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작은 신의 아이들 - 랜다 헤인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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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38회 작성일 16-02-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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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과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듣고,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보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중 하나를 함께 할 수 없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음악의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없다면? 상대방과 소통하는 벽의 한쪽 면이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영화 [작은 신의 아이들]의 주인공 제임스도 그랬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 여성 사라와 장애인 학교 교사인 제임스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로 실제 청각장애인인 말리 매트린이 여주인공 사라 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었다. 여기서 제임스는 사라와 자기가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을 함께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인 사라에게 이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 제임스는 사라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사라의 세계는 온통 정적으로 둘러싸여 있다. 제임스는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지 못하며, 사라 역시 정적 밖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지 못한다. 영화는 아름다운 바흐의 음악을 통해 그 안타까운 소통 부재의 현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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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중 2악장 / 헨릭 쉐링(바이올린), 모리스 하슨(바이올린),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네빌 마리너(지휘)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이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있는 청각 장애인 학교에 젊고 유능한 교사 제임스 리즈가 부임해 온다. 제임스는 매우 의욕이 넘치는 교사로 자기만의 독특한 수업 방식으로 매사에 소극적인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학생들도 이런 제임스의 열정에 감동해 점차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간다.

그러던 중 제임스는 학교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사라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라는 이 학교 졸업생으로 한때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매사에 반항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고 있다. 제임스는 이런 사라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사라는 이런 그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끝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제임스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사라는 마침내 굳게 빗장을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제임스를 받아들인다.

그 후 제임스는 사라에게 독순술(상대방의 입술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 방법)과 입으로 소리를 내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하지만 사라는 이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제임스는 학생들을 훈련시켜 마침내 입으로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정작 자신의 애인인 사라에게는 이런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그녀가 워낙 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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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장애자 학교에 새로 부임해 온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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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소리를 듣지 못하나 영리하고 아름다운 사라



사라가 이것을 거부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입으로 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오자 아이들이 그녀를 놀려댔다. 그때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라는 그때부터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제임스가 아무리 간청을 해도 요지부동으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제임스와 사라는 함께 살지만 둘 사이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다. 제임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정적의 세계에 갇혀 있는 그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 하고, 사라는 그런 제임스가 자기를 동정하고 있다고 오해한다. 결국 두 사람은 어느 날 크게 싸운다. 그 후 사라는 제임스의 집을 나와 8년 동안 찾지 않았던 어머니의 집으로 간다. 거기서 사라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오랫동안 서먹했던 모녀 관계가 풀리면서 사라는 제임스의 바람대로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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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서로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두 사람.



[작은 신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제임스가 바흐의 음악을 감상하는 장면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집에 제임스의 제자들이 찾아온다. 제자들은 TV를 크게 틀어놓고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스포츠 중계방송을 본다. 제임스는 그 소음에 넋이 나갈 지경이지만 듣지 못하는 사라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제자들이 떠나고 난 후, 집은 갑자기 정적에 휩싸인다. 그러자 제임스가 말한다. 그동안 수화를 하느라 힘들었던 자기 손을 쉬게 하고, 이제 음악을 들을 것이라고. 오랜만에 찾아온 정적의 시간에 자신만을 위한 휴식을 가질 것이라고. 그리고는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려놓는다. 그 순간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2악장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진다. 음악을 듣는 제임스는 잠시 황홀에 빠진다. 듣지 못하는 사라도 마치 음악을 듣는 듯한 표정을 하고 조용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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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에게 수화로 사랑을 고백하는 사라



여기서 나오는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은 바흐가 쾨텐에 있던 시절에 작곡한 것이다. 협주곡은 이탈리아어로 ‘콘체르토(concerto)’라고 하는데, 이는 ‘협동하다’, ‘참여하다’, 경쟁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중세 라틴어 ‘콘체르타레(concertare)’에서 나온 말이다.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며 함께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협주곡 하면 한 명의 독주자와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두 대의 바이올린이 독주자로 참여하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흐가 살던 바로크 시대에는 오히려 이것이 보편적인 협주곡의 형태였다.

협주곡의 시작은 의외로 소박했다. 바로크 시대에 협주곡은 대개 합주협주곡이었다. 원어로 콘체르토 그로쏘(concerto grosso)라고 하는데, 몇 개의 악기로 구성된 독주악기군과, 전체 관현악단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합주하는 형식을 말한다. 여기서 독주악기군은 콘체르티노, 관현악단은 투티 혹은 리피에노라고 불렀다. 콘체르티노는 주로 바이올린 두 대와 지속저음(첼로, 하프시코드 등과 같은 화성악기가 담당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때로는 관악기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보다 규모가 큰 전체 관현악단은 지속저음을 지닌 현악 오케스트라에 경우에 따라 목관악기나 금관악기가 첨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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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제임스와 사라



처음에 합주협주곡은 여러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코렐리(Arcangelo Corelli), 토렐리(Giuseppe Torelli), 비발디(Antonio Vivaldi)를 거치면서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첫 악장은 빠르고 활기차며, 두 번째 악장은 느리고 서정적, 세 번째 악장은 다시 빠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활달한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도 협주곡은 3악장으로 빠름-느림-빠름의 기본 구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협주곡의 콘체르티노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규모가 점점 작아진다. 이것은 협주곡 안에서 독주 부분이 점점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처음에는 대여섯 명이던 것이 그 수가 줄어서 나중에는 한 명만 남게 된다. 독주악기와 전체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은 독주 악기가 여러 대에서 한 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의 2악장에서 두 대의 바이올린은 서로 같은 선율을 시차를 달리하거나 음높이를 달리해서 모방한다. 두 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자료는 같은 곳에서 나왔다. 그렇게 같은 음악의 자료를 가지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것은 독주자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 낭만주의 협주곡에서는 볼 수 없는 공존과 조화, 화해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기서 두 독주자의 관계는 갈등이 아니라 화합이며, 대조가 아니라 대비이다.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관계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런 것이 되지 않을까.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2악장에서 두 대의 바이올린은 너무나 아름답게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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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사라는 음악을 즐기며 춤을 춘다.



그런데 황홀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던 제임스가 갑자기 음악을 꺼버린다. 이런 제임스의 행동에 사라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말한다. 이 아름다운 음악을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어 슬프다고. 이 장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서로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두 사람. 한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 '다름‘은 너무나 본질적이고 근원적이어서 그 어떤 노력으로도 극복이 불가능하다. 제임스는 그 불가능에 대해 절망한다. 그런데 이렇게 제임스가 절망하고 있을 때, 다시 음악이 들려온다. 사라가 틀어놓은 것이다. 곡은 바로 조금 전에 들었던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2악장.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사라는 제임스에게 말한다. 자기에게 음악을 보여달라고. 음악을 보여달라고? 제임스는 몸으로 음악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곧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어떤 몸짓으로도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는 실망하는 제임스를 위로한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그녀는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아예 근원적으로 그런 경험을 차단당한 채 살아왔기에 그 절망이 어떤 것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이 장면에 흐르는 바흐의 음악은 이 가슴 아픈 진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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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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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발행201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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