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전쟁의 여파 - 미국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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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4회 작성일 16-02-0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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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독립전쟁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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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표
전쟁주체미국(13주), 영국,
프랑스, 헤센(용병),
에스파냐, 네덜란드
전쟁시기1775~1783
전쟁터현재 미국 동부,
캐나다 온타리오/퀘벡,
서인도 제도 일부
주요전투렉싱턴/콩코드, 벙커힐, 롱아일랜드,
트렌턴, 사라토가, 몬마우스,
캠든, 사바나, 길포드 코트하우스,
요크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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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1. 13 식민지의 불만2. 프렌치 인디언 전쟁과 식민지 억압
3. 미합중국의 탄생4. 연이은 전투
5. 유럽의 지원과 남부의 격전6. 요크타운의 승리
7. 전쟁의 여파

독립전쟁인가 ? 혁명전쟁인가?



미국독립전쟁은 일반적으로 The War for American Independence라 불린다. 이 전쟁의 결과로 영국으로부터 신생국으로 독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독립전쟁은 또 다른 명칭이 있다.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이다. 즉 ‘미국혁명전쟁’이다. 계몽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13주에 대한 영국의 왕정(王政)을 종식시켰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체제를 건설한 혁명으로서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전쟁은 독립전쟁인가, 아니면 혁명전쟁인가?

이 전쟁의 결과가 영국의 통치로부터 북미 동부의 13개주가 떨어져 나가는 결과로 나타났지만 필자의 의견으로 이 전쟁은 혁명전쟁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당시 유행하고 있던 천부인권설을 기본으로 하여 치자(治者)와 국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권리를 영국의 통치자들에게 요구를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의 시민과는 개념이 다르지만 미국을 건국자(Founding Fathers)집단이 요구한 것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연계 (Association of Free Individuals)'를 바탕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각 개인은 그 자체로서 그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정부는 권리있는 사람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존재일 뿐이었다. 즉 왕명으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자의 명령대로 움직여야 하는 ‘백성(Subject)'이 아니라 시민(Citizen)들에 기반한 국가의 건립이었다.

이는 왕에 의한 통치를 당연시하고 있던 당시의 영국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국가와 공존할 수 없었고 ‘시민들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만약 영국 정부가 어느 정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 많은 자치를 허용했어도 계몽주의 사상이 이미 퍼져가고 식민지민과 본국간의 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결국은 갈등이 재발하여 폭발하였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천부인권사상과 계몽주의는 유럽에서 발현하였지만 왕정이 공고한 유럽보다는 왕정을 피해 새로운 곳에 정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향후 유럽역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럽에도 새로운 정치사상이 많이 퍼져 있었기는 하지만 미국의 독립전쟁은 새로운 사상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를 제공해 주었다. 이는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병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 전쟁에 참전한 많은 유럽인들에 의하여 ‘시민’의 권리에 대한 사상이 유럽에 급격히 퍼지게 된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논자는 미국의 혁명전쟁이 프랑스 혁명의 불씨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반 병사들만 아니라 라파예트같은 귀족도 일반 국민들의 권리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이후 프랑스 인권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의 입안자가 된다.

프랑스는 영국을 약화시키고 신생국 미국과의 무역을 독점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에서 전쟁에 참전하였지만 미국의 경제적인 기반이 약하여 일정 수준이상의 교역은 불가능하였다. 결국 프랑스는 그렇지 않아도 국가경제가 취약한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 결국 국가경제는 더욱 어려워졌고 중산층과 백성들의 불만이 급증하게 되며 이러한 불만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기폭제가 된다.

아울러 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운 국가가 생겼다는 것은 아메리카가 영구히 유럽인들의 식민지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였다. 대양을 사이에 두고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활방식을 영위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 사람들이 유럽인과 같은 방식으로 언제까지나 살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미국을 시작으로 카리브해의 섬나라들, 그리고 중미와 남미 각국이 식민본국으로부터 독립한다. 그리고 아메리카는 유럽과는 다른 세력권을 형성하기 된다. 아메리카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의 건국은 정치적인 혁명임과 동시에 아메리카가 유럽으로부터 분리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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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합중국의 건국은 정치적인 혁명임과 동시에 아메리카가 유럽으로부터 분리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참고문헌: Paul K. Davis, [100 Decisive Battl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Alexander Keyssar, [The Right to Vote: The Contested History of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Basic Books, 2001); Piers Mackesy, [The War for America 1775-1783], (Bison Books, 1993); John C. Miller, [Origins of the American Revolution], (Boston: Little, Brown, 1943); Maurice Matloff (eds.), [American Military History: 1775-1902 - Vol. 1], (Conshohocken: Combined Books, 1996); Thomas Paine, [Common Sense], (Dover Publications, 1997); Max Savelle, [Seeds of Liberty:The Genesis of the American Mind], (Kessinger Publishing, 2005); The Library of Congress 'America During the Age of Revolution, 1764-1775'; National Park Service 'Guilford Courthouse'; National Park Service 'Yorktown'; www.battleofcamden.org 'Documentary History of the Battle of Camden, 16 August 1780';





김성남 | 안보·전쟁사 전문가
글쓴이 김성남은 전쟁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UC 버클리 동양학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 석사를 받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과에 진학하여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 [전쟁으로 보는 삼국지], [전쟁 세계사] 등이 있으며 공저로 [4세대 전쟁]이, 역서로 [원시전쟁: 평화로움으로 조작된 인간의 원초적인 역사]가 있다.


발행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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