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인간의 지각 - 세상을 보고 해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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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3회 작성일 16-02-0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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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와 같은 날이면 나들이 할 때 주변을 보느라 눈이 바쁘다. 온갖 초여름 꽃들이 피기 시작했고, 신록은 짙게 푸르러 지고 있어, 거리를 걸으며, 꽃들 보랴, 지나가는 자동차 피하랴,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하랴 바쁘다는 표현이 실감이 난다. 그런데 어리석은 질문하나.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런 여러 가지의 세상을 알아보는 바쁜 작업을 바쁘지 않고 쉽게 수행하세요? 아마 여러분은 “뭐 어떻게 하긴 눈으로 보면 되지”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할지 모르겠다.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세상의 여러 사물들을 보며 그 의미를 해석하는(이를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지각(perception) 과정이라고 부른다.) 심리적 과정을 탐구하는 지각심리학의 기본 의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색깔을, 형태를, 움직이는 사물의 운동을, 그리고 삼차원적인 입체를 어떻게 파악하는 것이며, 여러 다양한 사물들을 어떻게 구별하고 알아채는 것일까?



눈으로 본다는 것



우선 “눈으로 보면 된다.”라는 표현부터 생각해 보자. 보통 우리들은 눈의 구조와 기능을 사진기에 비유 한다. 눈에도 조리개가 있고, 렌즈가 있으며, 필름이나 이미지 센서에 해당하는 망막이 있다. 예전 사진기에서는 필름은 인화하면 되고, 요새 디지털 기기에서는 이미지센서의 신호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jpg파일방식으로 바꾸면 된다. 망막에서도 원추세포간상세포가 빛을 신경 부호로 변환한다. 그러면 이 망막정보도 인화하거나, 그림 파일로 만들면 끝일까? 그렇지 않다. 망막 정보는 시상하부라는 대뇌 하부를 거쳐 대뇌 피질의 시각 영역에 전달하고, 다시 여기서 여러 다른 신피질 영역으로도 연결된다. 그러니까 사진기에서는 필름이 마지막이지만, 그에 대응되는 우리의 망막 정보는 시각적인 작용의 마지막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처리가 일어나야 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망막이 제공하는 정보는 아주 결핍되어 있어, 우리의 실제 세상 경험을 나타내주기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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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망막 정보는 시각적인 작용의 마지막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처리가 일어나야 하는 출발점이다


그림1에서처럼, 서로 다른 크기의 기울어진 정도가 다른 사각형들이, 떨어진 거리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같은 망막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말하자면, 망막 정보만으로는 어느 사각형을 보았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단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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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모나리자


그림2가 어떤 그림인지는 굳이 답이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모나리자를 단순히 ‘본다’는 표현보다는 ‘알아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미 이 명화를 여러 번 본 경험과 기억이, 설령 흐린 정보가 망막에 들어와도 알아채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지각 경험의 대부분은 세상(환경)에 관한 지식이나 과거의 기억의 영향을 받는다. 심리학도들은 이러한 지식의 영향을 하향(top-down)처리라고 부르며, 빛에서 망막을 거쳐 들어오는 상향(bottom-up) 처리와 대비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하향처리 덕분에, 주어진 정보를 넘어서는 지각 처리가 가능하고, 우리의 세상에 대한 지각 경험이 실제 세상과 잘 맞아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감각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는 정확하고 믿을만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실제 세상의 실체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대뇌의 여러 처리가 만들어 내는 즉 재구성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대뇌의 창의적인 재구성 작용은 대부분의 경우 성공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리학도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인 착시 현상이 한 예가 된다. 착시란,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지각 경험과 물리적 실체 사이에 괴리가 있는 현상을 말한다. 다음 예를 보자.



착시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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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A와 B 부분이 같은 밝기 같은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비교해보세요. 왜 그렇게 지각 되었는지 설명해 보세요!


MIT의 시지각 연구자인 아델슨(Adelson)이 만든 위 그림을 보면, 믿을 수가 없겠지만 A, B는 같은 밝기(휘도)를 갖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의 대뇌가 망막이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것들과의 비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진짜 그런지를 알아보려고, 두 영역만 남겨 놓고, 주변을 포스트잇으로 붙이고 비교해 봤다. 여러분도 직접 해보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주변 맥락 정보가 사용되는 또 다른 예로, 듀크대학의 로토(Lotto)와 퍼비스(Purves)가 만든 다음 그림의 색깔 비교에서도 알 수 있다. 윗면의 갈색 네모와 옆면의 주황색으로 보이는 네모는 사실 같은 색깔이다. 역시 다시 포스트잇으로 실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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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듀크대학의 로토(Lotto)와 퍼비스(Purves)가 만든 다음 그림


거꾸로 착시효과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도 있으며, 건축물에서 여러 예를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건물에 대한 지각 경험을 우선하여, 지각 경험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건축의 구조와 배열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물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경복궁의 근정전 바닥과 앞마당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 1미터 가량의 기울기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비가 오면 물 빠짐이 좋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그런데 눈으로 봐서는 이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한다. 남쪽으로 올수록 지붕을 낮추고, 회랑의 기둥도 북쪽 기둥을 남쪽 기둥보다 짧게 하여 높낮이가 같아 보이게 축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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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경복궁 근정전


독자들도 지금까지의 몇몇 예로 우리들의 세상 지각이 단순히 사진 찍기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망막 정보가 바탕은 되겠지만, 대뇌에 저장된 여러 지식과 정보가 합쳐져 우리의 지각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 인간처럼 지각하는 로봇을 만들어 내기 힘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지각 과정에 관한 인지적, 신경생리학적 기제가 밝혀지는 날 아마도 그런 로봇이 만들어 질 것이다.

주) 착시 그림 사용을 허락해 준, Adelson, Purves교수와 경복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 건축학도 김윤겸님께 감사 드립니다.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며 [인지공학심리학:인간-시스템 상호작용의 이해], [언어심리학], [인지심리학], [현대심리학개론]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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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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