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전세가 역전되다 - 북방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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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5회 작성일 16-02-0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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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표


북방 전쟁 개요

전쟁주체


러시아,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작센, 프로이센, 영국 vs 스웨덴, 오스만튀르크

전쟁시기


1700~1721

전쟁터


러시아, 스웨덴, 폴란드 등 북동유럽

주요전투


나르바 전투, 프라우슈타트 전투, 골로프치노 전투, 폴타바 전투, 항코 해전





한니발의 비운에 사로잡혀



아마도 카를 12세가 저지른 중대한 전략적 과오라면 1700년에 러시아를 끝까지 공격하지 않은 일보다는 1707년에 러시아와 화해할 기회를 차버린 일일 것이다. 카를이 폴란드를 완전히 격파하고, 1706년에는 그로드노에서 자신을 포함한 러시아군을 보기 좋게 격퇴시키자 표트르는 이 젊은 사자같은 군주와의 정면대결보다는 타협을 생각하게 되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함한 네바 강의 출구만 남긴 채 잉그리아 전역을 스웨덴에게 돌려주는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자는 제의를 했다. 그러나 카를은 이를 거부했으며, 작센에서 출정을 준비했다. 굳이 러시아와 싸우겠다면 튀르크나 오스트리아를 움직여서 러시아가 스웨덴에게 전력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배치하는 일이라도 했어야 할 텐데, 싸우면 반드시 이기기만 했던 카를은 외교관의 혓바닥보다 자신의 검을 더 믿었다. 비록 유리한 국면에 있었지만, 오랜 싸움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스웨덴 국민과 군대에게 그것은 재앙 같은 신념이었다.

카를은 4만 4천의 병력을 이끌고 1708년 1월에(그것도 무모한 일이었다. 아무리 스웨덴인들이 다른 국민에 비해 추위에 강하다고 해도, 그해 겨울은 근대 유럽사에서 가장 추운 겨울의 하나였다) 비스툴라 강을 건너 러시아로 침입해 들어갔다. 침공의 첫 국면은 과연 막강 스웨덴군의 명성대로여서, 카를은 홀로프친에서 표트르를 물리치며 러시아군이 멀찍이 모길레프까지 퇴각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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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군의 홀로프친 공략도.



그러나 그 퇴각은 청야전술을 동반한 퇴각이었고, 스웨덴군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눈보라를 뚫고 하루 종일 행군하며 불타 버린 농가와 곡식창고만을 만나는 나날을 거듭해야 했다. 보급이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아담 레벤하우프트(Adam Ludwig Lewenhaupt, 1659~1719)가 지원 병력과 물자를 갖고 리보니아에서 따라오고 있었으나, 카를의 진격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지 못하는 사이에 러시아군에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얼마 뒤 핀란드 쪽에서도 스웨덴의 구원병이 출발했지만, 표트르가 와신상담하며 잉그리아에 구축해둔 방어진에 가로막혀 버렸다. 일찍이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겪은 일, 카를의 선조 구스타프 아돌프가 독일에서 겪은 일이 이제 러시아에서 이 두려울 것 없던 젊은 군주의 현실이 되고 있었으며, 그것은 후세에 나폴레옹과 히틀러에게도 재현될 것이었다.

곤경에 빠진 카를 12세는 다시 한 번 실책을 저질렀다. 퇴각하거나 적당한 지점에서 후발대를 기다리는 대신(그런 결단을 빨리 내렸다면 보급대와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우크라이나로 진입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카자크 반군 지도자인 이반 마제파(Ivan Stepanovych Mazepa, 1639~1709)의 호언장담을 곧이곧대로 믿고, 남쪽의 초원에서 병력과 물자를 보충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마제파의 병력은 천여 명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곧 친러시아적인 카자크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궤멸되어 버렸다. 공연히 적지 깊숙이 들어와서, 이제는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어렵게 된 것이다! 1709년 봄, 스웨덴군은 절반 가량인 2만으로 줄어 있었고, 남은 병력도 굶주림과 동상에 신음하고 있었다. 카를은 폴란드의 ‘꼭두각시’ 레시친스키에게 지원군을 요청했으나 정중한 거절 통보만 받았다. 카를은 이제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표트르의 주력군의 꼬리를 잡아, 단숨에 격파해 버리는 것이다. 오직 이기는 것, 그것도 결정적으로 이기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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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네프르 강을 바라보는 카를 12세(앉은 사람)과 마제파. 카를 12세의 한쪽 발이 부상을 입었음이 보인다.





폴타바 전투



1709년 6월, 카를은 우크라이나의 요새 도시 폴타바를 포위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의 카자크 반란을 진압한 표트르도 그곳으로 향했다. 폴타바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표트르가 5만의 병력으로 진을 쳤음을 듣고, 카를은 결전을 결정했다. 그는 6천여 병력을 포위 진영에 남겨두고는 1만 4천을 이끌고 차르의 군대와 자웅을 겨루려 출정했다. 수적으로 큰 열세였고 병사들도 지쳤으며 최악의 혹한을 거쳐온 끝에 대포들도 상당수 얼어붙어 있었지만, 카를은 나르바나 프라우슈타트에서처럼 자신의 지휘능력과 스웨덴군의 정예 역량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표트르는 강물과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요새를 지어 놓고, 유일하게 트여 있는 곳에는 보루를 여섯 군데나 쌓은 채로 카를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를은 보병대를 4열 종대로 앞세우고, 기병대를 6열로 뒤에 따르도록 했다. 스웨덴군은 놀랄 만한 용맹함을 보이며, 러시아군의 보루를 하나씩 무너뜨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력과 화력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단숨에 적을 몰아치기보다는 치고 빠지는 전술로 러시아군을 괴롭히려 했는데, 보병대가 일차 공격을 마치고 후퇴하는 시점에서 일부 부대가 손발이 맞지 않아 적진에 고립되고, 곧 궤멸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전열이 흐트러진 스웨덴의 주력 보병대를 상대로 표트르가 직접 이끄는(그는 선두에서 말을 달리며, “러시아를 위해 싸워라!”며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러시아 보병대가 쏟아져 나왔다. 압도적인 수적 우세를 가진 러시아 화포와 머스킷도 불을 뿜었다. 스웨덴군은 분전했으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병대의 구원만 기다릴 뿐이었는데, 그 기병대 역시 전열이 흐트러져 우왕좌왕하는 중이었다. 표트르의 2만 보병대가 스웨덴군 주력을 잡고 있는 사이에, 다른 3만이 신속하게 전장을 굽이돌아 스웨덴군을 에워쌌다. 포위섬멸전이 장기였던 카를이 이제는 스스로 포위당하고 만 것이다. 일대 난전이 벌어졌다. 양군의 지휘관들조차 목숨이 위험했다. 카를은 타고 있던 가마가 대포에 맞아 땅에 굴렀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표트르는 몸 쪽에 세 방이나 총탄을 맞았는데 모두 기적적으로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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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타바 전투.



1709년 6월 28일 새벽 3시 45분에 시작된 전투는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사실상 결판이 났다. 스웨덴의 패배는 돌이킬 수 없었다. 카를은 이를 악물며 후퇴 명령을 내렸다. 겹겹이 포위된 상황이라 그마저도 어려웠으나, 황제부터 졸병까지 목숨을 내놓고 싸운 결과 카를과 천 5백의 병사들이 간신히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그는 오스만튀르크의 땅으로 들어가 튀르크를 업고 재기하기를 꾀했다. 폴타바에서 사로잡힌 수천 명의 스웨덴 포로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하는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참고문헌 :
버나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책세상, 2004); P. R. 파머-J. 콜튼, [서양근대사](삼지원, 1985); 김용구, [세계외교사](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윌리엄 위어, [세상을 바꾼 전쟁](시아출판사, 2005); 크리스터 외르겐젠 외, [근대 전쟁의 탄생: 1500∼1763년 유럽의 무기, 전투, 전술](미지북스, 2011); 이에인 딕키 외, [해전의 모든 것](휴먼앤북스, 2010); 제임스 크라크라프트, [표트르 대제: 러시아를 일으킨 리더십](살림, 2008); 박지배, [표트르 대제: 강력한 추진력으로 러시아를 일으키다](살림, 2009); 이길용, “스웨덴의 근대발전사” [유럽연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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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역사저술가
글쓴이 함규진은 여러 방면의 지적 흐름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을 전공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주로 역사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썼고,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번역서도 많이 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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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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