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피아니스트 - 순수한 음악과 대치된 파괴적 사랑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27회 작성일 16-02-06 17:10

본문















14547462520524.png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노벨 문학상을 탄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실제 영화를 보면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매우 난해한 영화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도대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피아니스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런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는 영화이다.






14547462527897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중 [마을에서] / 피셔 디스카우음악 재생
2브람스 [현악 6중주] 제1번 2악장 / 아마데우스 콰르텟, 세실 아로노비츠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영화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마을에서]라는 곡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에리카가 이 곡의 피아노 파트를 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다.

에리카는 오스트리아의 한 음악원의 교수로 슈베르트 음악의 연주와 해석에 정평이 나 있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 살. 어느덧 중년에 접어 들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어머니와 함께 살며 어머니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받고 통제 당하며 살고 있다. 겉모습은 성인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직 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아이인 것이다.

마흔 살이 되도록 에리카는 남자와 단 한 번도 정상적인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보통의 남녀들이 어떤 식으로 사랑을 나누는지를 잘 모른다. 에리카는 우리가 음악회에 가고 영화관에 가듯이 틈 날 때마다 포르노 비디오 방과 자동차 극장을 찾는다.

낮에는 학생들에게 베토벤의 소나타와 슈베르트의 가곡에 대해 가르치고 아도르노가 쓴 슈만의 환상곡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그녀가 성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곳은 이런 세계와는 거리가 먼 포르노 비디오 방과 자동차 극장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남들의 정사를 훔쳐보는 것으로 참을 수 없는 관음증을 해결하곤 한다.

어느 날 에리카가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제2번]의 2악장을 연주한다. 에리카가 피아노에 앉아 동료 음악인들과 이 곡을 연주할 때만 해도 관객들은 그다음에 무슨 장면이 이어질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상이 음악을 배반하기 시작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여전히 배경으로 깔리고 있는 가운데 에리카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녀가 다다른 곳은 포르노 비디오방. 그녀는 돈을 내고 비디오방 문 앞에 서서 다른 남자들의 곁눈질을 받으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바로 이 장면에서도 조금 전의 슈베르트 선율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흐르고 있다. 드디어 방에서 한 남자가 나오고. 에리카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에서 누군가의 정액이 묻어 있는 휴지를 꺼내 냄새를 맡으면서 포르노 비디오를 본다. 학생들에게 슈베르트, 브람스, 슈만에 대해 얘기할 때와 똑같이 지극히 냉정한 표정을 하고.





14547462547727





음악원 교수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에리카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상대는 클레메라는 이름의 공대생인데, 그는 에리카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녀에게 매료된 나머지 음악원에 들어와 에리카의 제자가 된다.

클레메는 에리카를 이성으로 사랑한다. 이런 클레메에게 에리카도 끌린다. 겉으로는 짐짓 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어린 남자 제자에 대한 뜨거운 욕망이 불타고 있다.

이런 그녀의 마음은 그녀가 질투심을 표출하는 장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곧 있을 음악회를 위한 리허설 시간. 에리카가 동료 교수들과 함께 객석에 앉아 학생들의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다. 이때 연주하는 곡은 브람스의 [현악6중주 1번]의 2악장.

연주를 지켜보고 있는 에리카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을 클레메의 시선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14547462557167





클레메의 연주를 지켜보는 에리카



브람스의 [현악 6중주]가 끝나고 [겨울 나그네]의 리허설이 시작된다. 바로 그때 에리카는 클레메가 자신의 여제자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파괴적인 질투심을 꼭꼭 숨긴 채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이들의 연주를 지켜본다. 그리고 얼마 후, 에리카가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고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간 그녀는 곧장 탈의실로 가서 깨진 유리조각을 클레메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었던 여제자의 코트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다.

에리카가 리허설 장으로 돌아왔을 때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제20곡인 [이정표]로 넘어가 있었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다시 리허설을 지켜본다.

리허설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탈의실에서 여학생의 비명이 들려온다. 오른손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여학생이 울부짖고 있는데 에리카가 단호한 목소리로 클레메에게 그녀에게 가 보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클레메는 직감적으로 에리카가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레메는 화장실로 들어가는 에리카를 쫓아가고, 바로 이 화장실에서 파괴적인 사랑의 비극이 시작된다.





14547462567185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 에리카와 클레메



클레메는 에리카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편다.

그는 보통의 연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에리카에게 부드럽고 애정 어린 키스를 보내고 격정적으로 애무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에리카는 아주 냉정한 얼굴로 이것을 거부하고, 클레메는 이런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당혹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클레메는 에리카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에는 에리카가 클레메에게 바라는 것이 조목조목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그것은 자기를 때리고 밧줄로 묶고 깔아뭉개라는 것 즉, 성적으로 자기를 학대해 달라는 것이다.

편지를 읽고 충격을 받은 클레메는 에리카를 심하게 모욕하고 조롱한다. 클레메로부터 모욕을 당한 에리카는 스스로를 칼로 찌른다. 그렇게 그녀의 왜곡된 사랑은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14547462577145





에리카의 왜곡된 사랑에 클레메는 좌절감을 느낀다.



이렇게 영화의 내용은 엽기적인데 음악은 말할 수 없이 낭만적이다. 에리카가 포르노 비디오를 보고 있는 동안,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와 가곡이 연달아 나온다.

그 장면은 곧이어 에리카가 음악원에서 동료 교수와 함께 슈베르트의 가곡을 레슨하고 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학생이 부르는 노래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Winterreise)] 중 [마을에서(Im Dorfe)]이다.

영화의 앞 부분에서 에리카는 이 곡의 피아노 반주를 학생에게 레슨하면서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었다.


개들이 짖어대며 쇠사슬을 흔들고

사람들은 단잠에 빠져 있다.
내일의 희망 꿈꾸며
한없는 행복에 잠겨 있다.

하지만 이 꿈도 아침이면 모두 사라질 것을.



그러나 사람들은 꿈을 되새기면서

그 속에 남겨둔 것을 찾기 위해

그 꿈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네

짖어라 개야. 나를 향해 짖어라.

이제 더 꿀 꿈도 없는 나를 향해 짖어라



이제 꿈이 모두 사라졌으니

잠을 잔들 무슨 소용 있으리

이제 꿈이 모두 사라졌으니

내 잠들든 무슨 소용 있으리.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개들이 쇠사슬을 덜그럭거리며 짖어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반주가 나온다. 앞서 이 부분을 레슨할 때 에리카는 학생에게 ‘너는 냉정함이 무엇인지도 모르니?’하고 빈정거린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입으로 독일어로 된 노래의 가사를 읊는다.


‘개들이 짖어대며 쇠사슬을 흔들고, 사람들은 단잠에 빠져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사랑에 실패한 한 젊은이의 절망적인 겨울여행을 그린 연가곡이다. 시종일관 회색빛의 우울한 낭만을 느끼게 하는 이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황량한 겨울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지막 장만 댕그라니 남은 12월 달력처럼 [겨울 나그네]는 허무하고 우울하다. 영화에 나오는 [마을에서]는 이 연가곡의 17번째 곡에 해당된다.

겨울날의 방황 끝에 한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 밤이 되자 어딘가에서 개들이 쇠사슬을 덜그럭거리며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황량한 밤에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어 그들만의 단꿈을 꾼다. 내일 아침이면 사라지고 말 허무한 꿈을. 하지만 나그네는 잠들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꿀 꿈이 없기에. 희망이 사라진 그에게는 잠조차도 달콤한 꿈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개들에게 자학적으로 말한다.

나를 향해 짖으라고. 학생들에게 이 곡을 가르치는 에리카는 아주 냉정하고 단호하고 지적이다.

리허설 무대 위에서 학생들이 브람스의 [현악 6중주 제1번]의 2악장을 연주하고 있다. 브람스의 [현악 6중주]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각각 두 대 씩 구성된 다소 독특한 편성을 가지고 있는 곡이다.

2악장의 멜로디가 낭만적인데, 이렇게 낭만적이면서도 음향은 6중주라는 편성 때문인지 다소 무겁고 두텁게 들린다.

3중주나 4중주 실내악처럼 주선율이 날렵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저음역의 두터운 화음이 주선율을 마치 담요처럼 받치며 함께 움직인다.





14547462589235





에리카와 클레메



대부분의 영화에서 음악은 각 장면의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음악은 충실하게 영상의 이미지를 청각으로 번역해 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켜 준다.

영화 속의 음악은 철저하게 영상에 종속될 뿐 스스로를 독립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장면 속에 녹아들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음악이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만약 관객들이 음악의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그 장면에 몰입했다면 어쩌면 그것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서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피아니스트]의 음악은 이런 상식을 거부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어떤 장면에 종사하지도 않는다. 그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음악을 부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음악과 줄거리는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감독이나 주연 배우는 음악이 어떤 것을 은유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예술작품이 은유일진대 그렇다면 이 영화의 음악은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 것일까.

[피아니스트]에서 구현된 파괴적인 욕망과 순수의 몽타주는 에리카의 원초적 상처, 왜곡된 성의식이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보여준다.

순수한 영혼을 담은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음악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영상과 음악을 서로 충돌시키고,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 상황에 수긍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 잔인한 영화는 심지어는 에리카에게 동정을 보내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끝내 에리카를 죽이지 않고, 상처 입은 그녀를 그냥 거리로 내몬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리카는 가방에서 칼을 꺼내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그렇다고 생명을 잃을 정도의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다. 블라우스 밖으로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는 가운데 에리카는 음악원의 문을 나서 거리를 걸어간다. 몸을 심하게 흔들면서.











관련정보

통합검색 결과 보기







14547462594856

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발행2014.07.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