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승자와 패자가 얻은 것 - 북방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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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6회 작성일 16-02-0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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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표


북방 전쟁 개요

전쟁주체


러시아,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작센, 프로이센, 영국 vs 스웨덴, 오스만튀르크

전쟁시기


1700~1721

전쟁터


러시아, 스웨덴, 폴란드 등 북동유럽

주요전투


나르바 전투, 프라우슈타트 전투, 골로프치노 전투, 폴타바 전투, 항코 해전





스웨덴, 제국을 집어치우다



북방 전쟁의 패배는 스웨덴이 북유럽 및 발트 해에서 갖고 있던 패권을 상실함을 의미했다. 그런데 지칠 대로 지친 스웨덴 국민은 ‘스웨덴 제국’ 자체가 이로써 끝이 나야 한다고 여겼다. 스웨덴처럼 인구와 산업능력이 모자라는 나라가 제국을 세우고 이어가려 한 일이 애당초 무리였으며, 그런 무리는 왕권을 강화하려는 황제들의 속셈이 주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귀족들은 옛 특권과 토지소유권을 되찾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어쩌면 제국의 긍정적인 결과로) 성장해 있던 부르주아 계급은 절대군주정과 마찬가지로 봉건적 토지귀족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강력히 반대했다. 이로써 1720년의 헌법 개정으로 왕권이 대폭 축소되고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며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편, 토지소유권에 대한 전통적인 제한이 철폐되어 점차 지주-소작농 체제가 독립자영농 체제로 바뀌어 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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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의 스웨덴 의회 청사.



그래도 과거의 영광을 잊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스웨덴은 18세기 중에 두 차례 더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1741년에서 1743년까지의 전쟁, 1788년에서 1790년까지의 전쟁이다. 첫 번째 전쟁은 더 많은 영토 상실로 이어졌을 뿐이고, 두 번째에는 스벤스크순드 해전에서 발트 함대를 대파하며 북방 전쟁의 치욕을 어느 정도 씻었으나 이미 러시아가 북방의 패자라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게 굳어져 있었다. 그래서 1790년의 종전협정은 양국의 기존 국경을 유지하고, 러시아가 스웨덴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혁명정부가 들어선 프랑스에 대적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스웨덴은 서구 근대사의 주요 흐름에서 한발짝 물러선 채 내실을 다지는 데 주로 힘썼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스웨덴의 모습, 작지만 강한 입헌군주국이며 여러 강대국들보다도 더 국민의 인권과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 오래도록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나라의 모습이 점차 자리잡게 된다.



강대국의 운명



북방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표트르 1세는 의회에서 “대제”라는 칭호를 얻었고, 관등표를 마련하여(1722년) 러시아의 모든 귀족을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관료조직 속에 엮어넣었다. 지방정부와 교회의 자치권도 대부분 박탈되어 황제권에 종속되었으니, 바야흐로 러시아는 차르 한 사람이 다스리는, 최고의 일인통치 국가가 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러시아 제국의 시대가 열렸음을 뜻했다. 폴타바에서 스웨덴군이 궤멸된 뒤 3백 년이 넘은 지금까지,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러시아를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스웨덴이 아니라 러시아처럼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야말로 ‘제국’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북방 전쟁은 확고하게 입증해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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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표트르 1세가 처음에는 요새로 지었다가 새로운 수도로 건설했으며, 혁명기에는 ‘페트로그라드’로, 소련 시대에는 ‘레닌그라드’로 불리다가 지금은 옛 이름을 되찾았다. <출처: (CC)Herbert Ortner at wikipedia.org>



그러나 러시아가 유럽의 동쪽 끝, 대부분 얼어붙은 동토의 나라임은 변함이 없었다. 표트르는 근대적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했으나 동시에 가장 전근대적인 황제권을 구축했다. 그가 서쪽의 창을 열고 받아들인 서구 문물은 젊은 귀족들과 지식인들에게 황제권을 부정하는 사상을 심어주었다. 표트르를 계승한 차르들은 이를 막기 위해 잔혹한 탄압과 검열에 의존해야 했다. 또한 귀족과 교회의 지지를 아예 잃지 않기 위해 봉건적 토지소유권과 농노제도를 존속시켜야 했다. 또한 전에 스웨덴을 우려하던 이상으로 러시아를 우려하게 된 서구 열강은 러시아의 팽창 움직임을 한사코 방해했으며,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세계제국으로 발전함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러시아와 충돌하게 되었다. 새롭게 하면서 동시에 옛 것을 지켜야 하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도무지 평화를 누릴 겨를이 없었던 러시아 황실은 끝내 20세기를 넘어 이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이어진 사회주의 제국과 오늘날의 러시아 공화국도, ‘대내적으로는 강권통치로 억누르고, 대외적으로는 여러 강국들과 패권을 다투는’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는 여전히 대국이자 강국이다. 그러나 그 국민은 북방 전쟁의 패배자들의 후손들에 비해 과연 더 행복할까?


참고문헌 :
버나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책세상, 2004); P. R. 파머-J. 콜튼, [서양근대사](삼지원, 1985); 김용구, [세계외교사](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윌리엄 위어, [세상을 바꾼 전쟁](시아출판사, 2005); 크리스터 외르겐젠 외, [근대 전쟁의 탄생: 1500∼1763년 유럽의 무기, 전투, 전술](미지북스, 2011); 이에인 딕키 외, [해전의 모든 것](휴먼앤북스, 2010); 제임스 크라크라프트, [표트르 대제: 러시아를 일으킨 리더십](살림, 2008); 박지배, [표트르 대제: 강력한 추진력으로 러시아를 일으키다](살림, 2009); 이길용, “스웨덴의 근대발전사” [유럽연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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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역사저술가
글쓴이 함규진은 여러 방면의 지적 흐름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을 전공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주로 역사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썼고,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번역서도 많이 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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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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