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인도양 영일전쟁 - 일본 해군의 화려한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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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4회 작성일 16-02-0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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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항공모함 아카기(赤城)


1942년 4월 초 일본 해군의 인도양 작전은 일본이 구상한 자칭 ‘대동아공영권’의 방어를 공고히하는 목표로서 행해진 것이었다.

인도양의 영국 해군 동양 함대의 위협을 미리 제거하는 한편 진행 중인 미얀마에 대한 침공 작전을 원활하게 하는 소득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내막을 살펴보면,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과 고전하고 있던 독일이 일본에게 해군의 인도양 작전을 강력하게 요구했었던 숨은 배경도 있었다.

일본 해군은 하와이를 기습했었던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중장의 나구모 기동 부대(第一航空艦隊)를 중심으로 인도양 원정 부대를 구성했다.



일본, 인도양 작전 개시



인도양 원정 부대와 진주만 공격부대와 큰 차이는 6척의 항모(항공모함) 중 카가가 정비 목적으로 빠져 항모 5척이 동원된 대신 2척의 전함이 더 추가되어 4척의 전함이 인도양 원정에 출동했던 것이었다.

이 함대는 3월 26일 셀레베스(현재의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스타링 만을 떠나 자바 섬 연안을 따라 인도양에 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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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동함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1887-1944) 중장





제임스 서머빌(James Somerville 1882-1949) 제독




한편 영국 런던의 해군 본부에서도 일본 함대의 인도양 진입의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히 예견하고 고민 중에 있었다.

영국은 태평양 전쟁 개전 초 이미 ‘불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HMS Prince of Wales)와 리펄스(HMS Repulse)를 일본 해군 항공대에게 격침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말라야(현재의 말레이시아)도 점령당했으며 버마(미얀마)에서도 턱없이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양에까지 일본군이 진입한다면 영국이 입을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는 걱정은 컸지만 현실은 일본 해군 내침(來侵)에 대항할 인도양 해역의 군사력 능력은 턱없이 허약했다.

이미 독일과 깊은 전쟁에 빠져있던 영국은 인도양에 충분한 함대를 보낼 여력(餘力)이 없었다.

제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는 인도의 남단 실론 섬(현재의 스리랑카)이었다. 이 곳을 빼앗기면 인도 동해안과 영국과 북부 아프리카 전선을 연결하는 보급선은 자연히 차단되게 되어있었다.

영국 해군 참모총장은 실론 섬의 방어만은 능력을 총동원해서 보강하기로 하였다.

실론 섬 방어를 위해서 취한 최초의 조처는 능력 있다는 제임스 서머빌 제독을 영국 동양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서머빌 제독은 3월 26일 취임하였다.

그의 정보 참모는 일본 해군이 실론의 수도 콜롬보 항과 두 번째로 중요한 실론 북부 트링코말리 항에 진주만 식의 기습을 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보고했다.

영국은 실론의 남서쪽 600 마일 해상에 몰디브 군도의 남쪽 끝에 있는 아두 아톨(Addo Atoll, 아두 산호초)에 제 3의 해군 기지가 있었다.

이 군항은 정박과 급유를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어서 대 잠수함 방호 시설이나 대공 포대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 함대 침공시 영국 함대의 중간 기지로는 활용할 수는 있었다. 단, 일본 해군의 이 해군기지의 존재를 전쟁 후에까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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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북부는 벵골만이고 아래에 일본 기동함대의 주 공격 목표였었던 실론(스리 랑카)섬이 보인다.





아두 아톨을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영국의 모범적인 탁상계획



영국 해군 지휘부는 서머빌 휘하 B 부대라고 호칭하는 인도양 방어 영국 주력함대에 대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B 부대는 구식 R급 전함(戰艦)들은 속도도 느렸고 항해 거리가 짧았다.

함대 휘하의 순양함들과 구축함들은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잡다한 함형(艦型)들로서 합동 작전도 힘이 들었고 통합 훈련을 해본 일도 없었다. 거의 모든 함들이 모두 정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수리를 해야 할 고장투성이었다.

서머빌 사령관은 자기가 지휘할 수상함대의 제한된 기능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B 함대는 일본 해군이 항모를 중심으로 공격해온다면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주력 함대인 B 부대를 예비로 돌려놓고 수송선단의 호위 임무나 맡길 계획을 세웠다. 결과 항모 중심의 일본 기동 부대를 맞설 주임무는 더 신식함들로 편성 된 A부대에게 주기로 하였다.

서머빌 제독이 이런 기본 판단에 의거해서 세운 작전 전략은 일단 탁상에서 보면 모범적이었다.

그는 영국 함대를 주간에는 일본 정찰기들의 정찰거리 밖에 위치해놓았다가 야간에 적 함대에 접근해서 유인해내어 주간에 영국 항공기들이 공격하는 것이었다.

계획에 의거, 주간에 일본 함대를 치기 위해서 영국 공군과 해군은 실론 섬의 여러 비행장들에 다수의 항공기들을 배치하였다. 가장 중요한 콜롬보 시 비행장에는 42기의 전투기가 배치되었다.

22기의 허리케인(Hawker Hurricane) 전투기, 14기의 스피트파이어(Supermarine Spitfire)전투기, 6기의 풀머(Fairey Fulmar)공격기들이었다.

여유 있는 활주로 확보를 위해서 경마장의 경주로도 활주로로 개조되었다.

북부의 트링코말리에는 장거리에서 성공적으로 일본 항공모함을 공격할 수 있기를 기대되는 해군 블렌하임 쌍발 폭격기가 배치되었다.

영국 함대가 세(勢)부족으로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한다)으로 입안한 술래잡기식 작전은 곧 열전(熱戰)으로 발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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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투기 허리케인





영국 함재 공격기 풀머(Fairey Fulmar)






정보는 대체로 정확했다, 그러나…



사령관 서머빌 제독은 실론 섬이 공격받을 시기를 4월 1일 전후가 될 것이라는 정보 보고를 받았다. 이 정보는 발달했던 영국의 통신 정보 부대가 일본 암호를 해독하여 얻은 정보에 기초하고 있었다.

정보는 일본 나구모 기동 함대의 크기를 비교적 정확히 담고 있었다. 날짜만 빼고는 대체로 정확한 정보 보고였다.

정보에 의거 서머빌 제독은 영국 함대를 3일간 실론 섬 남방으로 항해하여 일본 함대를 공격하기 좋은 위치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일본 함대는 예상 외로 나타나지 않았다.

4월 2일 밤, 그는 일본 함대 기습 예정일에 대한 정보가 부정확했던가, 아니면 일본 함대가 술책을 부려 영국 함대가 모르는 틈새로 교묘히 스며들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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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중좌 시절에 미국 출장 중 친구와 만나 즐거워하는 나구모 주이치


일본 함대는 그렇게 접근해서 항내에 정박하고 있을 영국 함대를 공격할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영국 B 부대의 구식 전함들의 식수 저장 시설이 부족해서 조만간 기지가 있는 항구로 귀항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에 추가해서 일본 해군이 인도양에 전개했다고 추측되는 잠수함7 척을 생각하면 다수 함들로 구성 된 함대가 일정 수역에 집결하고 있다는 것은 재앙을 부를 수도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염려 섞인 판단이 덧붙여졌다. 그는 함대를 분산하여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것은 일 기동 함대 사령관 나구모(南雲)중장은 서머빌 함정을 따돌리는 술책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는 원래 작전 계획대로 서쪽으로부터 실론 남쪽 해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단지 영국의 정보 참모가 일본 함대 내습을 3,4일 너무 빠르게 앞질러 판단했을 뿐이다. 결과 서머빌 제독은 값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4월 2일 21:00. 서머빌 제독은 함대의 대부분 함(艦)들을 아두 아톨로 이동하여 필요한 보급을 받도록 하였다. 다음날 아침 그는 남은 함대를 둘로 나누어 도셋셔와 콘월, 두 순양함 구성의 한 함대는 콜롬보 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 곳에서 도셋셔는 재정비 수리를 하고 콘웰은 대기하다가 영국으로 가는 수송선단의 호위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경항공모함 험스(Herms)를 주축으로 하는 다른 함대는 구축함 뱀파이어와 같이 실론 북부 트링코말리 항구로 가서 영국군의 마다가스카르 진공을 지원하는 작전에 대비하여 출동 준비를 하도록 했다.



내습하는 적을 두고 흩어진 영국 함대



내습하는 적 앞에서 함대가 전투와 상관없는 임무를 부여받고 해산한 꼴이 되었다. 그러나 몰디브의 아두 아톨로 출발한 함대가 섬에 도착하자마자인 4월 4일 오후, 영국 함대의 정찰기는 실론 섬의 최남단 돈드라 헤드에서 남쪽으로 360마일 해상에서 접근하는 일본 해군 기동 함대를 발견했다는 급전을 보내왔다.

일본 함대 실론 공격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던 서머빌 제독은 정찰기가 보낸 보고에 크게 놀랐다.

일본의 실론 공격은 다음 날인 4월 5일 아침에 감행될 것이다. 일본의 내침(來侵)이 확실한 순간에 영국 함대 지휘부가 잘못 판단해서 내린 명령들을 수정하는 다급한 조치가 취해졌다.

콜롬보 항의 방어 사령관 레이턴 제독은 비상을 걸고 4월 5일 03:00까지 전 방어 병력의 전투 배치를 완료했다. 항내(港內)의 대부분 선박들은 3월 28일 이후 거의 바다로 내보내어 피신시킨 상태였다.

레이턴 제독은 남은 선박들도 항 밖으로 대피를 명했다. 4월 4일 22:00, 순양함 도셋셔와 콘웰도 긴급 출항하였다. 전투 출동이 아니라 몰디브 군도의 아두 아톨로의 대피 항해에 오른 것이다.

같은 날 실론 북방 트링코말리항으로 갔던 경항공모함 험스와 구축함 뱀파이어(호주 해군)는 수리를 마치고 신속하게 아두 아톨로의 직행을 명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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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순양함 콘월(HMS Cornwall)





중순양함 도셋셔(HMS Dorsetshire)






폭격 당한 콜롬보



다음 날 일본 기동함대의 항모들은 공격기들을 발진시켰다. 콜롬보의 레이더는 공격기 첫 1파의 접근을 신속히 탐지했으나 통신 미비로 공습경보는 07:40에 발령 되었다.

4월 5일 부활절 아침 08:00, 일본 해군 항공대는 콜롬보 상공에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까마귀 떼처럼 나타났다.

콜롬보 항을 공격한 일본 해군 함재기 항공대는 그 규모가 진주만을 기습했을 때만큼 컸었다. 총 315기의 99식 급강하 폭격기, 97식 함상 공격기, 제로식(영식)함상 전투기 등이 콜롬보를 공격했다.

이는 일본 기동함대가 예비기 45기를 제외하고 동원 할 수 있었던 최대 크기의 항공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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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실론 섬(스리랑카). 좌측에 제1 공습목표 콜롬보(Colombo) 항이 있고 우측 위에 트링코말리(Trincomalee) 항이 있다.


출격에 앞서 나구모 중장은 조종사들에게 일본 함대가 진주만에서 저지른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라고 강하게 강조하였다.

즉, 콜롬보 항의 항만 시설과 저유 탱크 시설들을 제일착으로 부수고 항내에 남아 있는 선박들도 모두 격침 시키라는 것이었다.

진주만 기습 때 공격대들이 전함과 항공기만 파괴하느라 다른 주요한 목표들 유류 저장시설이나 항만시설을 파괴하지 않았던 실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해군 나무모는 이번 공격에서 진주만이나 호주의 다윈 항 공격 때 즐겼던 기습의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일본 항공기들은 선두 편대부터 28기의 영국 전투기들 요격을 받았다. 제로 전투기들이 이들 공격을 맞받아쳤다. 영일 전투기들은 아침 하늘에서 짧지만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다.

전투기들의 엄호아래 일본 공격기와 뇌격기들이 목표에 접근을 시도하였다. 14기의 영국 허리케인 전투기들이 기습했다. 허리케인 전투기들은 급히 개조한 경마장 경주로에서 출격한 것이다.

어뢰를 장착한 6기의 스워드피시기가 북쪽 트링코말리 항에서 출격하여 콜롬보 해역으로 출격했다. 구식 복엽기인 스워드피시 기들은 대담하게도 일본 기동 부대를 공격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느리고 둔한 이 뇌격기들은 충분히 접근도 하기 전에 일본 전투기들에게 발견되어서 모두 격추되고 말았다.

공격 항공대의 첫 부대는 항내와 항외의 선박들을 폭격했다. 다른 항공대는 저공으로 들어오면서 폭탄과 기총소사로 항만, 철도와 수리소들과 인근 비행장들을 공격했다.

그 다음의 공격대는 고공으로 내습했다. 이들 주력은 미처 대피못한 해군함들을 노렸다. 구축함 테네도와 한 장갑 순양함을 격침하고 잠수함 모함 루치아를 대파시켰다.

그리고 다른 항공기들은 해군 수리소 시설들과 건물들을 파괴하였다. 08;30에 30분간의 공습은 모두 종료되었다.

영국 해군이 즉시 반격에 나서 브렌하임 폭격기들을 출격시켰지만 이들은 일본 기동함대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공습에서 영국은 두 기의 카타리나 수륙 양용정, 4기의 풀머, 15기의 허리케인을 잃고 6기의 스워드피쉬를 잃었다. 일본기는 단지 7기만을 잃었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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