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세 부인에게 보낸 편지 - 문화적 교양의 상징, 브람스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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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39회 작성일 16-02-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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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데보라, 로라 메이, 리타에게.

지금쯤 알겠지. 너희들 이제 나 없이 지내야 해.

우리 동네 같은 곳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나에게 큰 의미였던 너희들과 헤어지고 추억에 잠길 수 있어서 행복해. 집처럼 느껴졌던 거리와 소중한 내 세 친구들. 절대 못 잊을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도.

너희 남편들 중 한 사람과 도망가기로 했어.


평범한 주부이자 친구 사이인 데보라, 로라 메이, 리타는 아이들과 피크닉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또 다른 친구 애디 로스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는다. 애디는 편지에서 세 여자의 남편 중 한 사람과 오늘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같이 도망갈 남자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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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 엘렌 그리모(피아노),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안드리스 넬슨스(지휘) 
11악장 - Allegro non troppo음악 재생
22악장 - Allegro appassionato음악 재생
33악장 – Andante음악 재생
44악장 - Allegretto grazioso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편지를 읽은 세 여자는 동시에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를 바라본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셋 중 어느 누구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혹시 자기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때부터 세 여자는 애디 로스와 관련된 일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애디 로스는 세 여자는 물론 그녀의 남편과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들에게는 친구지만 아내들에게는 결혼생활을 위협하는 공동의 적이다. 그녀의 남편들은 이구동성으로 애디가 매우 우아하고 교양이 있으며, 지적인 여자라고 칭찬한다.



“애디는 우아하고 감각이 있어.”

“파티에 나타나는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맞추지.”


남편들은 입에 침이 마르게 애디를 칭찬하지만 그 말을 듣는 아내들은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날씬하고 예쁘고 능력 있는 데다가 문화적 교양까지 갖춘 여자.

이런 여자는 세상 모든 가정주부들의 공동의 적이다. 이들은 밖에서 치명적인 매력으로 자신의 남편들을 유혹하는 미지의 여성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다. 맨키위즈 감독의 [세 부인에게 보낸 편지]는 이런 운명에 놓인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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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디 로스로부터 편지를 받는 세 여인.



그런데 영화에는 세 여자의 공동의 적인 애디 로스의 모습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애디의 존재는 그녀의 독백과 등장인물의 대사에만 등장할 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애디 로스라는 존재를 특정한 인물이 아닌, 세상 모든 유부녀들의 공동의 적으로 일반화시킨 것이 아닐까.
여하튼 이 편지를 받은 후 세 여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들은 그날 아침 남편들이 했던 행동에서 수상쩍은 면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면서 화면은 세 사람의 결혼 생활을 그린 회상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먼저 비숍과 데보라 부부. 두 사람은 결혼 전에 둘 다 군인이었다. 군대에서 만나 결혼을 했으며, 군에 있는 동안에는 근무지에 따라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러다가 전역한 후, 비숍의 고향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시골 출신이어서 도시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데보라는 늘 열등의식과 소외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또 다른 커플은 조지와 리타. 조지는 학교 교사이고, 리타는 라디오 작가이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듯 보이지만 부부간에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조지는 리타가 광고주의 취향만을 생각해 저질 방송 원고를 쓰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리타는 남편이 자기를 속물로 보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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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과 데보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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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와 리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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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와 로라 메이 부부



또 한 커플은 포터와 로라 메이이다. 로라 메이는 가난한 집안 출신인데, 우여곡절 끝에 돈 많은 이혼남 포터와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돈 때문에 맺어진 사이라는 것을 서로 알고 있으며, 자기 부부에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로라 메이는 마음껏 돈을 쓰는 것으로 결혼생활의 공허함을 메우고 있다.

세 여자의 회상 속에서 에디 로스는 정말 멋진 여자다. 리타의 남편 조지의 생일날 애디는 생일선물로 음반을 보낸다.



“음악이 사랑의 음식이라면 틀어 봐”

이런 멋있는 메시지와 함께 보낸 선물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음반이다. 음반을 받은 조지는 흥분해서 소리친다.



“전쟁 전에 비엔나에서 녹음한 거네. 어떻게 구했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한 지가 일 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아직까지 이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런 애디의 수준 높은 배려에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와이프 리타는 묘한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라디오 일을 그만두라는 남편의 말에 화가 나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당신의 취향, 그리고 애디와 나를 차별하는 것이 괴로워. 당신의 그 고상함, 지혜, 우월감이 지겨워.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모두 경멸하는 것도. 일을 그만두면 나는 뭐 하는데? 빨래, 다림질, 설거지? 그리고 취향이니 뭐니 하면서 애디와 비교당하면서 사는 거? 정말 애디 로스가 짜증 나.”

그러면서 리타는 애디가 선물한 브람스 음반을 책상 위에다 팽개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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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애디로부터 브람스 음반을 생일 선물로 받는다.



여기서 교양과 품위를 겸비한 애디가 고른 음악이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클래식에 내공이 쌓인 사람이 아니면 좋아하기 힘든 음악이기 때문이다. 만약 애디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나 [합창 교향곡],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 같이 널리 알려진 곡을 골랐다면 어땠을까. 보통 사람이 가지지 못한 문화적 교양의 상징으로서 애디의 존재가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고른 것 같다. 적어도 이 곡을 좋아한다는 것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상당한 안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문화적 소양, 음악적 안목의 표상이다. 이 곡은 브람스가 48살 때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작곡한 것인데, 비록 협주곡이지만 거대한 교향곡에 피아노 파트가 첨가된 듯 웅대하면서도 심오한 기상을 지니고 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아련한 혼 소리로 시작한다. 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아련한 소리이다. 그 소리에 피아노가 아르페지오로 대답을 한다. 이렇게 시작은 로맨틱하다. 하지만 이 고요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피아노가 폭발하듯 카덴차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내성적인 듯하지만 내면에 불꽃같은 열정을 품고 있는 브람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짧은 서주에 이어 카덴차와 같은 성격의 피아노 독주가 펼쳐지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피아노의 독백이 끝나면 오케스트라가 이에 큰 소리로 응답한다. 그런 다음 신비로운 분위기의 멜로디를 살짝 선보인다. 곧이어 피아노가 등장해 주제의 모티브가 섞여있는 카덴차풍의 선율을 자유분방하게 연주한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여성 취향의 음악은 아니다. 물론 중간중간 로맨틱하고 달콤한 선율이 나오기는 하지만 쇼팽이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의 그것처럼 지속적으로 여자들의 귀를 간지럽혀주지는 않는다. 로맨틱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이 굵은 남성적인 로망스이다. 애디 로스가 이 곡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녀가 보통 여자들과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그녀는 진지하고 씩씩하며 선이 굵은 남성적인 취향을 가졌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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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에 모인 리타 부부와 로라 메이 부부



애디는 세 남자 중 누구와 도망을 쳤을까? 결론은 아무도 아내를 떠난 남자가 없다는 것이다. 리타는 집에 남편이 있는 것을 보고 감격해서 남편을 부둥켜안고 좋아한다. 로라 메이 역시 집에 남편 포터가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한다. 겉으로는 여전히 그와 언쟁을 벌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남편에 대한 미움이 한풀 꺾인 상태이다. 하지만 데보라는 남편으로부터 오늘 밤 돌아오지 못한다는 쪽지를 받고 그가 애디와 도망갔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나중에 로라 메이의 남편 포터가 애디와 도망가기로 했던 사람이 자기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오해가 풀린다. 포터는 애디와 떠나기로 했지만 마음을 바꾸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해서 세 쌍의 부부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여전히 부부로 남게 되었다.

애디는 애초부터 이것을 알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디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경쾌한 목소리로 “안녕!”이라고 모두에게 작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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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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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발행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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