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기억술의 비밀 - 체계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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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3회 작성일 16-02-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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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관한 강의 후에, 비록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필자는 따로 시간을 내 기억술 시범을 수업시간에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기억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이 실제 우리의 기억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한 기억술의 실제 예를 통해 기억에 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략 다음과 같이 진행되니 독자들도 동참해 보자.


“자 이제부터 기억술 시범을 보여주겠습니다. (학생들이 다소 술렁댄다. 의외라는, 재미있다는, 믿을 수가 없다는). 잠시 준비하겠습니다. (필자는 몇 분 동안 벽이나 창문을 쳐다본다). 그럼 여기 맨 왼쪽 첫째 줄에 앉아 있는 학생부터 뒤로 하나씩 생각나는 물건이나 단어를 말해주십시오. (첫 단어를 말하면 필자는 잠시 고개를 끄떡인 후, ‘다음’이란 말로 다음 단어를 들어가며 계속한다). (‘연필’ ‘공룡’ ‘컴퓨터’ ‘시계’ ‘자동차’ ‘김밥’ 등등 ............ 이렇게 해서 단어들이 이십 여 개에 정도 되면) 더할 수도 있지만 시간 관계상 그만하겠습니다. 자 그럼 잠시 제가 시간을 갖겠습니다. (1-2분 정도 교탁을 왔다 갔다 한 후). 이제부터는 어느 학생이 어떤 단어를 말했는지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강의실의 다른 쪽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단어를 말했던 학생 중에 한 명을 마음대로 지적하도록 한다. 그러면 필자는 잠시 뜸을 들인 후, 그 학생이 말했던 단어를 말한다) ‘김밥’ 이었지요? (그리고 무선적인 순서로 나머지 스무 명의 단어를 모두 기억해 낸다). 어떻습니까? (학생들 박수, 짝짝짝)”

기억술의 기제



독자들도 이 시범을 이해했을 것이다. 사실 필자는 사전 준비만 충실이 하면, 서른 개 혹은 그 이상의 단어도 기억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수업 시간에는 의도적으로 즉흥적 시범을 보이고 그러기에 실수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필자가 뛰어난 기억술을 갖고 있다는 과시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술의 기제를 설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용한 방법을 설명하자. 우선 필요한 것은 눈을 감거나, 혹은 뜨고 있어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심상(이미지)을 그릴 수 있는 서른 개 정도의 일련의 장면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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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을 실천해보려면 우선 머릿속에 생생하게 심상을 그릴 수 있는 일련의 장면을 가져야 한다.
<출처: gettyimages>


필자가 사용하는 장면은 거의 십여 년을 살아온 필자의 아파트 집으로 “아파트 문 오른쪽에는 누런 손잡이(1)가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신발장(2)과, 가운데 거울이 있는 서랍(3)이, 있고, 바로 현관 앞에는 화장실(4)이, 있고 그 옆에는 딸아이 방(5)이 있고, 이어서 거실에는 고동색 소파(6)가 있고, 그 앞에는 탁자(7)가 있으며, 그 앞 벽에는 TV(8)가 있고, 거실 오른쪽에는 식탁(9) 이 있고, 그 뒤에는 냉장고(10)가 있고 등등...........” 즉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구체적인 장면 혹은 장소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해야 하는 작업은 순서(번호)에 따라 즉각적으로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다섯 번째” 하면 즉시 “딸아이 방”을 떠 올리고 그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서른 개의 장소에 대해 모두 반복 연습해 어떤 번호에 대해서도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훈련해 놔야 한다. 물론 굳이 자기 집이 아니더라도 어느 장면이나 장소라도 괜찮다. 여러분이 능숙하게 조작하고 신속히 접근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이 수준은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다. 독자들도 이미 무수히 경험을 한 기억 흔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외워야 할 단어들을 앞서 얘기했던 일련의 이미지에 연결시키는 두 번째 단계가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첫 단어, ‘연필’을 첫 이미지인 ‘문고리’와 연결시켜야 한다. 어떻게 할까? “요사이 아파트에는 광고물이 많이 배달되는데, 최근 새로 시작한 XX 학습지 회사에서 홍보물과 선물로 하늘색 ‘연필’ 두 자루를 비닐 봉투에 넣어 손잡이에 걸어 놓은 모습”을 머릿속에 그린다. 두 번째 ‘공룡’은 “필자의 아들이 학교에 가져가려던 티라노사우르스 공룡 인형을 깜박 ‘신발장’에 놓고 간 장면을 그린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다른 단어들도 가능한 현실적이며, 집의 장소와 외어야 할 물건을 의미 있게 연결시킬 수 있는 생생한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 된다.

이런 식의 생생한 이미지 연결이 완성되면, 나중에 외어야 할 장소로 이동하면 된다. 한 학생이 말했던 단어를 기억해 내려면, 속으로 그 학생이 몇 번째인지 세어보고, 그 번호에 해당하는 집의 심상을 떠올리면 된다. 예를 들어 두 번째 학생이 말했던 단어(‘공룡’)를 기억해내려면, 아파트의 두 번째 장소(‘신발장’)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이때 이 장소에 생생하게 연결시켜 놓았던 이미지(‘신발장에 놓고 간 공룡 인형’)가 자연스럽게 떠올라올 것이다. 독자들도 필자의 요지를 파악했을 것이다.


장소법



여러 기억술의 하나인 이 기억 기법은 장소법(Method of Loci)이라고 불리며,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알려졌던 방법이라고 한다. 시모니데스(Simonides)라는 시인이 연회에서 강연을 하다가 잠시 나간 사이, 지붕 천장이 무너져, 청중들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모니데스가 청중들이 앉았던 위치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각 시신이 누구인지를 모두 구별해 냈다고 하며 바로 여기에서 이 기억법이 나온 것이란다.

장소법이 효율적인 기억법이라는 사실에 만족하지 말고, ‘왜’ 이 기법이 기억을 잘하게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인간 기억의 어떤 특성을 잘 활용한 것인지, 혹은 기억을 잘하게 하는 일반적인 원리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한 100여 개 정도의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몇 년간 훈련한 후 TV에 출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사실 이 장소법을 실제 사용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은 이미지 즉 심상의 사용이다. 한때 인지과학도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인간의 기억이 기본적으로 ‘의미와 심상’이라는 두 부호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한다. 나아가 이 심상은 학습과 기억뿐만 아니라, 추리, 문제해결, 판단, 유추, 창의성 같은 우리의 모든 사고 과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주제는 차후에 다시 다루기로 하겠다.


체제화의 원리



두 번째의 중요한 기억 원리는 “체계적인 정리(organization)”이다. 즉 체제화 혹은 조직화가 기억에 필수적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연필’ ‘공룡’ ‘컴퓨터’ ‘시계’ ‘자동차’ ‘김밥’ 등등은 서로 의미상으로 관련도 없기에 정리할 방법이 없다. 그러기에 이미 순서대로 잘 정리된 틀에 이 단어들을 집어넣은 것이고 할 수 있으며, 말하자면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잘 정리되어 언제나 쉽게 끄집어 낼 수 있는 서랍에 한 단어씩 집어넣은 것이 된다.

체제화는 우리의 보통 공부 즉 학습에서도 필수적이다. 여러분이 심리학 개론서의 한 장을 공부했다고하자. 한 장에는 수십여 개의 새로운 용어나 개념 혹은 설명들이 들어 있다. 이 수 많은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머릿속에 넣지 않으면서, 기억해 내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변 학생들의 공부 방법을 보면,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도서관 사서가 귀찮다고, 새로 들어온 책을 정리하지 않고, 즉 도서 분류기호를 붙여 정해진 서가에 위치시키지 않고, 그냥 아무 서가에나 꽂아 놓으며, 나중에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책이 되고 마는 것이다. 도서관에 잇는 모든 책들을 뒤지지 않는 한. 인지심리학의 전문 용어를 쓰면, 체계적인 부호화(encoding)가 인출(retrieval)을 돕는 것이며, 인출의 실패가 망각의 원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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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사서가 귀찮다고, 새로 들어온 책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아무 서가에나 꽂아 놓으며, 나중에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책이 되고 만다.
<출처: gettyimages>


그런데 위의 장소법에서 예로 들었던 단어들에 비해, 교과서의 한 장에서 읽은 내용들은 훨씬 체계적으로 정리하기가 쉽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로 관련되는 개념이나 내용이기에 함께 한 장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성을 뽑아 낼 수 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전략의 하나는, 수업 전에 그리고 강의 중에 구체적인 내용이 전체적인 큰 틀에 어디에 포함되는 것인지를 늘 학생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가장 상위가 되는 서너 개의 핵심적인 주제는 무엇인지, 이 주제가 다시 어떻게 나눠지고, 여러 세부적인 내용들이 이 틀에 어떻게 정리되는가를 설명해야 하고, 또 학생들이 이 틀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아예, 이 위계적인 틀을 수업 내내 제시하며 매번 지금 설명하는 내용이 어디에 포함되는지를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편적인 내용보다는 이 상위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시험 문제를 출제해 학생들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미리 준비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는 입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오늘의 심리학’의 ‘기억과정 - 공부한 내용의 기억’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 장의 내용이 어떻게 조직, 구성되었는지를 파악하고, 머릿속에 기본적인 틀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 아예, 공책 처음에, 한 장의 단락 제목, 단락 내의 각 문단의의 소제목, 각 문단에 포함된 주요 용어들(보통 고딕체나 진한 폰트로 표시하는)을 적어 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수시로 각 개별 내용이 어디에 포함되는지를 확인하면서 공부하면 된다. 워드프로세서로 이러한 작업을 해도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할 수 있는 방법은 소위 말하는 개념도(concept map)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교과서의 한 장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용어들이나 내용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다음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지도로 그려 보는 것이다. 다음 예는 필자가 학습심리학에서 기본 기제로서 조건형성이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네모 상자 안에 포함시킨 것은 용어나 주요 내용을 요약한 일종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화살표는 그 개념들 간의 관련성을 술어(동사나 형용사)로 표현한 것이다. 백지에 읽은 내용을 연필로 정리해도 되고, 이 작업에 도움이 되는 상용 혹은 무료 소프트웨어를 사용해도 될 것이다. 한 가지 주의 말씀. 프로그램을 사라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리하는 과정 혹은 작업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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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도의 예


배운 내용을, 즉 ‘학’한 것을 ‘습’하는 첫 과정이 체계적 정리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도록 하자.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며 [인지공학심리학:인간-시스템 상호작용의 이해], [언어심리학], [인지심리학], [현대심리학개론]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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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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