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말라야 해전(3) - 영국 주력함들의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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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4회 작성일 16-02-0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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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가가 그린 말라야 해전 장면, 영국 전함들이 침몰 직전에 몰려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의 피격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명중한 것은 단 한발의 어뢰였으나, 그 피해는 컸다. 어뢰는 좌현(左舷)을 후미를 타격해서 4개 스크류 중 좌측 스크류에 치명타를 안겨 주었다.

최대의 회전률로 회전하고 있던 프로펠러 샤프트는 샤프트를 감싸고 있던 부위를 파손시켜 바닷물이 함내로 폭포수처럼 넘쳐 들어오게 하였다. 침수량은 2,400톤이나 되어 함의 후방 시설들을 상당수 작동 불량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함의 속도는 16노트로 떨어졌다. 12 시 20분 다시 한 번 어뢰 공격대가 내습하여 왔다. 이 1식 육공기들은 가노야 항공대 소속이었다.

행동이 둔해진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우현에 3발의 어뢰를 가격 당했다. 한발은 바로 선수 부분에 명중하였고 두 번째 전부(前部) 포탑 부분에 명중하였고 또 한 발은 후부(後部) 포탑 쪽에 명중이었다.

후부(後部) 포탑에 맞은 어뢰는 큰 파공을 형성했을뿐더러 최우측 프로펠러 샤프트가 일그러지면서 바로 옆 프로펠러 샤프트도 파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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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함의 회피 기동. 전방이 출력을 높여 회피하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후방이 폭격을 당하고 있는 리펄스.



두 프로펠러들은 작동이 즉시 정지되었다. 4 기중 3 기의 프로펠러가 정지했다. 이제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4기의 프로펠러 중에 오직 한 프로펠러로만 운행하여야 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 함이 어뢰 공격에 파괴되고 있을때 역시 가노야 항공대 1식 육공기들이 어뢰공격을 가해왔다. 마지막 어뢰 공격이었다.

리펄스는 용케도 그 때까지 19발의 어뢰를 피했었다. 두 함의 어뢰 회피 기동이 뛰어난 것을 알게 된 가노야 항공대의 뇌격대는 양 옆에서 협공해왔다.

한 현(舷)만 집중 공격해서 침수를 유발시키는 그 때까지의 상식적 뇌격 공식을 뛰어넘는 양현(兩舷)에 가하는 협공이었다.

동시에 양 옆으로 덤벼드는 공격기들을 제대로 피하지 못한 리펄스는 한 발이 좌현(左舷)에 피격하였다. 간발의 차이를 두지 않고 우측에서 덤벼든 공격기들이 발사한 두 발의 어뢰가 반대편 우현(右舷)에 명중되었다.



영국 주력함들의 침몰




프린스 오브 웨일스 보다 비교적 소형인 리펄스는 맷집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함은 금새 밀려들어온 바닷물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함장 윌리엄 테난트 대령은 총원을 갑판 위로 피신하게 하였다. 불과 6분만에 함은 우현으로 기울어지며 함수 부분부터 침몰하기 시작했다.

리펄스는 12시 23분에 완전 침몰하였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이 때만 해도 하나만의 프로펠러로 겨우 기동하고 있었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대공 화력망은 활동을 하고 있어서 고공으로 침투하는 일본 폭격기들에게 사격을 계속하였다.

마지막으로 미호로 항공대 다케타 대위의 96식 폭격 중대가 몰려왔다. 다케다 중대가 투하한 두 발의 폭탄이 갑판을 뚫고 부상병의 응급 야전병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함내 영화관에 명중하였다.

부상자들 대부분이 전사했고 함은 좌현으로 뒤집어 지기 시작했다. 역시 함수 부분부터 침몰하기 시작하여 13시 18분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해면에서 형체를 감추었다.

이들 두 함들이 격침되기까지 일본 항공대와 교전했던 폭음은 먼 싱가포르항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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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바짝 붙어서 생존자 구출을 하고 있던 구축함 익스프레스마저 휩쓸려 같이 침몰할 뻔했다.



일본 해군 항공대는 49 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8발의 명중탄을 얻었다. 두 함에 각각 4 발씩을 명중시켰다.

공격에서 손실된 공격기들은 겐잔 항공대의 한 기, 미호로 항공대의 두 기, 합계 3기였고 한 기는 귀대 중 기지 부근에 불시착하여 대파되었다.

영국 함대가 긴급 출동을 요청했던 호주 공군의 F 2 A 버팔로 10기가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거의 침몰하고 있던 13:18에야 도착하였으나 이미 상황은 끝난 후였다.

호주 공군의 F2A 전투기는 소수였었고 이 전투기의 성능이 일본 해군 제로 전투기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함대가 공격받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기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아니라 리펄스의 함장으로부터 발신 된 늦은 출동 요청에는 함대의 위기 중에도 필립 제독의 거부 의사가 있었다는 추정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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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공군의 F 2A.



영국 측에 의하면 리펄스는 승원 1,309명중 테난트 함장 포함 796명을 구조하였고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1,612명중 1,285명이 구조되었다.

함대 사령관 필립스 중장과 존 리치 함장은 침몰하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참모들은 필립스 제독에게도 필사적으로 탈출을 간청했지만 필립스 제독은 “노, 탱큐.”라는 말을 남기고 작별을 하였다고 한다.



해상 항공력의 등장과 영국 함대 패전의 분석




말라야 해전이라고 부르는 이 해전은 사상 최초로 운행 중이던 주력함을 항공기가 방어 화력을 무릅쓰고 격파한 해전이다.

그 전 1940년 11월 11일, 이탈리아의 타란토 항 공습이나 말라야 해전 이틀 전의 하와이 기습은 항공력이 함대를 격파했지만 모두 정박 중에 이루어진 것이라 의미가 다르다.

이 말라야 해전은 기존의 거함주의(巨艦主義)대 항공주의(航空主義), 어느 쪽이 더 우월한 것인가의 논쟁을 재우고 단연 해군 항공력 시대가 왔음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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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항공모함 인도미타블



비극의 이면에는 함대 사령관 필립 제독의 항공력 경시 인식이 한 목 했다는 인식이 크다.

사실 출동 전 싱가포르 파견 호주 공군 싱가포르 파견대장 톰 비고 대위가 함대의 주간 항해 중에 항시 6기 정도의 호위기를 파견할 수가 있다고 제안했지만 필립 제독이 이를 사양했었다.

그는 빈약했으나 그런대로 없는 것보다 나은 호주 공군의 전투기 엄호나 항공 정찰 활용을 고려하지 않았었고 이 점 뒤에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준비했던 말라야 상륙작전을 충분한 항공력 없이 전함만의 출동으로 분쇄하겠다는 처칠의 구상 자체가 잘못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원래 계획되었었던 영국 항공모함 인도미타블이 같이 파견되었고 항공 해상 연합의 입체 작전을 전개하는 마인드가 필립 제독에게 있었다면 결과가 이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처칠은 양함의 격침보고를 받은 직후의 충격을 이렇게 썼었다.


"전쟁 동안을 통틀어 나는 이보다 더한 충격을 받은 일이 결코 없었다. 나는 온몸에 엄습해오는 공포로서 잠자리를 뒤척였다.

이제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일본의 공격을 막을)영국과 미국의 전투함은 - 진주만에서 살아남아 미 서부 항구로 피신 중인 것을 제외하고는 - 없다. 광활한 바다에서 일본은 압도적이고, 우리는 모든 곳에서 약하고 발가벗겨졌다."



In all the war, I never received a more direct shock... As I turned over and twisted in bed the full horror of the news sank in upon me.

There were no British or American ships in the Indian Ocean or the Pacific except the American survivors of Pearl Harbor, who were hastening back to California.

Over all this vast expanse of waters Japan was supreme, and we everywhere were weak and na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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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루즈벨트 대통령과 대서양 회담 당시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갑판을 산책하는 처칠. 불과 몇 달 후 이 배가 일본군 항공기에 의해 침몰할 줄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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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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