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산호해해전 2 - 산호해해전 (2) – 항모 VS 항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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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0회 작성일 16-02-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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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전 직전의 양함대의 이동





양측의 공격 항공대 발진



플레쳐는 10시경에 정찰을 나간 3기의 미 B-17로부터 고토 함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었다. 즉, 한 척의 항모와 10척의 수송선 그리고 16척의 순양함, 구축함 혼성의 호위함대라는 사실을 보고 받았던 것이다.

플레쳐는 B-17이 발견한 것이 일본의 기동함대가 맞다고 보고 그의 전기 돌격의 명령을 내렸다.

한편 미국의 항모를 공격하기 위해서 출격하였던 다카키의 공격 부대는 9시경 목표 해역에 도달하여 항모 대신 급유선 네오쇼와 호위하던 구축함 심스를 발견하고도 근처 해상을 수색하며 미 항모 부대를 찾았지만 발견에 실패했다.

11시경, 확인을 다그치는 지휘부에 쇼카쿠의 정찰기 승무원들은 자신들이 실수를 해서 급유선과 구축함을 발견한 것을 잘못 보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카키는 비로소 미국 항모부대가 자기의 기동부대와 포트 모르스비 공략 함대 사이에 활동하고 있고 공략 함대와 고토의 호위함대가 극도의 위기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카키는 이미 출격한 함재기들에게 즉시 네오쇼와 심스를 격침하고 최단 시간 내에 항모로 귀대하도록 긴급 명령을 내렸다.



미 급유함 네오쇼 격침



오전 11시경 두 미군함을 격침할 36기의 99식 급강하 폭격기들만 해역에 남고 어뢰를 장착한 97식 수평 공격기와 제로 전투기들은 그대로 귀함 길에 올랐다.

99식 급강하 폭격기들은 두 척의 미군함을 공격했다. 네 기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구축함 심스를 공격하고 나머지들은 네오쇼에 급강하 폭격을 가했다.

구축함 심스는 99식 폭격기가 투하한 세 발의 폭탄을 맞고 함체가 두 동강이 나서 침몰하였다. 192명의 승조원중에 단지 14명만 생존하였다. 급유함 네오쇼는 7 발이나 맞았다.

네오쇼는 완전히 동력을 잃기 전 플레쳐에게 공격당하고 있고 곧 침몰할 것이라는 보고 송신에는 성공했으나 피격 해역의 잘못된 좌표를 보냈고 더 이상의 자세한 상황 보고 전문은 혼신이 되어 플레쳐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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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해 해전중 미 구축함을 공격하는 97식 수평공격기





일본 경항모 쇼호 격침



한편 일본함대를 향해 출격하였던 미 함재기 공격부대는 10시 40분 미시마 섬 북동쪽 해상에서 경항모 쇼호를 발견하고 공격 대형으로 전개하였다.

쇼호는 상공에 6기의 제로기와 2기의 구형 96식 전투기를 띄어 놓고 있었다. 다른 함재기들은 항모 격납고에서 출격 준비에 바빴다.

고토 제독의 순양함들이 쇼호를 둘러싸고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호위하고 있었다. 첫 번째의 일격을 가한 미 공격대는 윌리엄 B.올트 소령이 지휘하는 항모 렉싱턴 항공대였다.

첫 공격대는 두 발의 1,000파운드 폭탄과 5발의 어뢰를 명중시켜 쇼호에게 대타격을 주었다. 쇼호는 화재가 발생하고 항해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요크 타운의 항공대가 빈사상태의 쇼호를 공격하여 1,000파운드 폭탄을 11발이나 명중시키고 덤으로 두 발의 어뢰를 가격하였다.

작은 경항모로서 버티기 힘든 타격이었다. 함체가 둘로 절단된 쇼호는 30여분을 버티다가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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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함재기 공습으로 불타는 일 경항모 쇼호



추가 공습을 두려워한 고토 제독은 그의 함대를 북쪽으로 철수하였다. 고토의 부대가 방향을 돌릴 때 B-17 8기에게 공격을 당했지만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후 2시경 구축함 사나자미를 쇼호가 침몰한 해상으로 보내 표류하는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쇼호의 834명의 승조원중에 203명만이 구조되었다. 쇼호와 함께 함내에 있던 18기의 함재기도 해저로 사라졌다.



치열한 색적(索敵)의 경쟁



정오가 지나 미 함재기들은 모두 귀함하였고 오후 2시 20분까지 재무장과 연료 공급 작업을 완료하고 고토의 포트 모르스비 엄호 함대 순양함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명령을 대기 하였다.

그렇지만 기동함대 사령관 플레쳐 제독은 아직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일본 기동함대의 항모가 마음에 걸려 재출격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고토 부대의 순양함을 공격하기 위해 공격대를 출격시키기 보다 상황이 정확히 파악할 때까지 해상에 깔리기 시작한 구름 밑에 잠복하기로 하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했다.

한편 쇼호의 격침에 놀란 포트 모르스비 공략부대 사령관 이노우에 제독은 함대를 잠시 북쪽으로 이동시키고 플레쳐 부대에서 417km 떨어진 동쪽 해상에 있던 다카키의 기동함대에게 쇼호를 격침시킨 플레쳐 함대를 발견하여 격멸하라고 지시했다.

고토와 가지오카 제독은 함대를 로셀 섬 남쪽으로 이동하고 미 수상함대의 야간 공격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한편 12:40분에 데보인 섬의 수상정찰기가 크레이스 제독의 순양함대를 발견하였다.

라바울에서 출격한 한 정찰기가 다시 발견하고 크레이스의 함대에 2척의 항모가 편성되어 있다는 잘못 된 보고를 하였다.

이 보고에 근거하여 이노우에는 라바울로부터 두 개의 공격대를 출격시켰다. 12기의 쌍발 1식 육상 공격기로 편성된 부대는 이미 아침에 출격하여 어뢰로 무장을 하고 전투 초계중이었다.

두 번째 공격대는 폭탄으로 무장한 19기의 96식 육상 공격기로 편성되어 있었다. 두 공격대는 크레이스의 함대를 함께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은 실패로 끝나 함대에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고 대신 1식 육상공격기 4기가 맹렬한 대공 사격에 격추되었다.

일본 항공대의 공격을 격퇴한 크래이스는 더 이상의 접근이 위험하다고 보고 명받은 작전을 취소하고 남서쪽으로 후퇴하였다.

오후 3시경 일본 항모 즈이카쿠는 데보인 섬의 정찰기가 발신한 크레이스의 함대 발견 보고를 모니터했다.

그 발신 정보에는 크레이스의 함대가 남동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잘못된 정보도 역시 모니터했다.

즈이카쿠의 지휘부는 이 발신이 플레쳐함대를 추적하는 정찰기가 플레쳐 함대를 미행하다가 보고하는 것으로 오인했다.

이 정보는 미 기동함대가 일본 함재기의 작전거리로 접근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 잘못된 정보 판단으로 다카키와 하라는 즉시 출격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제로기들을 모두 회수하지 못해 공격대는 전투기의 호위없이 출격하여야 했다. 더구나 오후 늦은 출격은 항모 착함(着艦)이 극히 위험한 야간에 이루어져야 했었다. 무모했지만 찬스를 놓칠 수는 없었다.



미군의 레이다 탐지와 일본 공격대의 피습



그러나 본대의 출격 전 미 항모 부대의 위치를 확인차 항모 부대장 하라는 8기의 수평 공격기(뇌격기)를 먼저 이함시켜 서쪽 370km 해역을 정밀 수색하도록 명령했다.

같은 무렵 미 급유함 네오쇼를 격침하고 귀함한 99식 폭격대 조종사중에서 경험 많은 6명은 긴 비행에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다시 출격하라는 긴급 명령을 받았다.

오후 4시경 하라는 12기의 급강하 폭격기들과 15기의 수평공격기를 출격시켰다. 그들에게는 277도 방향으로 520km를 비행하며 색적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미리 출격했었던 함재기들은 아무 성과없이 돌아왔었기 때문이다.

오후 6시 무렵, 다카키 부대로부터 370km 서쪽 해역의 짙은 구름이 낮게 깔린 해상에서 항진하던 플레쳐의 기동부대는 접근하는 일본기 편대들을 레이다로 탐지했다.

플레쳐 기동부대는 공중 초계중이던 11기의 와일드캣기를 접근하는 일본기에게 유도하였다. 와일드캣기들은 일본 공격대 7기의 수평 공격기와 2기의 급강하 폭격기를 격추하였다.

와일드캣도 세 기가 추락하였다. 나머지 일본기들은 작전을 취소하고 폭탄이나 어뢰를 해상에 버리고 전속으로 모함으로 복귀하였다.

밤이 찾아오자 작전은 끝이 났고 플레쳐는 17 기동함대를 서쪽으로 이동하며 날이 새면 360 도 전방위로 수색기들을 출동시킬 준비를 하였다.

일본 사령관 이노우에는 다음 날 미 기동부대를 격멸하라고 명령하면서 10일로 예정된 포트 모르스비의 공격작전은 12일로 연기했다.

다카키는 포트 모르스비 공략부대에 더 양호한 항공 엄호도 하고 아침 일찍 정찰기를 발진시킬 준비를 하기 위해 함대를 밤새 222km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양측 모두 아침 일찍 상대방을 발견하여 공격할 기대를 가지고 기동하고 있었다. 승조원들은 잠을 자지 못하고 항공기를 정비하고 무장시켜 출격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8일 아침 - 미일 항모부대 격돌



아침 6시 15분, 항모 사령관 하라는 7기의 수평 공격기를 출격시켜 남쪽 460km까지 수색하게 하였다.

함재기에 더해서 투라기에서 출격한 3기의 97식 비행정과 라바울에서 출격한 4기의 1식 육상 공격기가 적 함대 탐색에 지원되었다. 고토의 기누카사와 후루타카에서 발진한 두기의 수상 정찰기도 탐색에 나섰다.

한편 밤새 짙은 구름의 은폐아래 비교적 안전하게 미 함대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일본이 정찰을 보낸 비슷한 시간에 18기의 급강하기를 360도로 분산해서 항모 주위 사방을 수색하도록 하였다.

오전 8시가 넘어서 항모 렉싱턴에서 발진한 SBD 기가 짙은 구름에 뚫린 구멍사이로 일본 기동함대를 발견하였다.

거의 동시에 일본 항모 쇼가쿠에서 발진한 탐색기가 플레쳐의 17 기동부대를 발견하고 즉시 보고하였다.

이때 미국 함대와 일본 함대의 거리는 약 390km였다. 두 함대는 함수를 각기 상대방 함대로 향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함재기를 출격시켰다.

일본 항모 부대는 다카하시 가쿠이치 중좌가 지휘하는 33기의 급강하 폭격기, 18기의 수평공격기(뇌격기), 18기의 호위 전투기들의 출격을 완료하였다.

미국 항모 부대는 두 항모가 통합 공격대를 편성한 것이 아니라 항모별로 독립 공격대를 편성하여 날아갔다.

요크 타운에서는 24기의 급강하 폭격기, 9기의 뇌격기, 6기의 전투기가 발진되었고 렉싱턴에서는 15기의 급강하 폭격기와 12기의 뇌격기, 9기의 전투기가 발진하였다.

요크 타운에서 출격한 급강하 폭격기들은 일본 기동함대 상공에 도착했지만 뇌격기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동시 공격을 가했다.

쇼가쿠와 즈이카쿠는 약 10,000야드의 거리를 두고 항해중이었다. 즈이카쿠는 쏟아지는 열대 스콜 속에서 항해중이라 항공공격으로 비교적 은폐된 상태였다.

두 항모의 상공에는 16기의 제로 전투기가 초계 비행중이었다. 요크 타운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쇼가쿠에 먼저 급강하 공격을 가해서 급격한 대피 기동을 하던 쇼가쿠에게 두 발의 1,000파운드 폭탄을 명중시켰다.

쇼카쿠는 함교가 파괴되고 갑판이 대파 되었으며 격납고도 큰 피해를 입었다. 반면 요크 타운의 뇌격기들이 발사한 어뢰는 한 발도 맞지 않았다.

공격의 혼전에서 두 기의 미군 급강하 폭격기와 두 기의 일본 제로 전투기가 격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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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항모 쇼가쿠의 폭탄 대피 기동



항모 렉싱턴의 공격대가 좀 늦은 11시 30분 도달하여 두 기가 중상을 입은 쇼가쿠를 공격하여 다시 한 발의 1,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해서 피해를 추가 하였다.

두 기의 급강하 폭격기가 즈이카쿠를 발견하고 폭격했지만 빗나갔다. 다른 급강하 공격대는 점점 악화되는 기상에 일본 항모들을 목격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었다.

저공으로 돌입한 렉싱턴의 뇌격기들은 11발의 어뢰를 발사했지만 모두 불명중되었다.

13기로 줄어든 상공의 제로기들은 와일드캣과 공중전을 벌여 3기의 와일드캣을 격추시켰다.

비행 갑판이 사용 불능 되고 223명의 승조원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쇼카쿠 함장 조지마 다카쓰구 대좌는 이 상태로는 전투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12시 30분 다카키로부터 전장 이탈 허가를 받고 두 척의 구축함 호위를 받으며 북동쪽으로 물러났다.

미 항모 레이다는 126km 밖에서 날아오는 일본 공격 함재기 떼를 탐지했다. 렉싱턴은 공중에서 초계하고 있던 9기의 전투기를 일본 항공대 요격으로 유도했다.

그때 해군 항공대의 전술 상식적으로 보면 먼저 뇌격기가 저공으로 공격하고 이어서 급강하 폭격기가 고공에서 공격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전술 상식에 따라 미 해군 전투기들은 전 전투기가 저공으로 내려와 일본 공격대를 대기 했지만 일본 뇌격기들은 미 전투기 상공으로 지나가 버렸다.

전날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어 함재기의 숫자가 격감한 일본 공격 항공대는 미 두 항모에 꼭 같은 공격력을 균배할 수가 없었다.

공격대장 시마자키 시게카즈 중좌는 한 척의 미 항모에 뇌격기의 전투력을 집중하였다. 그 항모가 렉싱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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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해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항모 렉싱턴



4기만이 미 항모 요크타운을 공격했지만 렉싱턴에는 14기가 덤벼들었다. 와일드캣이 한 기를 격추하였고 고공에서 초계 비행중이던 8기의 급강하 폭격기 SBD가 3기의 일본 뇌격기를 격추했다.

반면 주특기가 공중전이 아닌 SBD는 일본 제로기에게 4기나 격추 당했다. 일본 뇌격대의 공격은 11시 13분에 감행되었다.

적기 출현 때 미 항모 렉싱턴과 요크 타운은 2.7km의 거리를 두고 항해하고 있었다. 두 항모는 물론이고 호위 함대도 대공포의 최대 화력을 쏘아 올렸다.

요크 타운을 공격한 4기의 일본 뇌격대가 발사한 어뢰는 모두 빗나갔다. 렉싱턴에 돌격한 14기의 일본 공격기는 렉싱턴의 양현을 동시에 공격하였다.

목표함이 어느 쪽으로도 대피를 하기 힘들게 하는 공격이었다. 게다가 렉싱턴은 함체가 커서 요크 타운보다 운동성이 크지 않았었다.

공격 7분만인 11시 20분, 한 발의 일본 91식 어뢰가 렉싱턴 좌현의 항공 유류 탱크 부분을 타격하였다.

당시 렉싱턴의 승조원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누출된 가연성 유증기(油蒸氣)가 함내에 빠르게 퍼졌다. 다른 한 발의 어뢰 역시 좌현을 강타하고 증기 엔진에 물을 공급하는 주 펌프를 박살냈다.

그 결과 앞부분(前部) 3기의 보일러에 공급되는 물의 압력이 크게 떨어졌고 보조 보일러까지 가동 중단 상태로 만들었다.

그래도 렉싱턴은 최고 속도는 내지 못했지만 온전한 보일러들을 풀 가동해서 여전히 24노트의 고속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렉싱턴은 큰 상처를 입으면서도 대공 포화로 일본 뇌격기 4기를 격추시켰다. 뇌격대 뒤에는 급강하 폭격대가 있었다.

뇌격이 지나가자 이미 도착하여 14,000피트 하늘에서 선회하고 있었던 33기의 99식 급강하 공격기들이 3-4분 후 정도 뇌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급강하 폭격을 개시하였다.

다카하시 중좌가 지휘하는 19기의 쇼가쿠 폭격대는 줄을 지어 렉싱턴에 급강하 했다. 에마 다모쓰 소좌가 지휘하는 14기는 요크 타운을 목표로 하고 역시 급강하했다.

제로기들이 요격하는 4기의 렉싱턴 와일드캣으로부터 다카하시 공격대를 보호하였다. 다카하시의 공격대는 근접탄으로 렉싱턴에 큰 피해를 주었다.

렉싱턴에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불은 곧 진화되었다. 그러나 요크 타운은 바로 비행갑판 정중앙에 폭탄 한 발을 명중당했다.

반 철갑탄이었던 이 폭탄은 갑판 아래 4층의 덱크를 통과하여 폭발하였다. 항모 깊숙이 폭발한 폭탄은 구조들을 파괴하고 항공용 유류고를 폭파시켰다.

이 폭발로 66명의 승조원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직격하지는 못했지만 항모 바로 옆 바다에 투하된 폭탄 12발은 요크 타운의 워터 라인아래 함저(艦底)에서 터져 역시 피해를 주었다.

일본 공격대는 공격을 끝내자 철수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미 항모 두 척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고 믿었다.

일본의 미 항모 공격전에서 미군은 3 기의 SBD 급강하 공격기 3기의 와일드캣 전투기를 잃었다. 일본은 3기의 뇌격기 1기의 급강하 폭격기 1기의 제로 전투기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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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받고 있는 렉싱턴함





사상 최초 항모전 직후



미일 양측의 함재기들은 모두 항모로 돌아가던 중 양 항공대는 중간 상공에서 조우했다. 이어진 공중전에서 공격대장 다카하시와 가노가 탄 공격기들이 피격을 받아 격추되고 두 사람은 전사했다.

일본기의 기습으로 크게 부서졌지만 요크타운과 렉싱턴은 출격에서 돌아오는 함재기들을 가까스로 수용할 수가 있었다. 전투기 회수 과정에서 미군은 여러 이유로 함재기 손실들이 발생했다.

전투 외의 원인으로 다섯 기의 SBD, 두 기의 TBD와 한 기의 와일드캣을 추가로 잃었다. 일본도 같은 이유로 2기의 제로기, 5기의 99식 급강하기, 한 기의 97식 수평공격기를 잃었다.

출격하였던 69기 공격대중에 46기만이 파괴된 쇼카쿠에 내리지 못하고 즈이카쿠에 착함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2기의 제로기, 5기의 급강하 폭격기 1 기의 수평 폭격기를 잃었다.

착함에 성공한 함재기들을 점검한바 수리 불능의 항공기들도 많았었다. 3기의 제로기, 4기의 급강하 폭격기, 5기의 수평공격기는 수리 불능으로 판정 받고 바다에 폐기 되었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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