 일으키자 엘리자베스는 그와 함께 반란을 도모한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힌다. 하지만 반역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자 2개월 만에 풀려난다.

메리 여왕이 통치하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온갖 박해와 음모에 시달린다. 하지만 1558년, 메리 여왕이 암으로 사망하고 그 후임으로 왕의 자리에 오르면서 운명의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로버트 더들리를 궁정으로 끌어들인다. 영화에서 로버트와 엘리자베스는 서로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는 애인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둘 사이에 그런 관계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엘리자베스가 로버트를 매우 신뢰하고 총애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로버트는 영화에서 로맨틱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매우 야심만만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노섬벌랜드 공작인 존 더들리의 차남으로 에드워드 6세가 죽은 후, 아버지, 형과 함께 제인 그레이를 왕 위에 앉히려는 공작을 펴다 실패해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힌 전력이 있다. 이때 그의 아버지와 형은 처형되었지만 요행히 그는 1554년에 석방되었다. 그 후 노퍽에서 조용히 지내며 엘리자베스와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1558년, 엘리자베스가 왕이 되자 기마 관리관에 이어 추밀원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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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더들리(조셉 파인즈)와 엘리자베스(케이트 블란쳇)



로버트는 엘리자베스에게 여러 차례 청혼을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여왕 몰래 비밀 결혼한 것을 들키면서 한동안 여왕과 소원한 관계가 된다. 한편, 궁정의 신하들은 왕국의 안정을 위해 여왕에게 결혼을 강력하게 권유한다. 후보자로 죽은 언니의 남편이었던 스페인의 필립 왕과 프랑스 왕비 마리 드 기즈의 조카 앙주 공이 거론된다. 이 무렵 마리 드 기즈는 스코틀랜드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잉글랜드와 전투를 벌이는데, 이 전투에서 엘리자베스의 군대는 참패한다.

그 후 엘리자베스는 마리 드 기즈의 조카 앙주 공과 결혼할 뻔하지만 앙주 공의 괴팍한 성적 취향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마리 드 기즈는 조카의 청혼을 거절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엘리자베스에게 독이 묻은 드레스를 선물로 보낸다. 마리의 암살계획은 그 드레스를 몰래 입어본 시녀가 대신 죽으면서 밝혀지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충신 월싱엄 경을 스코틀랜드로 보내 마리 드 기즈를 암살한다.

그 후 엘리자베스는 노포크 공을 중심으로 반역을 도모하던 궁중 내 무리들을 모두 숙청한다. 한때 그녀의 애인이었던 로버트 더들리도 이 역모에 가담하는데, 반역자를 모두 처형한 엘리자베스는 로버트만은 살려둔다. 그를 살려 둠으로써 위험이 얼마나 자기 가까이에 있는지 상기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이런 음모와 배반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엘리자베스는 긴 머리를 모두 자르고, 자기는 영국과 혼약을 맺은 ‘처녀왕’임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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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



영화 [엘리자베스]에는 중요한 클래식 음악 두 곡이 나온다. 엘리자베스의 대관식 장면에서 나온 토마스 탈리스의 [테 데움]과, 엘리자베스가 머리를 자르고 처녀왕 임을 선포하는 장면에서 나온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제1곡 [레퀴엠 에테르남]이다.

이 중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 1505년경 – 1585년)는 엘리자베스 시대에 활동했던 영국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토마스 탈리스의 출생연도와 출생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략 1505년 경 켄트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탈리스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소년 시절, 세인트 제임스 궁정 예배당의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미루어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음악가로서 그에 대한 기록이 공식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530년이다. 이때부터 1531년까지 그는 도버 수도원의 오르가니스트로 있었으며, 1532년에는 도버 칼리지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다. 1538년 경에는 런던으로 가서 월담에 있는 성 십자가 아우구스틴 사원에 들어가 영국 왕실에 의해 사원이 해산되기 전까지 수도원의 합창 대장과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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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



수도원이 폐쇄된 후 탈리스는 캔터베리 대성당을 거쳐 1543년, 왕실 예배당의 의정관이 되었다. 이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 동안 연주와 작곡을 하며 왕실 예배당의 모든 음악행사를 책임졌다. 탈리스는 헨리 7세,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이렇게 모두 다섯 명의 왕을 모셨다. 그가 섬긴 5명의 왕은 모두 영국 국교회 신봉자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죽을 때까지 가톨릭 신자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 그의 작품 목록에는 여러 종류의 교회음악이 보인다. 그는 교회 행사에서 필요한 다양한 음악을 그때그때 요구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는 영국국교회를 위한 곡을 썼고, 메리 튜더 밑에서는 가톨릭 교회음악을 썼으며,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는 부흥개혁파를 위한 곡을 썼다. 영국 왕실의 요구에 따라 영국국교를 위한 서비스와 앤썸도 많이 작곡했지만 그 밖에 라틴어 가사로 된 노래와 가톨릭 교회음악도 작곡하는 등 음악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절충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의 작품은 라틴어 미사와 라틴어 찬미가에서부터 영어로 된 예배음악과 기타 종교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인데, 이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영국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이 얼마나 변화무쌍했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음악가로서 탈리스의 전성기는 엘리자베스 1세 치하였다. 1575년부터는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평생 연금을 보장받아 보다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은 새로운 작품을 전혀 내놓지 못했지만 그전까지는 엘리자베스 1세의 총애를 받으며 작곡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의 대표작은 대부분 이 무렵에 쓰여졌다. 영화의 대관식 장면에서 토마스 탈리스의 [테 데움]을 쓴 것은 그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았던 작곡가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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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 대관식 초상화



[테 데움]은 ‘거룩한 삼위일체의 찬가(Hymnus in honorem Trinitatis)’라고도 불려진다. 4세기 경, 교황 암브로시우스 혹은 성 어거스티누스가 지은 전례문으로 여기에 곡을 붙인 성가가 5세기 경부터 로마 가톨릭의 성무일과(聖務日課)나 축일(祝日), 혹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리는 국가적 기념일에 불려졌다. 엘리자베스가 통치하던 16세기에는 축일이나 추수 감사절 예배에서 [테 데움]이 불려졌는데, 이로 미루어 [테 데움]이 축전적인 성격을 지닌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탈리스의 성악곡들은 각 성부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긴밀하다. 선율의 굴곡이 말의 자연스러운 억양과 딱 맞아떨어져 성악가가 노래하기에 아주 편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탈리스의 [테 데움]은 음악적 착상이 매우 심오하고 장대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유려하다. 후대의 작곡가 헨델은 트럼펫이 들어가는 화려한 [테 데움]을 써서 그 축전적인 성격을 강조했지만, 그보다 전 시대 사람인 탈리스는 화려함보다 종교적 심오함을 추구했다. 대관식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탈리스의 [테 데움]을 듣고 있으면, 숙연한 마음으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신으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은 엘리자베스는 결국 인간이 아닌 나라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여자의 상징인 긴 머리를 깎고, 스스로 “영국과 결혼했다.”고 선포한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제1곡 [주여.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이다. 레퀴엠은 가톨릭에서 죽은 자를 위해 치르는 미사나 혹은 그 미사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말하는데, 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을 뜻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회의 절기와 미사의 종류에 따라 일정한 텍스트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치르도록 되어있다. 죽은 자를 위한 레퀴엠 역시 일정한 라틴어 텍스트를 가지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치러지는데, 작곡가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 가사가 모두 같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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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은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국가를 위해 살기를 결심한다.



레퀴엠은 서양문명이 이룩해 놓은 가장 장엄하고 화려한 죽음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모차르트, 베르디, 베를리오즈, 케루비니, 포레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여기에 곡을 붙였는데, 그중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명곡 중의 명곡으로 꼽힌다.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하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791년 7월, 회색 옷을 입은 낯선 사람이 모차르트를 찾아왔다. 그는 모차르트에게 서명이 없는 편지를 내밀었다. 그 편지에는 레퀴엠을 작곡해 줄 것과 자기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모차르트는 꽤 많은 돈을 받았다.

당시 모차르트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레퀴엠을 작곡하면서 아내 콘스탄체에게 이 곡이 자기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한 채 그 해 1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작곡하던 레퀴엠은 그 자신의 예언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되고 말았다.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한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것은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후에 밝혀졌다. 프란츠 폰 발제크라는 백작이었는데, 아내의 기일(忌日)에 자기가 작곡한 것처럼 하고 이 작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한 레퀴엠은 그 후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에 의해 완성되어 1793년 12월 14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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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엘리자베스 1세



영화에 나오는 곡은 [레퀴엠]의 제일 첫 곡 [주여.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이다.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보내 주소서.

천주여. 시온에서 찬미함이 진정 마땅하오니

예루살렘에서 당신께 서원이 바쳐지리라

주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모든 이가 당신에게 오리이다.


이 곡을 배경으로 엘리자베스가 머리를 자른다. 한때 금빛으로 찰랑이며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긴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남은 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 엘리자베스.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그 비장한 결단의 순간에 도달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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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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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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