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내겐 너무 이쁜 당신 - 슈베르트 음악이 전하는 사랑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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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8회 작성일 16-02-0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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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베르나르는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다. 탄탄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아내 플로랑스가 있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이런 그가 바람을 피운다. 상대는 비서인 콜레트. 그런데 콜레트는 그의 아내 플로랑스와 여러모로 대조가 되는 여자이다. 뚱뚱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누가 보아도 별다른 매력이나 특징이 없는 그런 여자이다. 그런데 베르나르는 이런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점심시간마다 허름한 모텔방에서 사랑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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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슈베르트 [즉흥곡], op.90-2 / 잉그리드 헤블러음악 재생
2슈베르트 [즉흥곡], op.90-3 / 잉그리드 헤블러음악 재생
3슈베르트 [즉흥곡], op.90-4 / 잉그리드 헤블러음악 재생
4슈베르트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2악장 / 하겐 콰르텟(연주), 제임스 레바인(지휘)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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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편의 행동에 플로랑스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 화가 난 플로랑스는 남편 앞에서 콜레트를 ‘별 볼 일 없는 여자’라고 욕한다. 그러자 베르나르가 발끈한다.



“여자가 꼭 예쁠 필요는 없어, 그러니 그런 이유로 콜레트를 비웃지 마.”

아내 플로랑스는 베르나르에게 ‘내겐 너무 예쁜 당신’이었던 것일까.



“당신은 지나치게 아름다워. 지나치게 이상적이야. 당신은 모든 것을 갖추었어. 그런 보물을 갖고 있으니 세상에 바랄 게 뭐가 있겠어? 아무것도 없어.”

플로랑스는 자기같이 완벽한 아내를 두고 평범한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콜레트를 찾아가 어떻게 당신 같은 여자가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지 묻는다. 콜레트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같이 평범한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그 많은 남자 중에 몇몇은, 호기심이 많고, 여린 사람은 자기 같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마흔 살이 다가오면 불안해하고, 어린아이처럼 약해지는데, 베르나르도 그렇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는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아주 여린 사람이고, 그래서 자기 같은 여자에게서 새로운 위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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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플로랑스



플로랑스는 어떻게든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매우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플로랑스가 콜레트를 비난할 때는 그녀를 옹호하면서도, 결혼생활을 끝내자고 할 때는 콜레트와의 관계는 곧 끝날 것이라고, 한순간의 악몽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후 베르나르와 콜레트는 시골로 여행을 떠난다. 평화로운 시골집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며칠 만에 베르나르는 싫증을 느끼고, 콜레트는 그가 곧 떠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콜레트가 자전거를 타고 먹을 것을 사러 나간 사이, 베르나르는 차를 몰고 시골집을 떠난다. 베르나르가 떠난 것을 알고 콜레트는 그를 비겁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한편 남편의 애매한 태도에 질려버린 플로랑스는 결국 남편과 헤어지기로 한다. 그녀는 베르나르를 그가 콜레트와 사랑을 나누던 장소로 데려가 바로 그 방에서 결별을 선언한다. 아내와 콜레트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은 베르나르는 플로랑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매달리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모텔 문을 박차고 나온다. 모텔 밖에는 콜레트가 있다. 베르나르가 콜레트에게 다가가는 순간 플로랑스가 차를 몰고 떠난다. 베르나르는 황급히 그녀의 차를 따라가지만 결국 놓치고 만다. 아내를 놓친 베르나르는 이번에는 콜레트를 찾는다. 하지만 콜레트도 역시 이미 가 버린 후이다.

두 여자를 모두 놓쳐버린 베르나르.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는 베르나르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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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연인도 모두 놓치기 싫었던 베르나르를 두 여자는 모두 떠난다.



분위기 있는 배경음악 덕분에 왠지 ‘있어’ 보이는 영화가 있다. [내겐 너무 이쁜 당신]이 바로 그런 영화다. 사실 이 영화의 소재는 ‘불륜의 사랑’이다. 이미 아내가 있는 중년 남자와 뚱뚱하고 평범한 중년 여자의 사랑. 게다가 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는 허름한 변두리 여관방이다. 불륜의 사랑을 아름답게 윤색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장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륜에 대한 우리의 판타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이런 설정이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는 영화 전편에 깔리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음악 때문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단 번에 무장해제시켜 버린다.

이 영화에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작품 90의 제3번, [로자문데 전주곡] 제3번,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2악장, 피아노 소나타 D.959의 2악장,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1악장, [미사] D.950 중 [상투스], [독일 미사] D.872 중 [상투스] 등이 나온다. 이 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작품 90의 제3번이다. 이 곡은 베르나르가 콜레트를 따라가는 장면과 전차 안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 두 사람이 정사를 벌이는 장면 등에 등장한다. 영화를 보면서 놀라운 것은 어쩌면 이렇게 그럴듯하게 불륜을 미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로맨틱한 슈베르트의 음악과 함께 마치 시를 읊는 것 같은 콜레트의 대사를 듣고 있으면, 허름한 모텔방에서 정사를 나누는 두 사람이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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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초상화, 1825년



슈베르트는 평생 600여 곡의 예술가곡을 작곡한 ‘가곡의 왕’이다. 물론 그가 가곡만 작곡한 것은 아니다. 교향곡, 실내악, 피아노 독주곡 등 악기를 위한 곡도 많이 작곡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상(理想)은 ‘노래’이다. 슈베르트는 악기를 가지고도 노래를 부른다. 영화에 나오는 즉흥곡은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이다. 이 곡에서 슈베르트는 피아노로 하여금 멜로디 라인을 유연하게, 프레이즈의 마지막 음까지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가며 노래 부르도록 한다. 슈베르트는 작품 90번에 모두 네 개의 즉흥곡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도 3번이 가장 노래에 가깝다. 처음부터 셋잇단음표로 쏜살같이 내달리는 2번이나, 하강하는 16분 음표가 불꽃처럼 펼쳐지는 4번과 달리 3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노래한다. 비록 피아노로 연주하지만 멜로디를 인간의 목소리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른손은 멜로디를, 왼손은 반주를 연주하는데, 그 아름답고 명상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이 단순히 분위기 메이커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의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기도 한다. 베르나르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흐른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음악이 들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음악 안 들려요?”

아내가 이렇게 묻는다. 그제서야 그는 음악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 음악이 그를 몹시 불편하게 한다. 무언가 남모르는 비밀을 들켜버린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내가 음악이 안 들리냐고 묻는 것이 마치 “당신 지금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 알아요?”라고 묻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베르나르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는 것이 영 불편하다. 음악이 마치 자기를 조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온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의 2악장이 들려온다. 베르나르가 자조적으로 말한다.



“밥 먹을 때마다 이 음악이니? 밥맛 떨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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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플로랑스(좌)와 콜레트(우)



이 현악4중주곡에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이 곡의 2악장을 슈베르트의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주제로 해서 작곡했기 때문이다.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곡을 붙인 [죽음과 소녀]는 소녀를 데려가려는 죽음과, 그것을 거부하는 소녀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아직 젊어요, 그러니 이대로 내버려 두세요.”

“아름답고 상냥한 아가씨, 나는 너의 친구야. 두려워말고 내 품에서 편히 잠들려무나.”

곡의 제목이 2악장의 주제 선율을 제공한 가곡에서 나온 만큼 엄밀하게 말해서 여기서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에 부합되는 악장은 2악장이라 할 수 있다. 네 개의 악장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한 가장 아름다운 악장.

이 곡은 슈베르트의 가곡 [죽음과 소녀]의 주제를 다양하게 변형시킨 변주곡 양식으로 작곡되었다. 처음에 [죽음과 소녀]의 주제를 제시하는 부분은 ‘죽음’이 친절한 친구로 가장하고 소녀에게 접근하듯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할 수가 없다. 주제가 끝나고 나오는 첫 번째 변주곡 역시 그렇다. 여기서 제1 바이올린은 고음역 특유의 화려한 음색으로 주제 선율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특히 프레이즈의 끝자락을 사라지듯 장식하는 아련하고 처연한 멜로디가 일품이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베르나르의 아들이 말한다.



“로맨틱한 음악이에요. 경쾌하지는 않지만”

“저렇게 슬픈 음악을 쓸 때 슈베르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베르나르가 이렇게 묻자 아들이 대답한다.



“아프고 불행했어요.”

그렇다. 이 곡을 쓸 때 슈베르트는 아프고 불행했다. 아니, 꼭 이곡을 쓸 때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늘 아프고 불행했다. 그 아픔을 슈베르트는 격렬한 절규와 비명으로 풀어냈다. [죽음과 소녀] 2악장의 두 번째 변주곡에서는 첼로가 중후하고 안정된 음색으로 주제 선율을 연주한다. 하지만 그다음 변주부터 현악기들이 절규하기 시작한다. 절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비명이라고 해야 할까. 격렬하게 현을 긁어대기 시작한다. 그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의 평화로 돌아온다. 하지만 곧 다시 절규와 비명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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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스토케, [소녀와 죽음 (슈베르트)], 19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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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는 음악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여기서 슈베르트의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 전편에 흐르면서 불륜의 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윤색했던 슈베르트의 음악. 그러나 베르나르에게 그것은 불륜의 사랑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일깨우는 무의식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접 영화 장면에 뛰어들지는 않지만 수시로 개입해 주인공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무의식의 목소리 같은 것. 가족과 식사를 할 때에도, 불륜의 여인을 쫓아가고, 그녀와 정사를 나눌 때도, 시골집으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일 때도, 슈베르트의 음악은 늘 베르나르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힌다. 어쩌면 베르나르는 슈베르트 음악이 담고 있는 근원적인 고통, 사랑으로 인한 고통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베르나르는 음악을 끄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이 음악을 듣고 에세이를 써야 한다며 말린다. 그는 아들의 숙제 때문에 매일 슈베르트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베르나르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는데, 초청받은 피아니스트가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연주한 것이다. 슈베르트 음악에 화가 난 베르나르는 피아니스트에게 다가가 소리친다.



“누가 당신을 내 집으로 끌어들였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슈베르트 음악은 자신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둘 다 놓친 베르나르. 그렇게 허탈해하고 있는데, 마치 약 올리듯이 슈베르트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러자 베르나르가 뒤로 확 돌아서서 애꿎은 슈베르트 음악에 화풀이를 한다.



“제발 그 음악 좀 끄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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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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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지식백과





발행201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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