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귀여운 여인 - 영화 속 [라 트라비아타]의 비극적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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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6회 작성일 16-02-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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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능력이나 배경으로 상류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여성이 동화 속 주인공 신데렐라처럼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단번에 인생 역전을 이루고자 하는 심리를 말한다. 이 말처럼 요즘은 ‘신데렐라’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신데렐라가 되었다’라는 말의 이면에는 미천한 출신이 반반한 얼굴 하나로 벼락출세했다는 경멸 어린 시선이 숨어 있다.

줄리아 로버츠, 리처드 기어 주연의 영화 [귀여운 여인]은 대표적인 신데렐라 영화다. 에드워드는 망해가는 회사를 사들여 되파는 일은 하는 부유한 사업가이다. 어느 날 그는 사업차 로스앤젤레스에 갔다가 거기서 비비안이라는 매춘부를 만난다. 비비안은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춘부 일을 하고 있지만, 성품이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가씨이다. 게다가 누가 보아도 반할만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다. 이런 비비안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 에드워드는 그녀에게 일주일 동안 자기의 여자 친구 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금전적인 대가를 전제로 한 계약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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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1아! 그이인가(Ah! forse lui) / 안나 네트렙코음악 재생
2지난 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 / 안나 네트렙코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비비안은 에드워드가 준 신용카드를 가지고 상류층 여자들이 드나드는 명품 숍에서 신나게 물건을 사들인다. 늘 싸구려 옷만 걸쳤던 그녀는 돈의 힘으로 우아한 귀부인으로 변신한다. 그 후 비비안은 에드워드의 안내로 상류층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하게 된다. 그중 가장 놀라운 체험은 비행기를 타고 오페라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오페라 관람은 그녀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때 비비안이 본 오페라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였는데, 생전 오페라를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비안은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린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계약했던 일주일이 다 흘러갔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처럼 시계가 열두시를 친 것이다. 파티는 끝났고, 신데렐라는 다시 잿빛 투성이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끝난다면 이것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마지막 반전 즉, 유리구두가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와 약속한 일주일이 지난 후, 비비안은 매춘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에드워드와 일주일을 함께 보내는 동안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장춘몽일 뿐. 그녀 앞에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바로 에드워드가 그녀를 찾아온다. 왕자가 유리구두의 임자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귀여운 여인]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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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들고 비비안을 찾아온 에드워드



영화에서 비비안이 본 오페라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이다. 그녀는 오페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것은 주인공 비올레타의 처지가 자기의 처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주인공 비올레타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돈 많은 남자들의 ‘스폰’을 받으며 살고 있는 화류계 여자이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어느 날, 진실한 사랑을 만난다. 알프레도라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 후 비올레타는 화류계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 근교에서 알프레도와 동거에 들어간다. 하지만 알프레도가 집을 비운 사이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찾아와 헤어질 것을 요구한다. 비올레타는 눈물을 머금고 알프레도를 떠난다. 나중에 제르몽이 자기가 한 일을 뉘우치는 편지를 보내고, 알프레도 역시 그녀를 다시 찾아오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비올레타의 병이 너무 깊어져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결국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라 트라비아타]는 여성 취향의 오페라이다. 줄거리는 물론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여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온갖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주인공 비올레타는 [축배의 노래]와 [아! 그이인가]를 부르는 1막을 제외하고는 공연 내내 처절하게 흐느끼는 것으로 일관한다. 오페라의 등장인물 중에서 최고의 ‘엘레지의 여왕’을 꼽으라면 단연 비올레타라고 할 정도로 전형적인 비련의 여인으로 나온다. 단조의 처연한 멜로디를 타고 흐르는 비올레타의 흐느낌은 너무 처절해서 듣는 사람조차 비탄에 빠지게 한다.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슬픔이 비비안에게 그대로 전해져 그녀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도록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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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관람하는 비비안과 에드워드



영화에서는 비올레타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는 [서주]와, 1막에서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를 생각하며 부르는 아리아 [아! 그이인가],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 그리고 비올레타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이 중 [서주]는 음악적으로 2막에서 제르몽의 부탁을 받은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대목과 연관이 있다. 이 대목에서 이별을 결심한 비올레타가 아무것도 모르는 알프레도에게 “나를 사랑해줘요. 알프레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도 사랑해 줘요.”라고 처절하게 노래하는데, 막이 오르기 전에 나오는 [서주]는 이 멜로디를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것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서곡들이 대부분 스케일이 크고, 남성적인 것에 비해 [라 트라비아타]의 [서주]는 다분히 신파적이고, 여성적이다. 그래서 이 오페라를 ‘눈물 없이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이어서 나오는 [아! 그이인가]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아리아의 백미로 불리는 곡이다. 파티에서 알프레도를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된 비올레타는 갈등에 빠진다. 그래서 이렇게 독백하는데, 이 대목은 레치타티보(오페라에서 대사하듯이 노래하는 것)로 부른다.



“이상해. 이상해. 그가 내게 해 준 말들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울리고 있어. 진정한 사랑이 내게 불행을 가져올까? 불쌍한 내 영혼. 나는 어쩌면 좋지? 아무도 나를 이렇게 불타오르게 한 적이 없었어. 그전에는 몰랐던 기쁨이야.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 내가 과연 이 기쁨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동안 살아왔던 공허한 삶을 위해.”

이렇게 독백한 다음 본격적인 아리아로 들어간다. 느린 템포로 부르는 서정적인 아리아이다.



“그가 그동안 내 영혼이 혼란 속에 그려왔던 바로 그 미지의 대상인가? 순수하고 경각심 있는 그가 앓고 있는 여인 집에 들어와 그녀를 새로운 열병으로 불타 오르게 하고, 그녀를 사랑에 눈 뜨게 했어. 우주를 뒤흔드는 그러한 사랑. 신비스러운 지고의 사랑. 내 마음에 짐과 기쁨이 되는 그런 사랑.”

그러나 여기까지 노래하고 난 비올레타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자기의 처지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미쳤어. 미친 짓이야.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불쌍한 여자. 혼자 버림받았어. 파리라고 하는 이 사막에. 내게 바랄 게 뭐가 남아 있을까? 어쩌면 좋지? 쾌락을 즐기면서 나 자신을 육체적 쾌락의 수렁에 빠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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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비올레타



레치타티보로 이렇게 외친 다음 빠르고 화려한 아리아로 넘어간다. 내용은 앞으로도 그저 자기 ‘생긴 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자유롭게 기쁨을 좇아 날아다닐거야. 남은 삶을 쾌락의 길을 따라 걸으며 살고 싶어. 하루가 시작되든 저물든 간에 영원히 웃음과 기쁨에 도취되고 살고 싶어. 새로운 스릴에서 영혼의 힘을 얻을 거야.”

이렇게 노래하는 동안 잠시 밖에서 알프레도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듣고 잠시 동요하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화려한 패시지로 노래를 끝맺는다. 이렇게 [아! 그이인가]는 사랑에 처음 눈뜬 여자의 설렘과 망설임, 희망과 절망, 비탄과 체념을 하나의 노래 속에 담고 있다. 그중에서 마지막에 부르는 [언제나 자유롭게]는 소프라노의 화려한 기교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소프라노 아리아의 꽃이다.

마지막에 비올레타는 병에 걸려 죽는다. 죽기 직전 침대에서 겨우 일어난 비올레타는 제르몽이 보낸 편지를 읽는다. 하지만 편지를 읽은 비올레타는 너무 늦었다 절규한다. 그리고 세상과 이별하는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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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오해가 풀리고 알프레도가 다시 비올레타를 찾아왔지만 그녀는 병이 깊어져 죽고 만다.





“지난날이여. 안녕. 내 행복했던 꿈들이여. 안녕. 내 얼굴의 홍조는 이미 시들었네. 아! 알프레도의 사랑이 그립구나. 버림받은 여자의 영혼에 위안을 주고 버팀목이 되었던 그. 버림받은 여자의 영혼. 주여. 그녀를 용서하고 반겨주소서. 끝났어. 이제 모두 끝났어.”

비올레타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이 아리아는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노래이다. 특히 아리아의 앞과 중간에 나오는 아름다운 오보에 소리는 처연함의 극치를 이룬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나는 비비안이 이 부분에서 가슴 저리는 슬픔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앞날이 비올레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보에 소리에 이어 “다 끝났어. 모든 것이 다 끝났어”라고 절규하는 비올레타처럼 마지막에 혼자 남겨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오페라와는 다른 결말을 맺는다. 비올레타는 슬픔 속에 죽었지만, 비비안은 백마 탄 왕자를 맞이한다.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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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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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Corbis





발행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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