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디어 헌터 - 베트남 전쟁이 남긴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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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3회 작성일 16-02-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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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미국 북동부 펜실베니아 주의 한 마을. 이곳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마을의 철공소에서 일하는 이민 2세 닉, 마이클, 스티븐, 엑셀, 스턴은 틈 날 때마다 사슴 사냥을 즐기는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의 평범한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닉, 마이클, 스티븐이 베트남 전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중 스티븐은 베트남으로 떠나기에 앞서 결혼식을 올린다. 다섯 명의 친구들은 결혼식이 끝난 후, 피로연을 겸한 송별회를 갖는다. 그런 다음 새신랑 스티븐을 제외한 네 명이 마지막으로 사슴 사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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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쇼팽 [야상곡 g단조 작품 15 제3번] / 마우리치오 폴리니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베트남 전에 참가한 닉과 마이클, 스티븐은 운 나쁘게 베트콩의 포로가 된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참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베트콩들이 강제로 포로들에게 러시안룰렛 게임을 시킨 것이다.

총에서 언제 총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포로들이 총을 자기 머리에다 방아쇠를 당긴다. 마음 약한 스티븐은 그때마다 공포와 경악의 비명을 지른다. 다행히 마이클이 용기를 내어 참혹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이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이렇게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경험한 세 친구. 이 중 닉은 탈영을 해서 생사를 모르는 상태가 되고, 스티븐은 다리를 다쳐 불구의 몸이 된다. 세 사람 중에서 마이클만이 유일하게 성한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그 후 마이클은 친구들과 함께 사슴 사냥에 나선다. 험준한 산을 헤매다가 드디어 사슴을 발견한 마이클. 그의 총구 앞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슴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잡힌다. 순간 마이클은 총을 내려놓는다. 전쟁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슴을 죽였지만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후에는 살아있는 생명을 향해 함부로 총질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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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슴을 쏘지 못하는 마이클



그로부터 얼마 후 마이클은 탈영 후 행방불명이 된 닉을 찾아 다시 베트남으로 떠난다. 그리고 백방으로 찾아 헤맨 끝에 어느 도박판에서 러시안룰렛에 열중하고 있는 닉을 발견한다. 하지만 정신이 완전히 돌아버린 닉은 마이클을 알아보지 못한다. 닉은 마이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다가 결국 총알이 튀어나와 죽고 만다.

친구와 가족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적인 장례예식을 치르고 닉을 고향 땅에 묻는다. 장례를 끝내고 린다의 집에 모인 옛 친구들. 모두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God bless America]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한 사람씩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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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장례식에 참가한 마이클과 린다.





미국에 축복을

사랑하는 내 조국

보호하고 이끄소서

밤에는 천상의 빛으로

산에서 평원으로

대양의 흰 포말까지

미국에 축복을

정다운 나의 집


어빙 벌린이 작곡한 [God bless America]는 미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일종의 애국 가요라고 할 수 있다. 독립기념일은 물론이고, 9.11 테러와 같은 국가적인 불운을 당했을 때마다 이 노래는 미국인의 결속을 다지고,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아! 대한민국]와 같은 곡이 바로 [God bless America]이다.

조국을 찬양하는 노래이니만큼 이 노래는 힘차게 불러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모두가 맥없이 우울한 표정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들의 선조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 땅으로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바라던 핑크빛 미래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의 축복을 받는, 사랑하는 조국 아메리카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좌절된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해, 그 산산이 부서진 꿈 앞에 슬픈 축배를 보내는 것뿐이다. 이들이 힘없이 부르는 조국찬가에서 희망과 축복이, 절망과 고통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역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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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판에서 러시아룰렛 게임을 하는 닉



[디어 헌터]는 전쟁의 비극을 다룬 영화지만 처음부터 우울한 분위기를 띠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이것이 정말 전쟁 영화일까 의심이 들 정도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이 그려진다.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평화롭고 때로는 행복해 보이는 그런 일상들. 사슴 사냥도 그런 일상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사슴 사냥은 의미가 달랐다. 사냥을 끝내고 마을로 내려온 젊은이들은 술을 마시기 위해 클럽을 찾는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중첩된 감정으로 약간 들떠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면서 술을 마신다. 그런데 바로 이때 클럽 한쪽에서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한 친구가 석별의 정을 담아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쇼팽의 [야상곡 g단조 Op.15 제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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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같이 모여 술을 마시는 닉, 마이클, 스티븐(좌로부터)



야상곡은 제목 그대로 ‘밤의 서정’을 담은 것으로 본래는 교회에서 밤 기도서를 낭송하기 전에 부르는 기도의 노래였다. 그런데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존 필드라는 영국의 작곡가가 이것을 독립된 양식으로 만들었다. 필드의 야상곡은 꿈꾸는 듯 조용한 것이 특징인데, 이것을 더욱 섬세하고 화려하게 발전시킨 사람이 바로 쇼팽이다. 쇼팽의 야상곡은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서정적이고 달콤하지만, 개중에는 극적이고 웅장한 것도 있다.

영화에 나오는 [야상곡] 3번은 쇼팽의 다른 야상곡에 비해 소박한 편이다. 쇼팽 야상곡의 특징인 화려한 장식음 없이 소박하고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다. 장식음이 없는 대신 페달의 효과적인 사용을 통해 음빛깔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화려함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자 그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던 친구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숙연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 시간이 지나면 이제 다시는 이런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의기투합해서 사냥을 나가고, 술을 마시고, 왁자지껄 떠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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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사냥을 하는 마이클



세 사람 중에 마이클만 성한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환영하려고 모인 친구들 앞에 선뜻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저 먼 발치에서 오랫동안 남몰래 연모의 정을 품어온 닉의 애인 린다가 자기를 기다리다 지쳐 돌아가는 친구들을 배웅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바로 이 장면에서 이 영화의 주제곡인 스탠리 마이어즈의 [카바티나]가 흐른다. 이 영화에 삽입되어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가 연주한 후 클래식 기타의 명곡이 된 곡이다. 같은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She was beautiful]이라는 노래도 기타곡 만큼이나 유명하다.

이 영화에서 [카바티나]는 일종의 주제곡으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앞에서 얘기한 쇼팽의 [야상곡]과 함께 듣는 사람을 로맨틱한 슬픔에 빠지게 한다. 영화 장면과 함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찌릿하고 애잔해지는 것을 느낀다.

영화가 끝난 후 주제곡인 [카바티나]의 로맨틱한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화면에 등장인물들의 얼굴이 하나씩 나타난다. 화면 속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닉이 환하게 웃고 있다. 마이클은 익살스런 표정을 하고 있으며, 린다 역시 누군가에게 행복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전쟁이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기 전의 모습들, 그 환한 모습들을 배경으로 흐르는 [카바티나]. 그 달콤한 멜로디가 전쟁의 비극을 애잔한 로맨티시즘으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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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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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발행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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