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세계사의 행진 - 나폴레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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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5회 작성일 16-02-0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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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1. 혁명이 낳은 영웅, 또는 괴물

2. 나폴레옹의 전성기

3. 제국의 불안

4. 유럽의 양쪽 끝

5. 독수리는 내리다

6. 세계사의 행진

나폴레옹 전쟁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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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표
전쟁 주체 프랑스 vs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스웨덴, 스페인, 포르투갈
전쟁 시기 1803~1815
전쟁터 유럽 대륙, 카리브해
주요 전투 트라팔가 해전, 아우스터리츠 전투, 예나 전투, 프리틀란트 전투, 바그람 전투, 보로디노 전투, 라이프치히 전투, 워털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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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그 이후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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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회의. 1819년의 묘사.


나폴레옹의 1차 퇴위 이후부터 시작된 빈 회의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이리저리 부딪치는 가운데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도중에 돌아온 나폴레옹이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하여 워털루 전투 직전인 1815년 6월 5일에 ‘최종의정서’가 조인되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프랑스와 스페인, 나폴리에서 혁명 이전의 부르봉 왕조가 복원되고, 프랑스의 영토도 혁명 이전 수준으로 축소되며, 폴란드는 그 국왕이 러시아 황제에게 겸임됨으로써 사실상 러시아에게 합병되었다. 한편 교황령이 부활하고, 오스트리아는 북부 이탈리아를 되찾고, 프로이센은 잃었던 영토에 덤까지 얻으며, 그 두 나라를 포함한 독일 35개 군주국과 4개 자유시가 합쳐져 독일연방을 구성하였다. 영국은 몰타와 실론(지금의 스리랑카), 케이프를 얻었다.

전체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부정하고 그 이전으로 유럽을 되돌린다는 ‘복고 원칙’과 나폴레옹 전쟁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이익을 취하되 앞으로의 분쟁 가능성을 방지한다는 ‘세력균형 원칙’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복고 원칙은 나폴레옹에 대한 구체제 왕조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혁명의 본향, 프랑스에서 그 승리는 길지 않았다. 루이 18세와 그 뒤를 이은 샤를 10세의 부르봉 왕조는 민주주의를 바라는 국민의 끝없는 요구에 직면해야 했으며, 결국 1830년의 ‘7월 혁명’으로 15년 만에 종식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1820년 스페인의 ‘리에고 혁명’, 1820년 나폴리의 ‘카르보나리 혁명’, 1825년 러시아에서의 ‘데카브리스트의 반란’ 등등 민주주의-공화주의 운동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왕조들은 탄압과 함께 일정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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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세력균형이라는 차원에서 당장의 최대 승자는 러시아인 듯했다. 아무튼 과거에는 변방의 후진국 정도로만 여겨지던 나라가 나폴레옹 타도의 최대 공로자가 되었고, 차르의 군대가 유럽의 심장부를 누비고 다녔다. 알렉산드르 1세는 나폴레옹을 물리치는 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유럽 국제질서를 세우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그래서 트로이 전쟁의 아카이아군 맹주였던 ‘아가멤논’이 그의 별명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1815년에 기독교의 정신을 중심으로 유럽이 하나로 뭉치자는 ‘신성동맹’을 제창하여,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였으며 1818년에는 프랑스까지 동참시켰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의 최대 수혜자이자, 진정한 승자는 영국이었다. 영국은 트라팔가 해전 이래 수립한 제해권을 20세기가 되기까지 한 번도 빼앗기지 않았다. 비인 체제는 유럽 대륙에서 다시는 나폴레옹 프랑스처럼 강력한 패권국가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안배를 포함했는데, 그것은 영국에 침입하거나 영국의 세계 지배를 위협할 나라가 당분간은 없다는 뜻이었다. 러시아는 그 사실을 크림 전쟁(1853~1856)에 가서야 깨달을 것이며, 영국이 혜택을 누리는 유럽 대륙의 세력균형 체제는 19세기 후반의 독일, 이탈리아의 통일에 가서야 비로소 깨질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유산




그러면 나폴레옹의 유산은 아무 것도 없었을까? 그가 최고통치자로써 군림한 십여 년은 그냥 세계사의 스쳐가는 한 순간일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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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그 막료들. 1813년 무렵.


그렇지는 않았다. 일단 군사적으로 나폴레옹이 선보인 국민개병제, 사단-군단 편제, 일반참모부, 그리고 종대 중심 편성과 심지어 병조림까지 그에게 혼이 났던 각국이 제각기 본받아 자신의 군사력을 다졌다. 또한 그의 군대를 특히 강하게 만들었던 민족주의가 그에게 맞선 나라들에서도 고양되어, 더 이상 ‘군주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내 나라, 내 민족에 대한 충성’이 사회적 미덕으로 강조되었다. 루이 18세조차 나폴레옹을 코르시카 출신의 이민족이라고 비난하고, 그에 비해 프랑스인인 자신이 왕이 되기에 합당하다고 선전해야 할 상황이었다. 민족 독립-국가 통일의 염원이 물거품이 된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는 민족주의 지식인과 예술가, 혁명가들이 끝없이 나타났으며, 그리스에서는 튀르크의 지배에 맞선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을 대체한다고 할 수 있는 독일연방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독일의 여러 주권국가들이 공동 문제를 협의하는 느슨한 연합체일 뿐이었지만 독일 통일이라는 꿈이 점차 그 틀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 유럽에, 아니 아메리카에까지 자유와 평등이라는 대혁명의 이상이 퍼졌다. 가령 동생 덕에 스페인을 잠시 다스린 조세프 보나파르트는 무능한 왕이었지만, 그의 이름으로 도입된 프랑스적인 헌정질서는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반도 전쟁이 광적으로 치달을 때조차 일부 지식인과 부르주아는 보나파르트를 지지했던 것이다. 또 괴테나 베토벤, 헤겔 같은 지성인들이 자유의 투사로서 한때 나폴레옹을 찬양했을 뿐 아니라, 나폴레옹의 병사로서나 그에 맞선 세력의 병사로서, 유럽의 수많은 평민들은 대혁명의 내용과 이상을 접하고 그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런 자유의 씨앗은 프랑스 7월 혁명과 2월 혁명, 독일의 3월 혁명, 포르투갈 혁명, 리에고 혁명, 사르디니아 혁명, 데카브리스트 반란, 남아메리카 독립 등으로 꽃피며 19세기 전반기를 온통 달구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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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발리드에 있는 나폴레옹의 묘. <출처: (CC)Willtron at Wikipedia.org>


헤겔의 말처럼, 나폴레옹은 말을 탄 세계정신이었다. 그의 말에 짓밟힌 숱한 사람들에게, 말에서 내리려도 내릴 수가 없었던 나폴레옹 자신에게 그것은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 말발굽 아래 낡은 세상은 일부는 빠르게, 일부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참고문헌

버나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책세상, 2004); 윌리엄 맥닐, [전쟁의 세계사](이산, 2005); P. R. 파머-J. 콜튼, [서양근대사](삼지원, 1985); 김용구, [세계외교사](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베빈 알렉산더, [위대한 장군들은 어떻게 승리하였는가](홍익출판사, 2000); 이에인 딕키 외, [해전의 모든 것](휴먼앤북스, 2010); 조르주 보르도노브, [나폴레옹 평전](열대림, 2008); 그레고리 프리몬-반즈·토드 피셔, [나폴레옹 전쟁: 근대 유럽의 탄생](플래닛미디어, 2009); 제프리 우텐, [워털루 1815](플래닛미디어, 2007); 윌리엄 위어, [세상을 바꾼 전쟁](시아출판사, 2005); 존 키건, [정보와 전쟁](까치, 2005); 원태재, “러시아 침공 결정과정에 미친 나폴레옹 리더십의 문제점”[군사] 제52호. 2004. 8; 허광운·백두현, “작전술에 영향을 미친 인물 탐구: 나폴레옹, 1 : 작전술의 개념, 전쟁규모의 확대와 전투수행방법의 변화를 중심으로” [군사평론] 제385호. 2007. 2; 백두현, “작전술에 영향을 미친 인물 탐구: 나폴레옹, 2 : 프랑스 군의 개혁, 포병ㆍ전투근무지원의 발전을 중심으로” [군사평론] 제386호. 2007. 4; 이용재, “나폴레옹 : 신화와 반신화의 변주곡”[역사비평] 통권67호. 2004.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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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역사저술가
글쓴이 함규진은 여러 방면의 지적 흐름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을 전공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주로 역사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썼고,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번역서도 많이 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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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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