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결정의 근거 - 관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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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16-02-0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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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일이 있다. 그다지 먼 과거가 아닌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 중 하나도 미국 프린스턴대학 심리학과의 교수인 바로 그 유명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다. 그는 1996년 작고한 자신의 절친한 동료인 아모스 트베르스키(Amos Tversky)와 함께 수많은 연구를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 분야에서 진행했으며 오늘은 그 중 심리학사에 길이 남을 연구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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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 A: 200명을 살릴 수 있다.


* 프로그램 B: 33%의 확률로 600명을 구하고, 67%의 확률은 아무도 살리지 못한다.

어느 것이 더 좋아 보이는가?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들께서도 한 번 선택해 보시라. 실제 연구에서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당신이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자라면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겠는가?” 이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프로그램 A가 더 좋아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래의 경우는 어떠한가? 주어진 문제 상황은 동일하다. 다만 프로그램 A와 B가 각각 다르게 표현된다. 이전의 문제를 보지 않은 새로운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이 물어본다.

* 프로그램 A: 400명이 죽는다.


* 프로그램 B: 33%의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고, 67%의 확률로 600명이 죽는다.

흥미롭게도 이제 사람들은 프로그램 B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B를 선택한 사람들의 수가 A를 선택한 사람들의 수보다 더 많다는 것이며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유사한 절차와 재료를 사용한 다른 연구들에서도 상당히 안정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심지어 특정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람들이 자기의 직업과 연관된 내용으로 위의 문제를 재구성해 제시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


같은 이야기, 다른 결과



그런데 이는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2개의 프로그램 A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600명의 사람들 중 200명이 사나 400명이 죽으나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두 개의 프로그램 B 모두에도 마찬가지이다. 결국은 같은 말을 표현만 달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불일치가 일어난 것일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왜 600명 중 “200명을 살리는 방법”은 선호가 되는 반면 “400명을 죽이는 방법”은 선호가 되지 않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A와 B의 차이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A, B에서든 두 번째 A, B에서든 A와 B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바로, A보다 B가 더 모험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A는 결과가 확실하고 B는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번째의 경우처럼 A를 선호하는 경우에는 모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며 B를 더 선호하는 두 번째의 경우에는 오히려 모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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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획득의 관점에서는 모험을 회피하려 하고 손실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모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출처: gettyimages>


그렇다면 왜 첫 번째의 경우에서보다 두 번째의 경우에 사람들은 모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을 더 보였던 것일까? 트베르스키와 카네만은 두 A 각각에 포함되어 있는 “살린다”와 “죽는다”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구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획득과 손실의 관점에서 볼 때 획득에 가깝다. 반면, 죽는다는 것은 손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이 내린 결론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손실의 관점으로 볼 때 더 모험적이다”라는 것이다. 이는 확실한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도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동일한 문제이면서도 이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확실하게 작은 보상은 좋지만 확실하게 작은 손실은 너무 싫다



우리의 상식 혹은 직관을 여러모로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결과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작은 것을 확실하게 주는 상황이나 대상을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은 상황과 대상보다 더 좋아하곤 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적지만 반드시 감수해야 하는 손실을 지나치게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나머지 더 큰 불확실성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트베르스키와 카네만에 의하면 이런 경향성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행동해야 더 좋은 경우라면 이는 분명이 본성이 만들어내는 오류이거나 편향일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위의 예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같은 문제나 대상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점을 달리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불확실한 것이든 확실한 것이든 어느 하나가 더 좋아 보이거나 왠지 관심이 갈 때 관점을 달리해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지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조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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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문제이면서도 이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출처: gettyimages>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의 A와 B 중 더 좋은 것을 논리나 합리성에 의해 가린다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기대 값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실제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은 대안들 간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면서 또 많은 경우 그 결과가 불확실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 판단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 근거를 통해 빠른 시간에 결론에 도달한다. 트베르스키와 카네만은 획득과 손실이라는 두 가지 프레임을 통해 우리가 판단의 근거가 많은 경우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에 존재하지 않을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판단의 근거들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인가를 보다 자세히, 그리고 다양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 편에서부터는 그 근거들의 다양함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왜냐하면 획득과 손실이라는 두 가지 관점 말고도 많은 요인들이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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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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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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