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북방 전쟁 - 동토의 제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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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16-02-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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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타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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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표


북방 전쟁 개요

전쟁주체


러시아,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작센, 프로이센, 영국 vs 스웨덴, 오스만튀르크

전쟁시기


1700~1721

전쟁터


러시아, 스웨덴, 폴란드 등 북동유럽

주요전투


나르바 전투, 프라우슈타트 전투, 골로프치노 전투, 폴타바 전투, 항코 해전





러시아, 근현대사의 다크호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 유라시아 북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 나라, 러시아는 근현대 사에서 늘 ‘난공불락’의 두려운 존재였다. 나폴레옹히틀러의 야망이 러시아의 눈보라 속에 파묻혔고, 일곱 개의 제국(나폴레옹 제국, 독일 제2 , 제3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오스만튀르크 제국, 청제국, 일본제국)이 러시아가 소속된 진영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몰락했다. 전성기의 영국과 미국도 러시아의 위협을 가장 두려워했다. 국토와 인구의 규모 때문만이 아니라, 주요 서구 열강보다 한껏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다 무시무시한 동장군이 버티고 있기에 그토록 정복하기 어려운 적이 러시아였다.

그러면 러시아와 비교적 가깝고, 어느 정도 추위에 익숙한 나라라면 어떨까? 몽골은 13세기에 러시아를 유린한 다음 2백 년 동안 지배했다. 폴란드는 17세기 초 한때 모스크바를 포함한 러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스웨덴은 발트 해 연안을 든든히 틀어쥐고 러시아가 바닷길로 서유럽과 교류하는 일을 막았으며, ‘추위에 익숙한 나라’는 아니겠지만 역시 인근의 나라인 튀르크는 흑해 쪽을 막고는 때때로 남러시아를 유린했다. 17세기까지 러시아는 쓸데없이 땅덩이만 클 뿐, 문명의 변방에 동떨어져 있는 약하고 가난하고 야만스러운 삼류국가였다.

이런 추세가 반전되고, 러시아가 근현대사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된 계기가 바로 18세기가 열릴 즈음 시작된 표트르 1세 (Pyotr I, 1672~1725)의 치세, 그리고 북방전쟁이었다.



스웨덴 제국



러시아가 아직 ‘약소국’에 머물러 있던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까지, 북방의 패자는 스웨덴이었다. 스웨덴 역사에서 이른바 ‘제국 시대’라 불리는 이 시대에, 스웨덴은 다른 유럽 열강에 비하면 부족한 인구와 경제력을 보충하고자 근대적 행정개혁과 군사개혁에 매진했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발트 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다.

구스타프 1세(Gustav I, 1496~1560)가 1523년에 덴마크 세력을 몰아내고 새 왕조를 세웠고, 종교개혁을 주도해 가톨릭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광산을 개발해 국가 발전의 자금을 마련했다. 그의 뒤를 그의 아들과 손자 네 사람이 차례로 이었고, 다음으로 1611년에 즉위한 구스타프 2세 (Gustav II, 1594~1632), ‘구스타프 아돌프’라고 불리는 왕은 유례없는 개혁으로 한 세대 만에 스웨덴 국가를 근대화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으며, 획기적인 군제개혁으로 스웨덴군을 유럽 최강의 군대로 만들었다. 그는 그 군대로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를 차례로 무찌른 다음 30년 전쟁에 참전해 비록 도중에 전사했지만 스웨덴이 리보니아(지금의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지배를 확고히 하고 북독일의 포메른 브레멘, 비스마르까지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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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 왕조를 세운 구스타프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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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왕실의 ‘은의 옥좌’. 1650년에 크리스티나 여왕이 처음 쓴 뒤로 역대 스웨덴 왕들이 사용했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딸 크리스티나 여왕 (Alexandra Christina, 1626~1689)은 학예 진흥에 힘을 써서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그로티우스 (Hugo Grotius, 1583~1645)를 비롯한 학자와 예술가들을 스톡홀름의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1654년에 사촌오빠인 카를 10세 (Karl X, 1622~1660)에게 양위했고, 카를 10세는 1658년에 덴마크를 대패시키고 덴마크령이던 스칸디나비아 남단을 차지했다. 뒤를 이은 카를 11세 (Karl XI, 1655~1697)는 귀족들의 토지를 왕실로 환수하여 대토지소유자들의 겸병을 막고, 상공업을 진흥하며, 인델닌스베르크라고 하는 둔전제도를 도입해 수만 명 규모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건설된 17세기의 ‘스웨덴 제국’은 현대의 스웨덴 영토에 핀란드와 리보니아, 러시아의 일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될 땅도 포함하는)와 북독일의 일부까지 포함했으며, 발트해는 스웨덴의 ‘호수’가 되었다. 구스타프 1세부터 카를 11세까지의 군주들은 대부분 “군지휘관으로서의 군주”를 내세웠고, 개혁과 정복의 절대군주로 군림하며 국위를 크게 떨쳤다. 그러나 제국의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끝없는 전쟁으로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끊이지 않았고, 대외적으로 언제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스웨덴의 주변 국가들은 물론 멀리 영국, 프랑스 등의 서유럽 국가들까지 스웨덴을 경계하고 압박해왔기 때문이다.그리하여 본래 서로 사이가 나빴던 덴마크와 폴란드, 그리고 러시아는 암암리에 서유럽의 후원을 받으며 서로 손을 잡는 길을 모색한다. 이 때 부왕의 뒤를 이어 1697년에 즉위한 카를 12세 (Karl XII, 1682~1718). 그는 불과 15세였으나 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방불케 하는 군사적 천재이며, 야심가였다. 스웨덴 주변국들이 결집하는 가운데 젊고 공격적인 스웨덴 군주의 등장, 그것은 북방전쟁의 초석이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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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제국’의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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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12세.




참고문헌 :
버나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책세상, 2004); P. R. 파머-J. 콜튼, [서양근대사](삼지원, 1985); 김용구, [세계외교사](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윌리엄 위어, [세상을 바꾼 전쟁](시아출판사, 2005); 크리스터 외르겐젠 외, [근대 전쟁의 탄생: 1500∼1763년 유럽의 무기, 전투, 전술](미지북스, 2011); 이에인 딕키 외, [해전의 모든 것](휴먼앤북스, 2010); 제임스 크라크라프트, [표트르 대제: 러시아를 일으킨 리더십](살림, 2008); 박지배, [표트르 대제: 강력한 추진력으로 러시아를 일으키다](살림, 2009); 이길용, “스웨덴의 근대발전사” [유럽연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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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역사저술가
글쓴이 함규진은 여러 방면의 지적 흐름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을 전공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주로 역사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썼고,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번역서도 많이 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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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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