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말라야 해전 - 거함거포 시대의 종말을 확증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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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84회 작성일 16-02-0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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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HMS Prince of Wales). 당시 취역 1년이 안된 최신 예함으로써 영국 해군을 대표하는 전함이었다.



1941년 12월 10일 싱가포르에서 멀지 않은 말라야1) 해역에서 일본 해군의 공격 항공기들과 영국 해군 함대 사이에 대결이 벌어졌다. 전투는 영국의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순양전함 리펄스가 격침되는, 예상 밖의 영국 쪽 대패로 끝났다.

이는 사상 최초로 항공기가 전투 항해중인 수상함대를 격파하는 기록을 세운 전투며 거함이 주역인 전함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항공기가 주역인 항모 시대가 왔음을 예고하는 해전이기도 했다.

말레이 반도 지역을 부르는 명칭이다. 1957년 말라야 연방으로 한때 독립국이었으며, 이후 보르네오 북부지역과 합쳐 현재의 말레이시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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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야 해전의 서곡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은 일본군부의 광적인 전쟁지도로 확대일로를 걸어왔다. 전쟁은 동남아시아로 확대되었고 일본이 프랑스령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하자 중국을 지원하던 미영등은 석유와 고철들의 수출을 금지하여 버렸다.

1940년 후반, 전쟁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였다. 동남 아시아의 말라야, 미얀마, 인도 등의 식민지를 가진 영국은 전쟁에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국은 일본의 근대화 초기 일본 해군의 창설을 도왔으며 일본 해군이 청일 전쟁이나 러일 전쟁 등에서 운용한 주력함들의 건조 수출국이었다.

말라야 해전 직전 전투 해역의 북방 타이 근해에 전개했었던 일본 해군의 공고(金剛, 37,000톤)는 1913년 영국 빅커스 조선소에서 건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선후배격인 양국의 해군이 바다에서 충돌하도록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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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의 ‘영국제 전함’ 공고





영국 함대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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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필립 중장(1888 2.19– 1941 12.10) 말라야 전투 8일전의 모습.



아시아에서 전운이 높아지자 이미 독일과의 전쟁으로 지친 영국이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국 수상 처칠은 일본이 영국의 식민지배에 대한 어떤 야심도 가지지 못하도록 강력한 함대의 구성과 파견을 구상하게 된다.

처칠은 평소 해군 작전에 과다한 간섭과 전함에 대한 지나친 맹신 때문에 비난을 받아왔다.

이번에도 해군의 반대가 있었으나 영국수상 처칠은 이를 밀어붙였다. 그의 계획대로 함대 파견이 강행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파견함대는 생각보다 규모가 줄어들었다. 사령관으로는 토마스 필립 중장이 임명되었다.

동양함대, 또는 Z 부대라 불리던 이 함대는 그 구성 주요 함들이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 순양전함 리펄스, 그리고 인도미타블이라는 항공모함이었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항공모함 인도미타블이 카리브 해의 저메이카 근해에서 훈련 중 좌초하는 바람에 같이 파견되지 못했다.

4만 3천 7백86톤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 함은 취역한 때가 1941년 1월 19일로서 당시 함령(艦齡)이 1년도 안 된 최신함이었다.

14인치 포 10문 장비에 최고 속도 28.3노트를 자랑하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주요 부분의 장갑 두께가 370mm나 되어, 절대 격침될 수 없는 불침함(不侵艦)으로 평가되었다.

다른 주력함 리펄스 함은 32,200톤으로서 1916년 8월 18일 취역한 비교적 구식함이었다. 6문의 주포로 장비되어 있었고 최대 장갑은 229m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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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양전함 리펄스. 32,200톤으로서 1916년 8월 18일 취역한 비교적 구식함이었다.





일본측의 항공력 동원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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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



한편 진주만 기습에 은밀하게 신경을 쓰고 있던 일본해군의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는 영국함대에 대해서 대항 함대를 파견하지 않고 해역의 해군 항공력만으로 대응하기로 하고 36기의 신형 1식 육상 공격기만 증파하였다.

당시로서는 가히 파격적인 발상이었지만 해군 항공력에 대한 안목이 있었던 야마모토 원수는 이를 과감하게 결단하고 추진하였다.

일본이 영국 함대를 격멸하기 위해 남부 월남 사이공 일대에 집결한 마쓰나카(松永)해군 소장 지휘하의 제일 항공부대(第1航空部隊)주력은 3개 항공대로 모두 지상에서 발진하는 쌍발 육상 공격기를 운영하는 부대였다. 부대 구성은 아래와 같았다.







  • 1 부대
    겐잔(元山) 해군 항공대

    대장:마에다(前田 孝成) 대좌






  • 2 부대
    미호로(美晃) 해군 항공대

    대장:곤도(近藤 勝治) 대좌






  • 3 부대
    가노야(鹿屋) 해군 항공대

    대장:도키치(藤吉直四郎) 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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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식 폭격기. 승원 7, 속도 375km, 최대 중량 8,000kg, 항속거리 4,400km, 추진력 1061마력×2기



위의 3개 일본 해군 항공대는 미쓰비시 중공업이 제작한 2개 형의 신구 쌍발 폭격기들을 운용했었다. 해군기였지만 두 형 다 항공모함에서 뜨지 못하고 육상 기지에서 출격했었고 어뢰와 폭탄, 두 종류를 다 무장할 수가 있었다.

통상 약칭으로 육공기(陸攻機)라고 불렸다. 하나는 구형인 96식 육상 공격기였다. 연합군 코드명은 ‘Nell’이었다. 다른 모델은 같은 미쓰비시사 제품으로 더 발전한 1식 육상 공격기다. 연합군의 코드명은 ‘Betty’였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3.07.2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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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반도 지역을 부르는 명칭이다. 1957년 말라야 연방으로 한때 독립국이었으며, 이후 보르네오 북부지역과 합쳐 현재의 말레이시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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