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자전거를 탄 소년 - 버림 받은 소년을 위한 베토벤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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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75회 작성일 16-02-0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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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어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수화기 너머에서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흘러나오지만 소년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끝내 믿을 수 없다는 듯 전화를 걸고 또 건다. 소년이 그토록 간절하게 통화를 원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아빠. 소년은 아빠와 떨어져 잠시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아빠가 말도 없이 이사를 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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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 2악장 / 김선욱(피아노), 정명훈(지휘), 서울 시립 교향악단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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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보다 절망적인 일이 또 있을까. 11살 소년 시릴은 지금 이런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시릴은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 아빠가 연락처도 알리지 않고 이사를 가버리고, 유일한 소통 수단인 전화마저 불통이 된 상황에서도 필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자전거를 팔아버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아빠가 자전거를 판 것이 아니라 도둑맞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유일한 혈육인 아빠가 자기를 버렸다는 사실은 11살 소년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기에. 하지만 시릴의 결사적인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 잔인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시릴의 자전거. 시릴은 누군가 그것을 훔쳐 갔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의 아빠가 그것을 팔아버린 것이다. 돈 몇 푼 때문에 아들이 아끼는 자전거까지 팔아버리는 아빠. 이것이 바로 11살 소년 시릴이 처한 가혹한 현실이다.

아끼던 자전거를 잃어 실망하고 있는 시릴을 위해 동네에서 미장원을 경영하고 있는 사만다가 시릴의 자전거를 되찾아 준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사만다는 시릴의 주말 위탁모가 된다. 사만다는 수소문 끝에 시릴의 아빠가 이사 간 곳을 알아낸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그곳을 찾아간다. 시릴은 식당의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빠를 만난다. 하지만 오랜만에 아들을 본 아빠의 첫 마디는 “여기 어떻게 왔어?”이다. 무심한 한 마디에서 부성애(父性愛) 마저 상실한 밑바닥 삶의 피폐함이 읽힌다.

아빠의 의도는 아들과 헤어지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아들을 키울 여력이 없기에 몰래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시릴은 아빠에게 결사적으로 매달린다. 아빠가 바쁘면 자기가 만나러 오겠다고 하고, 자기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전화해 달라고 한다. 그렇게 아빠와 연결된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눈물겹다.

하지만 아빠는 더 이상 아들에게 희망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냉정하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한 시릴.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격렬하게 흐느낀다. 그런 시릴을 사만다는 따뜻하게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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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찾아 보육원을 도망나온 시릴



그 후 시릴은 사만다의 집에 살며 그녀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다가 마약을 파는 동네 부랑배와 친해지게 된다. 사만다는 그와 만나지 말라고 하지만 시릴은 말을 듣지 않는다. 부랑배는 시릴을 훈련시켜 동네의 서적 상인을 공격해 돈을 빼앗을 계획을 세운다. 여러 차례 연습을 거쳐 드디어 범행을 저지르기로 한 날. 이를 눈치챈 사만다는 시릴이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결사적으로 막는다. 하지만 시릴은 칼로 사만다의 팔을 찌르고 결국 밖으로 뛰쳐나가고 만다.

범행은 계획대로 실행된다. 시릴은 가게 문을 닫고 나오는 서적 상인을 숨어서 기다리다가 그가 차 트렁크를 여는 순간 그를 야구 방망이로 내려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의 아들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시릴은 그에게까지 몽둥이를 휘두른다. 그리고 쓰러진 서적 상인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친다. 그리고 훔친 돈을 부랑배에게 갖다 준다. 하지만 피해자가 그의 얼굴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부랑배는 화를 낸다. 돈뭉치를 그에게 주며 만약 잡히면 너 혼자 한 짓이라고 말하라고 하면서 가버린다. 그러자 시릴은 그 돈을 들고 아빠를 찾아간다. 아빠에게 돈을 주지만 아빠는 누구 신세를 망치려고 하냐면서 아들을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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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 만난 부랑배 웨스커



집으로 돌아온 시릴은 사만다로부터 경찰이 다녀갔다는 말을 듣는다. 곧바로 그는 사만다와 함께 경찰서로 간다. 다행스럽게도 피해자와의 합의는 원만하게 진행된다. 시릴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병원 치료비와 가게를 열지 못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금은 사만다가 20개월에 걸쳐서 갚기로 한다. 하지만 이 자리에 피해자의 아들은 오지 않는다. 시릴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시릴과 사만다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진다. 사만다는 시릴이 사고를 쳤을 때에도 야단 한 번 치지 않는다. 자식의 사고를 수습하는 부모처럼 금전적 손해까지 감수하며 시릴을 실질적으로 책임진다. 그런데 그것이 값싼 동정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어떤 것. 한 인간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과 사랑이라고나 할까. 이 영화에는 이런 종류의 관계에 흔히 있음직한 장면, 예를 들자면 안타깝고 애절한 시선, 격렬한 흐느낌과 포옹, 참회와 용서, 화해의 눈물 같은 것이 없다. 시릴을 바라보는 사만다의 시선은 늘 무덤덤하다. 그녀는 시릴을 동정이나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본다. 삶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것이다.

사만다와 시릴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가고, 친구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여는 평범한 일상을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비큐 파티에 쓸 숯을 사기 위해 주유소에 간 시릴은 거기서 우연히 서적 상인 부자를 만나게 된다. 지금도 시릴을 용서하지 못하는 서적 상인의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릴을 공격한다. 시릴은 그를 피해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랬다가 그가 던진 돌을 맞고 높은 나무에서 떨어진다. 땅 위에 쓰러진 시릴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서적상 아들은 놀라서 그를 흔들어 본다.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러자 당황해서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가 와서 시릴을 흔들어보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두 사람은 시릴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서적상은 아들에게 만약 경찰이 물으면 그가 그냥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말하라고 시킨다. 두 사람이 불안한 표정으로 시릴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릴의 휴대폰이 울린다. 곧이어 시릴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난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바비큐 파티를 위해 산 숯을 챙겨들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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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릴과 사만다



“희망과 구원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는 영화”

“값싼 감상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놀라운 연민과 통찰과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

[자전거 탄 소년]에 쏟아진 찬사이다. 이런 평가에 개인적으로 공감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말은 “값싼 감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음악의 쓰임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2악장을 주제 선율로 사용하고 있다.

[황제]는 베토벤이 38세 때인 1809년, 빈 근교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포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가운데 작곡되었다. [황제]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니다. 웅대하고 장대한 곡상이 마치 황제의 위용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사실 이 곡은 협주곡이라기보다 교향곡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오케스트라의 취급도 웅대하고, 피아노 역시 마지막까지 관현악을 상대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이라기보다 오케스트라에 피아노가 첨가되어 음악의 스케일을 한층 확대시킨 우주적인 차원의 대교향곡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정말 이 곡의 1악장을 들어보면 [황제]라는 제목이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어서 연주되는 2악장은 다르다.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악장은 눈물 나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자랑하는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악장이다. 먼저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나면, 피아노가 쇼팽의 야상곡을 연상시키는 로맨틱한 선율을 연주한다. 이때 오케스트라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피아노 독주를 받쳐준다. 그런 다음 피아노가 앞에 오케스트라가 제시했던 선율을 연주한다. 이 선율은 형태와 악기를 달리하며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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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의지하는 시릴과 사만다



[자전거 탄 소년]은 피아노 협주곡의 2악장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황제]의 2악장을 썼다. 다른 음악은 나오지 않고 오로지 이 곡만 나오는데, 그것을 사용한 방식이 특이하다. 주제 선율의 극히 일부분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처음 오케스트라가 제시하는 아름다운 주제 선율은 듣는 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제 선율의 단편만 사용했기 때문에 원곡의 로맨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영화를 만든 다르덴 형제는 “시릴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만 음악을 넣었다”고 밝혔지만, 워낙 음악을 동기적으로 취급하다 보니 보는 이에게 정서적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못한 것 같다. 원곡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정서적 아쉬움만 느끼게 한다.

달리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의도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로맨틱한 멜로디를 흘러보내 시릴에게 ‘값싼 감상’ 같은 것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전거 탄 소년]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중요한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방식은 전혀 감상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다른 영화와 구별된다. 그래서 음악도 그런 방식으로 사용한 것인지 모른다.

이런 정서적 아쉬움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해소된다. 시릴이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관객들은 낙담하고 걱정한다. 혹시 죽었으면 어떻게 하지? 부모에게 버림받고 이제 겨우 희망을 찾아가는데 죽다니. 관객들은 제발 이 영화가 그런 식의 신파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관객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 것일까. 죽은 줄 알았던 시릴이 툭툭 털고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의 분신인 자전거를 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 그렇구나. 시릴은 무사하구나! 이렇게 안도하고 있을 때, 영화가 끝난다. 그리고 [황제]의 2악장이 나온다. 이번에는 곡의 일부분이 아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나오는 동안 2악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된다. 관객들은 행복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그 로맨틱한 음악을 듣는다. 진실로 마음의 위로를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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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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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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