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시고니 위버의 진실 - 현악4중주와 공존하는 고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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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86회 작성일 16-02-0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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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스키 감독의 1994년작 [시고니 위버의 진실]은 칠레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 『죽음과 소녀』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주인공 파울리나는 젊은 시절 반독재 투쟁을 하다 체포되어 한 의사로부터 전기고문과 성고문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지금은 젊은 시절 함께 민주화 투쟁을 했던 헤라르도와 결혼해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지만 영화의 원제목은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이다. 그녀가 고문을 당할 때마다 들었던 슈베르트 음악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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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슈베르트 현악4중주 14번 라단조 [죽음과 소녀] / 하겐 콰르텟(연주), 제임스 레바인(지휘) 
11악장 - Allegro음악 재생
22악장 – Andante Con Moto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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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의 한적한 별장. 파올리나가 남편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곧 온몸이 비에 젖은 헤라르도가 들어온다. 그는 아내에게 집에 오는 중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미란다라는 의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까지 올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저녁 식사 후 부부는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아까 헤라르도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던 그 의사가 타이어를 돌려주기 위해 다시 온 것이다.

헤라르도가 문을 열고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안에서 의사의 목소리를 들은 파올리나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소름 끼치도록 귀에 익은 그 목소리. 젊은 시절, 자기에게 전기고문과 성폭행을 가했던 바로 그 의사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그녀는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의사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그의 체취, 그가 즐겨 사용하던 단어와 특유의 어투, 니체의 말을 인용하기 좋아하는 습관,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를 아주 좋아했다는 사실만큼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헤라르도는 미란다를 집 안으로 들인 후 술을 대접한다. 그러는 동안 파울리나는 침대에서 자는 척하고 있다. 헤라르도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 미란다를 소파에서 재운다. 남편과 미란다가 잠들자 파울리나는 몰래 집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밖에 세워둔 의사의 차를 뒤진다. 그러다가 마침내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가 들어 있는 테이프를 발견한다. 자신의 예감이 적중했음을 확인한 파올리나는 묘한 미소를 짓는다.

서둘러 집으로 들어간 파울리나는 서랍에서 총을 꺼내어 들고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의사를 거칠게 깨운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의사는 저항할 틈도 없이 파울리나에 의해 손과 발이 묶인다. 그런 다음 의사의 차에서 발견한 테이프를 튼다. 카세트에서 [죽음과 소녀]의 1악장이 흘러나온다.

파울리나는 미란다에게 자기를 고문한 것을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때 잠에서 깬 헤라르도가 나온다. 그는 거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파올리나는 그가 자기를 고문한 의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헤라르도는 듣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며, 이런 식의 재판은 옳지 않다고 그녀를 나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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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나는 찾아온 의사가 과거에 자신을 고문한 사람임을 확신한다.



사실 파올리나가 원하는 것은 미란다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로부터 진심 어린 고백을 듣는 것,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다. 파울리나는 미란다가 만약 진실을 고백한다면 그것을 녹음한 후 풀어주겠다고 한다.

처음에 미란다는 자기는 그 사람이 아니라고 완강하게 부인한다. 하지만 총을 들고 있는 파울리나가 흥분해서 자신을 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를 자백을 시작한다. 그러나 파울리나는 그 자백에 진실성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화가 난 파울리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그를 바닷가 절벽으로 끌고 간다. 절벽 저 밑에 사나운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다. 파울리나는 미란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는데, 바로 이 때까지도 관객들은 미란다가 정말 그 의사가 맞는지 아닌지 모른다. 그가 계속 자기는 그 사람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울리나가 그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바로 그녀를 고문한 의사였음을 자백한다. 맥이 빠진 파울리나는 그를 풀어준다.

그로부터 며칠 후, 헤라르도와 함께 음악회에 간 파올리나. 무대 위에서는 연주자들이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연주하고 있다. 1층 객석에 앉은 파올리나는 고개를 들어 2층에 가족과 함께 앉아있는 미란다를 올려다본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얽힌다. 그런 다음 파올리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무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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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리나가 원하는 것은 의사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듣는 것이었다.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는 파울리나의 기억, 참혹한 고문의 기억 한 가운데에 있는 음악이다. 의사는 그녀를 고문할 때마다 이 곡을 틀어놓았다. 그 후, 그녀는 더 이상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온몸에 통증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슈베르트 음악을 과거의 참혹한 기억을 되살리는 통증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니. 사건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 고통은 ‘슈베르트 음악 = 통증’이라는 형태로 그녀의 현재에 집요하게 들러붙어 있다.

[죽음과 소녀]는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14번이다. 여기에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이 곡의 2악장이 슈베르트의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곡을 붙인 [죽음과 소녀]는 소녀를 데려가려는 죽음과, 그것을 거부하는 소녀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아직 젊어요, 그러니 이대로 내버려두세요.”

“아름답고 상냥한 아가씨, 나는 너의 친구야. 두려워말고 내 품에서 편히 잠들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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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발둥 그리엔의 [죽음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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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곡의 선율을 주제로 해서 다양한 변주가 펼쳐진다. 처음에 [죽음과 소녀]의 주제를 제시하는 부분은 ‘죽음’이 친절한 친구로 가장하고 소녀에게 접근하듯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할 수가 없다. 주제가 끝나고 나오는 첫 번째 변주 역시 그렇다. 여기서 제1 바이올린은 고음역 특유의 화려한 음색으로 주제 선율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특히 프레이즈의 끝자락을 사라지듯 장식하는 아련하고 처연한 멜로디가 일품이다. 두 번째 변주에서는 첼로가 중후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하지만 그다음 변주부터 현악기들이 절규하기 시작한다. 절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비명이라고 해야 할까. 격렬하게 현을 긁어대기 시작한다. 그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의 평화로 돌아온다. 하지만 곧 다시 시작되는 절규와 비명. 이런 처절하고 격렬한 몸부림이 모두 지나고 나면, 현악기들이 조용히 [죽음과 소녀]의 멜로디를 연주하며 끝을 맺는다.

도로프만의 원작을 보면, 미란다는 [죽음과 소녀]의 2악장을 틀어놓고 사람들의 육신을 처참하게 유린한 것으로 나온다. 명분은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로 수감자들을 위로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것은 육체적인 고문에 버금가는 정신적인 고문이었다.

파올리나는 사흘 동안 굶은 후, 전기고문과 성고문으로 온몸이 처참하게 찢겨 나간 후,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2악장을 들었다. 처참하게 유린당한 육체와 더불어 처참하게 유린당한 감성. 그토록 좋아하던 슈베르트의 음악을 ‘견뎌내면서’ 들어야 하는 상황을 겪은 후, 파올리나에게 이 곡은 더 이상 슈베르트의 많고 많은 음악 중 하나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감대였던 것이다.

원작자인 도르프만의 희곡에는 [죽음과 소녀] 2악장이 나오지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에는 2악장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파올리나와 헤라르도가 음악회에 가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듣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역시 같은 곡을 듣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여기서는 모두 1악장이 쓰였다. 파올리나가 차에서 찾아낸 미란다의 테이프를 카세트에다 넣고 트는 장면에서도 역시 2악장이 아닌 1악장이 나온다.

[죽음과 소녀]의 2악장에 눈물 나게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어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곡의 1악장은 시작부터 일종의 광기를 느끼게 한다. 섬뜩하고, 격렬하고, 신경질적이고, 불안하다. 극적인 리얼리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공포스러운 고문의 현장에 어울리는 음악은 2악장이 아니라 1악장인지도 모른다. 폴란스키는 보다 직접적인, 보다 사실적인 효과를 위해 2악장이 아닌 1악장을 택했던 것 같다. 도르프만의 희곡이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라면, 폴란스키의 영화는 직설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란다의 고백으로 파울리나의 상처가 모두 치유되었다는 뜻인가? 그래서 이제 그녀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통증 없이 들을 수 있게 된 것일까? 파울리나가 겪었던 처참한 시간에 비해 영화 속 용서와 치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폴란스키가 너무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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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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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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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네이버 미술검색





발행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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