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아무르 - 죽음의 무게를 견뎌내는 노부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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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85회 작성일 16-02-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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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가 살던 집에 인기척이 끊긴지 얼마가 되었는지 모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잠금장치를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침대 위에 한 노인이 죽어 있는 것이 보인다. 노인은 검은 옷을 입은 채 누워 있고, 침대 주변은 온통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는 이렇게 한 노인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노인이 살아있을 때로 돌아가는데, 이로써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내용이 노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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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슈베르트 [즉흥곡 D.899] 1번 / 잉그리드 헤블러(Ingrid Haebler)음악 재생
2슈베르트 [즉흥곡 D.899] 3번 / 잉그리드 헤블러(Ingrid Haebler)음악 재생
3바흐 [코랄 전주곡], '소리쳐 부르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BWV.639 / 백건우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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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면은 음악회가 열리는 콘서트 홀이다. 음악가 출신 부부인 조르주와 안느가 객석에 앉아 이제는 어엿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제자 알렉상드르의 연주를 기다리고 있다. 곧 알렉상드르가 무대로 나오고 음악회가 시작된다. 조르주와 안느는 평온한 표정으로 제자의 연주를 듣는다. 비록 늙었지만 틈날 때마다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정서적, 경제적 여유를 가진 이들은 누가 봐도 행복한 노년의 부부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발생한다. 안느가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아버리는 증상을 보인 것이다. 다행히 곧 제정신으로 돌아오지만 이 짧은 증상은 이들 앞에 곧 노년의 불행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한다. 얼마 있다 안느는 혈관을 뚫는 간단한 시술을 받는다. 하지만 간단하다고 했던 그 시술 이후 안느는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비록 몸은 마음대로 못 움직이지만 정신만은 또렷한 안느는 자기를 수발하는 남편을 여러 가지로 배려한다. 너무 자기 옆에만 있지 말고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하는가 하면, 자기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말하기도 말한다. 이렇게 안느는 남편을 배려하고, 조르주는 아내를 배려한다. 생활하는 것이 예전에 비해 훨씬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이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의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 알렉상드르가 찾아온다. 알렉상드르는 그녀에게 어떻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겼는지 참담하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안느는 상처를 받는다.

모든 일은 안느와 조르주, 두 사람이 헤쳐나가야 한다. 어쩌다 찾아와 위로한답시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제자나, 역시 가물에 콩 나듯 들러 이런저런 참견을 하는 딸 모두 이들에게는 그저 타인일 뿐이다. 그렇게 안느와 조르주는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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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 증상이 온 안나를 묵묵히 수발하는 조르주



처음에는 조르주가 혼자 안느의 수발을 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아내를 돌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결국 간병인을 고용하는데, 하지만 간병인이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고 이내 그녀를 해고한다. 아내가 간병인으로부터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조르주는 힘에 부치면서도 혼자 안느를 돌본다.

여기까지 보면 정말 아름다운 노년의 사랑 이야기 같다. 하지만 하네케 감독은 우리를 그렇게 낭만적인 감정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곧 냉혹한 현실이 찾아온다. 처음에 반신불수였던 안느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점점 나빠져 이제는 전신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침대에 누워 오줌을 싸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처음에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며 조르주를 배려하던 안느는 점점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의 노파가 되어간다. 그러는 사이 조르주에게 심리적, 육체적 한계가 찾아온다. 안느처럼 병들진 않았으나 조르주도 역시 노인이었던 것이다.

결국 조르주는 매우 참담한 방식으로 아내에 대한 마지막 사랑을 실천한다. 자기 손으로 아내의 목숨을 끊은 것이다. 조르주로서는 어쩌면 이것이 안느를 냉혹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결말을 두고 누가 감히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 이야기는 맞다. 하지만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기엔 노부부가 처한 현실이 너무 냉혹하고 잔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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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에바와 조르주. 다가오는 병과 죽음 앞에서 딸은 그저 가끔 들르는 타인일 뿐이었다.



음악가 부부의 삶을 다룬 영화이니 음악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음악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아주 짧게 나온다. 장면의 정서적 분위기를 심화시키는 이른바 배경음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다. 부부가 음악을 감상하는 장면과 피아니스트인 제자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 그리고 조르주가 안느의 옛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음악이 나오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도이다. 정서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안락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감고 음악을 감상하며 옛 추억에 젖는 것조차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노부부의 현실이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물론 회상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여기서 안느는 피아노 앞에 앉아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친다.

슈베르트는 작품 90번에 모두 네 개의 즉흥곡을 작곡했는데, [아무르]에는 이 중 두 곡이 나온다. 처음에 조르주와 안느가 음악회에 갔을 때 알렉상드르가 치는 곡은 1번이고, 조르주가 과거에 안느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곡은 3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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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즉흥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안나



즉흥곡은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생긴 음악 양식이다. 즉흥곡이라 하니까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작곡한 곡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즉흥적으로 작곡한 것처럼 보이는 곡’을 의미한다. 낭만주의 시대는 자유의 시대였다. 작곡가들은 그전까지 자기들을 옥죄던 규율과 법칙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양식의 곡을 썼다. 그들은 예전보다 넓어진 표현력과 독창성, 자유로운 상상력을 즉흥곡이나 환상곡 같은 즉각적이고 단편적인 양식들을 통해 표출했는데, 이런 곡들은 형식의 틀을 갖춘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에 비해 길이가 짧고, 내용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악상이 소박하고 구성이 단순해서 장대한 교향곡이나 협주곡에 비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도 그런 곡 중 하나이다.

슈베르트 즉흥곡 작품 90의 네 곡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곡을 꼽으라면 단연 3번이다. 비록 피아노를 위해서 작곡했지만 ‘노래’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노래한다. 멜로디를 인간의 목소리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른손은 멜로디를, 왼손은 반주를 연주하는데, 멜로디 라인을 유연하게, 프레이즈의 마지막 음까지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가며 노래 부른다.

하지만 [아무르]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감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조르주가 몸이 성했던 시절에 안느가 피아노로 이 곡을 치는 것을 회상하며 한동안 달콤한 행복에 빠지는 장면을 넣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회상 장면은 너무나 짧게 지나가 버린다. 마치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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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음악을 감상하는 위해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모이는 ‘슈베르티아테(Schubertiade)’의 모습



안느가 누워있는 동안, 조르주가 치는 곡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코랄 전주곡 [소리쳐 부르나이다] BWV.639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바흐(Bach)'는 독일어로 시냇물이라는 뜻이다. 이를 두고 베토벤이 “그는 시냇물(Bach)이 아니라 바다(Meer)이다.”라고 했다는 말이 유명한데, 여하튼 이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시냇물이라는 이름처럼 그의 음악은 서양음악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발원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바흐 자신은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지, 자기가 죽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갑자기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위대한 작곡가로 칭송할지 몰랐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던 헨델과는 달리 바흐는 자기가 활동하던 인근 지역에서만 음악가로 그럭저럭 인정받고 있었다. 평생 독일 바깥으로는 나가본 적도 없었던 그는 작곡가이자 교회의 음악 책임자로서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한 음악 노동자에 불과했다. 작곡은 그에게 노동이었다. 왜냐하면 예배 때마다 새로운 곡을 연주해야 했고, 성탄절이나 부활절, 수난 주간과 같은 절기에는 그에 맞는 대작을 또 작곡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흐는 요즘 우리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듯 머릿속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곡을 뽑아내야만 했다. 바흐의 작품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바흐는 생전에 수많은 칸타타를 썼다. 뿐만 아니라 칸타타에 나오는 코랄을 바탕으로 오르간을 위한 코랄 전주곡을 쓰기도 했다. 코랄 전주곡 [소리쳐 부르나이다] BWV.639는 바흐가 1732년 경에 작곡한 칸타타 [소리쳐 부르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BWV. 177번에 나오는 코랄(합창)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당신을 소리쳐 부르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제가 기도하오니

제 탄식을 들으시옵소서

지금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저를 실망시키지 마옵소서.

주여. 저는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저에게 주시기 원했던 바로 그 믿음.

당신을 위해 살고,

내 이웃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당신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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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게를 온전히 둘이서 겪어내야 하는 안나와 조르주



이 코랄을 바탕으로 만든 코랄 전주곡 BWV.639는 비록 오르간으로 연주되지만 바흐가 살았을 당시 교회에서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은 원곡인 코랄의 가사를 다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어쩌면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속으로 코랄의 가사를 되뇌었을지도 모른다. 앞에 나온 슈베르트의 즉흥곡 3번처럼 바흐의 이 곡 역시 악기로 연주하지만 본질적으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는 부조니가 편곡한 피아노 버전이 나온다. 부조니는 수많은 바흐의 곡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사람이다. 피아노는 오르간보다는 접근하기 쉬운 악기이다. 부조니 덕분에 우리는 오르간보다는 손쉽게 바흐의 건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피아노로 연주하지만 원곡이 지닌 종교적 심성은 그대로 살아있다. 조르주는 이 곡을 연주하며 신을 소리쳐 불렀을까. 아마 진심으로 신에게 기도하며 간구하고 탄식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화면 속에는 또 다시 냉혹한 현실이 찾아온다. 조르주의 마지막 선택은 이들이 처한 현실이 신이나 음악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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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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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르(Amour, 2012)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장-루이 트린티냥, 엠마누엘 리바, 이자벨 위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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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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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http://www.universalmus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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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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