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웨이크섬 전투 - 남태평양의 알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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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18회 작성일 16-02-0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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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웨이크섬 전투2. 웨이크섬 전투의 결과

태평양 전쟁의 초기 남 태평양 웨이크(Wake)섬을 점령하려고 하는 일본과 이를 막으려는 미군 사이에 2 주간의 격전이 있었다. 웨이크섬 전투다.

1941년 미 해군기지 진주만을 습격한 일본은 거의 동시에 웨이크섬을 폭격하였다. 미군 해병대는 일본 구축함 두 척을 격침할 정도로 두 번의 상륙 작전에서 잘 싸웠지만, 결국 일본은 섬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미국 전사에서는 미 해병대, 특히 해병 항공대가 용맹하게 싸운 전투로, 웨이크섬 전투를 알라모전투1)에 비견하며 비중 있게 기록하고 있다.

1836년 미 텍사스 주 알라모 요새에서 민병수비대 185명이 멕시코군 6,000명을 상대로 13일간 싸우고 전원 전사한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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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크섬. 집게발처럼 생긴 두 끝은 독립 된 피얼 섬과 윌크스 섬이다.





웨이크섬의 전략적 위치와 미군의 준비




웨이크섬은 태평양 미드웨이와 괌 섬의 중간에 위치해있는 작은 산호섬이다. 웨이크섬은 거의 붙은 웨이크, 피얼, 윌크스의 세 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 둘레는 3마일 정도이다.

세 섬은 1차 세계 대전 때 일본이 독일로부터 강탈한 마샬 군도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후에 큰 싸움터가 된 괌 섬의 동쪽에 있다.

섬은 1899년 미국에 합병되어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 섬은 상주 인구가 없는 무인도였다가 1935년 미국 팬암(PanAm) 항공사가 태평양 횡단 대형 비행정을 운행하게 되자 유류 공급의 중간 기항지가 되었다.

팬암 항공사는 이 섬에 항공기 계류시설과 유류 저장고 그리고 승객들이 쉴 수 있는 호텔도 건설했다.

미일 양국은 웨이크섬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미 항공대가 웨이크섬에서 출격한다면 마샬 군도에 있는 일본의 해군 기지와 항공대 기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그 반대로 일본군은 마샬 군도를 발판으로 웨이크섬을 노릴 수가 있었다. 웨이크섬은 괌 섬과 함께 미국이 필리핀에 접근 할 수 있는 길목에 있다는 전략적 가치도 있었다. 미드웨이 섬에 가까워 정찰을 위한 유류 중간 기지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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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필드 S 커닝햄(Winfield S. Cunningham, 1900-1986) 중령과, 제임스 P.S 데버루(James P.S. Devereux, 1903-1988) 소령. 1942년 포로 시절의 모습.



1930년대 후반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자 미 해군은 섬의 요새화 공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하였다. 1941년 1월 비행장과 방어 시설 공사가 대규모로 시작되었다.

공사가 진행하던 도중인 8월 19일 1 해병 방어 대대의 400병력이 도착하였다. 해병 대대장은 제임스 P.S 데버루(James P.S. Devereux) 소령이었다.

11월 28일 섬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해군 중령 윈필드 S 커닝햄(Winfield S. Cunningham)이 도착하여 도서 방어사령관이 되었다.

12월 초에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비행장이 비상 운용은 가능할만큼 완성되었다. 이 때쯤에는 웨이크섬은 붐비는 장소로 변화되어 있었다.

해병대는 450명, 해군이 68명, 그리고 섬의 방어 시설 공사를 담당하는 토건회사 직원들, 주로 아이다호 주에서 모집해온 직원 1,221명이 있었고 팬암이 중간 기착지 웨이크 기지에서 고용한 지상 요원이며 남서 태평양 원주민인 차모로 족(族)45명이 있었다.

그러나 섬의 레이다 시설은 아직도 반입되지 못하고 하와이의 항구에서 정박중인 화물선에 있었다. 공중 공격으로부터 주기(駐機)중인 전투기를 보호할 철판 울타리들도 건설되지 않았다.

일본의 공격 4일전인 12월 4일에야 12기의 F4F 와일드캣 전투기들이 도착하여 섬 방어에 배치되었다. 이들 항공기는 미 항모 엔터프라이스가 운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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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F4F 와일드캣(Wildcat)





일본 해군 폭격기들의 공습




일본은 개전 전부터 웨이크섬에 비행장이 건설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고 이 섬을 신속히 점령할 필요를 느꼈다.

일본은 개전과 동시에 괌 섬과 웨이크섬을 점령해버리기로 결정하고 침공의 준비를 하였다. 웨이크섬 공격은 진주만 공습과 비슷한 타이밍에 감행되었다.

12월 8일 일본 해군기들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있을 때 지도세(千歲)항공대 소속 쌍발 1식 육상 공격기 24기가 마샬 군도의 항공 기지를 경유하여 웨이크섬을 공습했다. 하와이 섬이 최초로 공격 받은 시각에서 정확히 1시간 뒤였다.2)

웨이크섬은 시간대는 한국과 일본과 같은 시간대에 속해 하와이보다 하루가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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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침 6시 50분에 하와이 공습의 정보를 통보받았던 웨이크섬은 레이다는 없었지만 공습에 대비하여서 4기의 전투기를 출격시켜 초계 비행을 시켰다.

그러나 초계기들은 하늘에 낀 구름들 때문에 마샬 군도에서 날아오는 일본 폭격기들을 보지 못했다.

초계기들에게 발견되지 않고 웨이크섬을 급습한 일본 폭격기들은 지상에 주기중이던 8기의 와일드캣 기를 파괴하고 비행장에 큰 피해를 주었으며 팬암의 지상 시설을 파괴하였다.

미 해병 항공대의 55명의 파견 요원중 23명이 죽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피해 인원 중에는 전투기를 정비하고 출격시키는 정비병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남은 항공기 정비와 출격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되돌아갔던 일본 폭격대는 다음 날 다시 날아왔다. 그러나 이번 공습은 그 전날에 비하면 별다른 성공을 하지 못했다. 대기하고 있던 4기의 와일드캣 기들이 내습하는 폭격기 편대를 요격해서 그 중 2대를 격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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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식 육상 공격기 -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제독이 타고가다 격추 된 쌍발 폭격기다.





파괴된 웨이크섬 지상의 와일드캣 기들. 밀접주기(密接駐機)중에 기습을 받았다.






일본 해군의 1 차 상륙작전




공중전이 진행 중인 12월 9일 일본 해군 함대 사령관 가지오카 사다미치(梶岡 定道)소장은 작은 침공 함대를 인솔하고 마샬 군도의 해군 기지를 떠나 이틀의 항해 뒤인 12월 11일 웨이크섬 앞바다에 도착했다.

이 함대는 유바리(夕張), 덴류(天龍), 다쓰타(龍田)등의 세 척의 경순양함들이 주력이었고 다섯 척의 구축함과 두 척의 상륙함으로 구성되었으며 추가로 그리고 두 척의 화물선들이 편성되어 있었다.

상륙함과 화물선에는 450명의 육전대 병력이 승선해 있었다. 침공함대의 경순함이나 구축함들은 대체로 함령(艦齡)이 20년 정도 되는 구형함들이었다.

11일 새벽 가지오카의 함대는 웨이크섬에 근접하였다. 05:22. 일본 함대는 웨이크섬의 해안을 따라 왕복 횡주(橫走)하며 포문을 열었다. 일본의 포격에 섬의 유류 저장고가 불이 붙었다.

웨이크섬에는 미 해군 구식 전함에서 떼어온 5인치 해안포가 6문이 있었다. 수비 해병 부대는 간밤 자정부터 먼 남쪽 해상에서 반짝거리는 빛을 보고 일본 함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대대장 데버루 소령은 적을 해안포 사거리 내로 바짝 유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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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웨이크섬 침공 함대의 기함 유바리



06:10. 포격을 가하던 일본 함대가 더욱 섬에 접근했을 때 드디어 미 해안포들이 불을 뿜었다. 웨이크섬 A 포대의 두 번째 일제 포격이 기함 유바리에게 명중하였다.

모미급 구식 구축함을 개조한 한 척의 초계정도 피격당하여 표류하다가 웨이크섬에 좌초되어 버렸다. 가지오카의 기함은 초계정의 탈출을 엄호 하면서 남서쪽으로 후퇴하였다.

속력이 느린 두 척의 민간 화물선들이 윌크스 섬의 L 포대에게 포격당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척에 5인치 포탄이 명중했다.

호위하던 구축함들,하야테(疾風), 오이테(追風), 모치즈키(望月)등이 적 포격의 조준를 분산시켜 민간 수송선들이 대피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L 포대를 향해서 돌격하였다.

당황한 일본 구축함대는 잠시 해군 포술의 기본 원칙을 잊고 있었다. 전투함들은 가급적 해안포대에 정면 대결을 하지 말라는 금언이다. 함포는 해안포보다 명중률도 떨어지고 함체도 전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 해병 해안포들은 돌격해오는 구축함들을 지켜보다가 4,000미터 거리에서 일제히 포문을 열어 일본 선두 구축함 하야테(疾風)를 격침시켰다.

하야테는 두 발의 포탄이 화약고에 명중하여 단 2분 만에 굉침(轟沈)하였다.168명의 승조원 전원이 전사했다. 오이테도 두들겨 맞아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이테는 모치쓰기와 함께 남서쪽으로 도주하였다.

반격을 받고 혼란에 빠진 나머지 일본 함대는 진형을 재정비하고 응전했다. 경순양함 다쓰다와 텐류가 엄호하는 중에 구축함 야요이(弥生), 무쓰키(睦月),기사라기(如月)들이 다시 피얼스 섬의 B 포대와 교전을 감행했다.

B 포대가 발사한 5인치탄 한 발이 야요이에 명중했다. 야요이는 승조원중 수병 한 명이 죽고 열일곱 명이 다쳤으나 응전 포격으로 B 포대에 명중탄 한 발을 안겨 피해를 주었다.

침공 함대 기함 경순양함 유바리(夕長)는 상부 구조물에만 11발의 포탄을 얻어맞아 대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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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안포에 격침된 구축함 하야테





미 해병 와일드캣 기들의 함대 추격




미군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놀란 가지오카 소장은 상륙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함대를 해안포 사거리 밖으로 급히 후퇴시켰다.

이번에는 웨이크섬 항공대에 생존한 단 4기의 와일드캣들이 철수하는 일본 침공 함대를 추격하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07:24 와일드캣은 경순양함 덴류의 갑판에 기총소사를 가해 5 명을 부상시키고 3발의 어뢰를 파괴하고 다섯 명을 부상시켰으며 함체에 수없는 총탄 구멍을 남겼다.

견디다 못한 일본 침공함대는 연막을 뿌리면서 남서쪽으로 후퇴하였다. 그러나 미 해병의 와일드캣 기들은 끈질기게 추격해왔다. 웨이크섬 30마일 남서쪽 해상에서 구축함 기사라기가 뒷덜미를 잡혔다.

헨리 T.엘로드 대위가 조종하는 전투기가 투하한 100 파운드 소형 폭탄이 하필 함의 후미에 있는 폭뢰 발사대에 맞아서 큰 [誘暴]을 일으킨 것이 기사라기의 격침을 가져왔다.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고 함은 두 쪽이 나서 격침되었다. 시각은 07:31이었다. 전투기 네 대에 쫓기며 퇴각 중에 공고마루(金剛丸)는 기총소사를 당해 함상의 유류 탱크가 명중하여 화재가 발생하고 피해를 입었지만 침몰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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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전투기에 격침된 구축함 기사라기(如月)



목차


목차
1. 웨이크섬 전투2. 웨이크섬 전투의 결과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3.05.3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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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미 텍사스 주 알라모 요새에서 민병수비대 185명이 멕시코군 6,000명을 상대로 13일간 싸우고 전원 전사한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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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크섬은 시간대는 한국과 일본과 같은 시간대에 속해 하와이보다 하루가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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