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전쟁의 영향 - 30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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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4회 작성일 16-02-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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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표


30년 전쟁 개요

전쟁주체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vs 보헤미아 등 반가톨릭연합,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네덜란드, 튀르크

전쟁시기


1618~1648

전쟁터


중부 유럽(주로 독일)

주요전투


바이센베르크 전투, 루터 전투, 브라이텐펠트 전투, 뤼첸 전투, 뇌르틀링겐 전투, 로크로아 전투, 얀코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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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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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루이14세.



공식적인 소멸은 아직도 160년여를 기다려야 했지만(1806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결과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이제 그 영역은 수백 개의 각자 주권을 갖춘 정치단위들로 쪼개져 있었으며, 합스부르크 황제는 그 중 가장 강력한 정치단위인 오스트리아의 지배자일 뿐이었다.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와 연합하며 독일의 남쪽에서 세력을 규합해 나가는 동안, 북쪽에서는 이 전쟁의 결과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힘이 점차 강해졌다. 이 두 세력은 서로 대치하고 갈등하다가 19세기 독일 통일로 이어질 것이었다.

승자인 프랑스와 스웨덴에서는 왕권이 전에 없이 강해졌다. 프랑스에서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왕권에 대한 지방영주들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롱드의 난’이 일어나 어린 루이 14세를 위협했지만, 결국 절대주의 왕권이 공고히 자리잡게 된다. 절대주의란 중세적인 명목적 주권이 실질적 주권(대내적 최고, 대외적 동등권으로서 모든 특권과 관행을 넘어서 징병, 징세 등의 국가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으로 변하여 ‘근대주권국가’의 틀이 잡혔는데, 아직 그 소유권이 국민이 아닌 국왕에게 남아 있었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30년 전쟁은 패자인 독일에게는 분열을, 승자에게는 통합을 가져왔지만 근대적 주권과 국가의 태동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쪽이나 비슷했다. 독일에서는 하나의 주권이 아닌 수백 개의 주권이 출현했을 뿐이었다.



평화를 바라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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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구걸로 살아가는 퇴역병을 그린 그림. 1622년.



하지만 적어도 독일 땅에서는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주권이니 뭐니가 아니라 비참과 혼란이었다. 이 전쟁으로 독일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망했다고 한다. 마그데부르크에서 3만 명이 동시에 학살된 것을 비롯해서, 30년씩이나 전쟁이 이어지고 군대의 규모와 무기의 파괴력이 점점 커지다 보니 전쟁터마다 수습할 수 없을 정도의 주검이 나뒹굴었다. 보헤미아의 어느 도시는 전쟁 전에 6천 명의 주민이 살았는데, 끝났을 때는 850명뿐이었다. 도시 전체가 황무지처럼 변해 버린 곳도 많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참상은 이어졌다. ‘일자리’를 잃은 병사들이 떼강도로 돌변하여 민가를 약탈하고 살인과 강간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연구에서는 이런 30년 전쟁의 피해가 과장된 게 아닌가 하는 견해가 여럿 나온다. 당시의 전쟁 기술과 규모로 볼 때 20세기의 세계대전처럼 방방곡곡이 폐허가 되는 일은 불가능했으며, 피해는 격전지 몇 곳에만 한정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마치 세상이 망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피해를 과장했다면, 그 뒤에는 그만큼 그 피해가 예전 전쟁에서 흔히 보던 피해와는 격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경악과 공포가 있지 않았을까.

오늘날에도 그렇듯, 전쟁의 비극은 인류의 반성을 가져온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피가 필요했는가? 종교?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끼리, 목회자를 신부라고 하느냐 목사라고 하느냐 정도의 차이 때문에? 종교전쟁으로 시작했다가 중반 이후 국가간의 영토전쟁으로 바뀌어 버린 30년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서 ‘더 이상의 종교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인식이 심어졌다. 종교 갈등은 그 뒤로도 그치지 않았으나, 더 이상은 세속권력이 종교를 빌미로 군대를 소집하고 도시를 약탈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동등한 국가주권을 전제로, 단일 정부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근거하는 법질서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대의 인물인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가 1625년에 쓴 국제법의 고전, [전쟁과 평화의 법]이 전후에 한껏 주목받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이런 기도를 이제 유럽인들은 신에게뿐 아니라, 인간들에게, 서로서로에게도 바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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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칼로가 1632년에 묘사한 30년 전쟁의 참상.





참고문헌 : 버나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책세상, 2004; C. V. 웨지우드, [30년 전쟁], 휴머니스트, 2011; 메리 풀브록,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 개마고원, 2000; P. R. 파머-J. 콜튼, [서양근대사], 삼지원, 1985; 김용구, [세계외교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이동언, “30년 전쟁과 합스부르크 왕가”, 조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송요태, “30년 전쟁의 영향에 관한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송요태, “30년 전쟁과 구스타프 아돌프”, 육군제3사관학교논문집.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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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역사저술가
글쓴이 함규진은 여러 방면의 지적 흐름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을 전공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주로 역사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썼고,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번역서도 많이 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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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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