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꽃피는 봄이 오면 - 아이들의 꿈을 위한 희망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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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85회 작성일 16-02-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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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다른 데보다 겨울이 길어요.
그래도 봄은 오긴 오죠.”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마을의 약사 수연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그런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그토록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다른 데보다 유난히 겨울이 춥고 긴 탄광촌에서 작지만 따스한 희망을 건져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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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쥬세페 시노폴리{지휘}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주인공 현우는 대학에서 트럼펫을 전공했다. 한때 교향악단 단원이 꿈이었던 그는 지금 현실의 벽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다.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다 보니 변변한 돈벌이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사랑하던 여인과도 헤어지고, 지금은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채 현실에 대한 불만을 냉소적으로 토로하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탄광촌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관악부 지도교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된다. 그리고는 거의 도피하는 심정으로 탄광촌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 앞에 펼쳐진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낡은 악기, 찢어진 악보, 빛바랜 트로피와 상장들만 초라한 연습실을 채우고 있다. 이 학교 관악부는 올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강제 해산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관악부 학생들의 실력은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우는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싹트고 있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관악부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현우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몸이 아픈 재일이 할머니의 병원비를 위해 평소의 소신을 꺾고 카바레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반대로 관악부에 나오지 못하는 용석이를 위해 그의 아버지를 설득하러 가기도 한다. 도대체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나름대로 밝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자신도 가슴 속에 작은 희망을 키운다.

관악부 아이들 중에 여자 친구 앞에서 온갖 폼을 다 재며 색소폰을 연주하는 용석이가 있다. 용석이는 장래에 ‘케니 지’같은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용석이가 연습에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현우는 용석이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탄광으로 간다. 막장에서 막 일을 끝내고 나온 용석이 아버지는 현우에게 젊었을 때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해, 그리고 그 후에 만났던 절망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나도 젊었을 때는 꿈이 있었노라고.

그로부터 며칠 후, 탄광을 찾은 아이들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광부들 앞에서 연주를 한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이 연주하는 곡은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제1번]이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대사에서 제목을 따 왔다고 하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클래식 명곡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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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광부들 앞에서 연주하는 현우와 아이들



영국 런던에 있는 로열 앨버트 홀에서는 해마다 ‘프롬’이라는 여름 음악제가 열린다. 매해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세계 각국의 유명 연주자들이 참가하는 이 여름 음악제는 언제나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시작을 한다. 체코의 ‘프라하의 봄 축제’가 언제나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으로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제를 어떤 작곡가의 곡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그가 곧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엘가는 바로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하지만 본래부터 엘가가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영국 남부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엘가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무명 작곡가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그가 비약적인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보다 9살이나 연상인 앨리스라는 여성과 결혼을 하고 난 후부터였다. 상류계급 출신이었던 아내 덕분에 엘가는 상류 사회로 진출할 수 있었고,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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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와 그의 부인 앨리스 <출처: Wikipedia>



비천한 출신의 사람이 성공하면 으레 그런 것처럼 엘가 역시 자기가 하층민 출신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감추고 싶어 했다고 한다. 촌뜨기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언제나 신사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다녔으며, 시골뜨기 냄새가 나는 악센트도 고쳤다. 엘가가 이런 콤플렉스와 얼마나 악전고투했는지는 그가 악보에 ‘품위 있게’라는 지시를 자주 집어넣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렇게 그는 뼈 속 깊이 상류층이기를 열망했다.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서거하고 에드워드 7세가 즉위하게 되자 엘가는 그의 대관식에서 연주할 찬가를 작곡했다. [위풍당당 행진곡] 중에서 아이들이 광부 앞에서 연주한 바로 그 부분을 떼어내어 가사를 붙인 합창곡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희망과 영광의 나라]이다.



희망과 영광의 땅, 자유의 어머니,

당신에게서 나온 우리가 어찌 당신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 넓고 넓게 당신의 영역이 세워지니

하나님이 당신을 강하게, 더 힘 있게 만드네.


[희망과 영광의 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 왕실을 빛내기 위해서, 더 나아가 대영제국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서 작곡한 것이다. 말하자면 왕실과 조국에 바치는 엘기의 충성가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영국 사람들은 이 곡을 애국가처럼 부른다. 대영제국의 영광이 이미 무너져버린 지금도 그때의 영광을 반추하며, 또 언젠가 그런 날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며 감격에 차서 부른다.

언제가 어떤 사람이 영국을 ‘망해가는 나라’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유럽으로 여행 갔을 때 런던의 거리에서 유난히 ‘로열’이니 ‘임페리얼’이니 하는 단어가 자주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뭐랄까. 좋았던 시절을 반추하면서 살아가는 귀족 미망인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약진하는 신흥 경제대국에 밀리면서도 여전히 ‘대영제국’ 운운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그 시대착오적인 태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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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 악보 받은 재일과 현우





마을 약사 수연과 현우




그래서일까. 나는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을 때마다 무언가 지나친 허세 같은 것이 느껴지곤 한다. 귀족 출신이 아닌 엘가가 애써서 귀족 행세를 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이제는 한 물 간 나라의 국민들이 애써 그것을 부정하며 여전히 자기들이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안타까운 허세 같은 것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과장과 허세가 이 곡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모양은 물론 소리까지 번쩍번쩍 빛나는 금관악기의 화려함이 가장 돋보이는 곡. 그래서 한껏 힘을 주고 폼을 재며 연주를 해야 제맛이 나는 곡. 바로 그런 곡이 [위풍당당 행진곡]이다.

그러나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아이들이 연주하는 [위풍당당 행진곡]은 이런 허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연주하는 엘가는 위풍당당하지도 않았고, 찬란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았다. 듣는 이에게 앞으로 굉장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하지도 않았다. 비를 잔뜩 맞으며 어두운 음색으로 연주하는 음악에서 어떤 비장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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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현우





트럼펫을 연주하는 현우




[꽃피는 봄이 오면]은 강원도에 있는 도계 중학교 관악부와 지도 교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논픽션이라고 한다. 관악부 아이들 중에는 나중에 서울의 유명 예고에 합격한 아이들도 있었다. 언젠가 TV를 통해 강원도 산골에서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입학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가 눈부신 성공을 거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아이들처럼 나름대로 작은 희망을 키워나가고 있지 않을까. 세속의 기준으로 볼 때 굉장한 성공은 아닐지라도 긴 겨울 끝에 찾아온 자신의 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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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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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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