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과달카날 2차 해전 (2) - 일본군의 끈질긴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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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75회 작성일 16-02-0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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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는 과달카날 1차 해전 뒤에 북방으로 일시 철수한 함대들을 급하게 재편성해서 새 함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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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하는 일 과달카날 공략부대[2차 해전 참여 일본 해군 곤도 부대다.



그는 가장 큰 거함이었던 기리시마가 아닌 중순양함 아타고(愛宕)를 기함으로 삼고 그의 사령기를 걸었다. 일본 함대의 임무는 단순했다.

1942년 11월14일 야간에 곤도 함대가 선도로 과달카날과 사보 섬 중간 아이언 버텀 해협을 통과한 뒤 다나카 소장이 지휘하는 수송선단은 병력을 상륙시키고 곤도 함대의 기리시마와 중순양함들은 날이 새기 전에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한 뒤에 신속하게 도피해 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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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 노부다케 중장. 일본 연합 함대 부사령관의 직책으로 미국 유학파이다. 지성적인 면은 있었지만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전함이나 순양함등 대구경 포를 장비한 전투함들이 야간에 핸더슨 비행장에 접근하여 포격한 것이 도합 네 번이었는데 그 중 일본 전함 공고와 하루나가 1942년 10월 13일부터 14일의 야간에 걸쳐 원거리 바다에서 감행한 포격은 비행장을 일시적인 사용 불능에 빠뜨리는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번 과달카날 해전에서 함대의 비행장 포격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11월 14일 오전 2시에 제 7전대 소속의 중순양함 스즈야, 마야 등은 과달카날 근해로 침투하여 핸더슨 비행장에 급습 포격을 가했다.

이들이 소모한 주포탄량은 스스야가 504발, 마야가 485 발이었다. 야간에 순양함에서 출격한 수상 정찰기의 보고에 의해 핸더슨 비행장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는 자체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중순양함의 주포탄은 거포탄들보다 작은 20cm 구경의 작은 포탄들로 이중 활주로를 운영하는 핸더슨 비행장을 장시간 무력화시키기는 무리였다.

마야와 스즈야의 포격을 받은 핸더슨 비행장은 항공기 18기 파손의 피해를 입었으나 비행장은 피해를 단숨에 복구하고 항공대는 출격을 계속하였다.

곤도 제독의 전함 기리시마가 전날 비행장 포격의 임무를 이어받아 거포탄들로 핸더슨 비행장 파괴를 확실하게 할 중심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미군은 1차 과달카날 해전이 있기 전에도 암호 해독과 항공 정찰을 통해 일본 해군이 과달카날로 치고 들어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미군 남서태평양 지구 사령관 홀지(Halsey)중장은 과달카날 해역에 해상 전력을 더 증파해야 할 필요를 느꼈으나, 일본군에 대항할만한 함대는 전함 워싱턴과 전함 사우스 다코다가 주력함인 제 64 기동함대 뿐이였다.

윌리스 리 소장이 지휘하는 64 기동함대는 과달카날 300 마일 남쪽의 누메아 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미 해군 전투 교리에 의하면 야간에 좁은 해협에 대형 전함을 투입하는 것은 전술 상식상 현명한 짓이 아니었다.

그렇게 좁은 해협은 구축함이나 어뢰정들이 활동하기에 어울리는 곳이었고, 더구나 전함의 거포는 밝은 주간에 원거리까지 마음껏 쓸 수 있는 전투 무기이지 시야가 제한되는 야간의 전투 무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홀지 제독은 미 해군 대학교의 전술 교리쯤은 무시하기로 하고 64 기동 함대의 출동을 결심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전속으로 북진, 사보 섬 동쪽 해역으로 진출하여 보급을 시도하는 일본 수송 선단과 호위 함대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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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워싱턴



1942년 11월 12일. 홀지 제독은 리 제독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두 전함은 대기하고 있었던 누메아 정박지를 떠나서 과달카날을 향해 출동했다.

두 전함이 출동하던 그날 밤, 과달카날의 아이언 버텀 해협에서는 제 1차 과달카날 해전이 벌어졌다.

홀지가 내린 출동 명령을 받은 전투함들은 신형 노스 캐럴라이나 급의 전함 워싱턴과 전함 사우스 다코다가 있었고 노섬프톤과 산티아고 두 척의 순양함, 그리고 구축함 4척이었다.

워싱턴은 1940년에, 사우스 다코다는 1942년에 취역한 전함으로 미 해군의 신예함들이었다.

워싱턴과 사우스 다코다는 35,000톤의 크기에 28노트로 달릴 수 있었고, 신형 레이다가 부착되어 있었다. 포는 16인치 포 9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64 기동부대의 사령관 윌리스 리 제독은 이 부대 저 부대에서 차출한 워키, 벤험, 프레스턴, 그리고 그윈 네 척으로 구축함대를 편성했다.

차출의 기준은 어느 구축함들이 연료를 가장 많이 싣고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이는 장거리 항해가 필요한 작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구축함들은 사전에 함께 작전은커녕 함대 훈련조차 해본 일도 없었다.

함형(艦型)도 뒤죽박죽이었고 크기도 각기 달랐다. 통일된 함대 작전이 극히 힘든 편성이었다. 구축함 워키의 함장 토마스 프레이저 중령에게 이 긴급 편성 구축함대의 지휘권이 주어졌다.

출동 진형은 네 척의 구축함이 앞장서고 뒤를 두 척의 전함이 따르는 단종진(單縱陣)이었다.

리 제독은 전투 후에 급조 함대는 함께 훈련을 해보지도 않았었고 승조원들의 훈련도가 높지 않다고 봤었기에 작전의 성공적인 완수를 불안하게 생각했었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였다. 함대는 12일 누메아 기지를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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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 리 제독





1942년 산타 크루즈 해전에서 뇌격 육박하는 일본 해군 1식 육상 공격기에 대공포화를 집중하고 있는 사우스 다코다.




함대는 전속력으로 북상해서 11월 14일 늦은 밤에 사보 섬 12km 근방의 아이언 버텀 해협에 도착했다. 리 제독의 64 기동함대가 사보 섬 방향으로 기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곤도 함대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날 오후 14시 20분에 해상 수색을 나갔던 수상기 모함 지도세의 수상 정찰기가 항모 두 척과 전함 1척, 순양함 한 척, 구축함 4척을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특설 수상기 모함인 사누키마루에서 발진한 수상 정찰기들도 적 항모와 전함 2척의 발견을 보고하였다. 적 함대 출현에 긴장한 곤도 사령관은 휘하 함대에 그날 밤 적 함대 출현과 전투의 가능성이 농후하니 전투 준비에 철저를 기하라고 명령했다.

일본 함대가 사보 섬 근해에 도착할 무렵인 20:05 곤도 함대를 선도하며 전방 초계를 하던 일 구축함 우라나미가 미군 함대를 발견하였다. 이 때 미군 함대는 사보 섬 남동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

이어서 22시 14분, 구축함 시키나미가 곤도 함대의 남쪽 13km에 미군 함대가 출현하였음을 보고하였다. 두 구축함 역시 두 척의 전함을 순양함으로 보고하였다. 하지만 열대성 소나기가 내려 미 함대의 추적에는 실패하였다.

조금 뒤 소나기는 지나가고 바다는 달 그림자가 선명하게 비치어질만큼 고요했다.

미 함대는 적의 피탐 가능성에 대비해서 레이더를 가동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두 일본 구축함을 아직 발견하고 있지 못했다. 21시 48분, 리 제독의 제 64 기동부대는 사보 섬 9km 북쪽에서 남동쪽으로 변침하였다.

사보 섬을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선회하는 침로를 택한 것이다. 함대는 사보 섬과 과달카날 사이의 아이언 버텀 해협에 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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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버텀 해협에서 바라본 사보 섬



아이언 버텀 해협이라는 별칭은 과달카날 상륙작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2년 8월 9일 야간에 이 해협에서 미카와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 순양함 부대가 미. 호 연합국 함대를 기습하여 연합국 순양함 다섯 척을 격침 한 뒤에 붙여진 명칭이다.

되풀이 말하자면 과달카날 섬과 사보 섬의 중간에 위치한 좁은 해협이다. 이 때 함대 사령관 리 제독은 투라기 섬에서 기지를 둔 미 어뢰정 부대로부터 적 함대 발견의 보고를 받았다.

함대는 즉시 서쪽으로 변침(變針)해서 사보 섬과 과달카날 섬의 에스페란스 곶 사이를 통과하는 항로로 향했다.

22시, 전함 기리시마를 선두로 한 주력 부대인 일본 해군 제 1 부대가 과달카날 해역에 진입했다.

그 뒤를 곤도 사령관이 좌승한 중순양함 아타고, 다카오, 경순양함 나가라가 후속했고 또 그 뒤를 하시모토 소장 지휘하의 제 2 부대 기함 경순양함 센다이가 선도하는 3척의 구축함들이 나타났다.

과달카날 해역 돌입 전 곤도 중장은 1 부대와 2 부대의 두 개 부대를 또다시 4개로 분할했다.

전함 기리시마, 중순양함 아타고와 다카오, 구축함 아사구모, 데루츠키를 본대로 지정하고 이 본대는 과달카날 해역으로 진입해서 사보 섬의 9km 서쪽(아이언 버텀 반대편)을 통과하게 하였다.

기무라 소장 지휘의 경순양함 나가라와 구축함 4척을 편성한 부대는 사보 섬 동쪽 5km를 통과하는 항로를 취했다. 이 기무라 함대의 구축함 아야나미만 단독으로 사보 섬 서쪽을 홀로 남진했다.

일본 함대가 사보 섬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갈라서 해역에 진입하는 형태였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미군 함대를 경계하기 위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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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이 미 함대의 기동 코스, 붉은 빛이 일본 함대의 기동 코스다.



사보 섬을 통과한 센다이와 나가라 두 그룹은 사보 섬 남쪽으로 진행해서 미 함대가 나타나면 격멸하도록 했다. 이 방향에서 미군 함대가 출현할 가능성이 제일 컸다.

미 함대는 11월 14일 22시 55분, 워싱턴과 사우스 다코다의 레이다로 일본 함대를 잡아냈다. 거리는 18km였다.

미군이 일본 함대의 존재를 감지하고 30분이 지난 23시 31분, 곤도가 승함한 지휘함 아타고도 미 군함을 발견했다. 그러나 일본 해군 견시들은 전방에 나타난 두 척의 미군 전함을 미군 순양함들이라고 잘못 판단하였다.

그런 심야에, 그런 육지에 가까운 근해에 거대한 전함이 출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일본 해군의 선입견이 그런 반복 된 오인을 하게 만들었으리라고 본다.

곤도는 미국 주력함들이 순양함 두 척뿐이라면 자기 휘하 함대들이 이를 해치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센다이 그룹과 나가라 그룹에게 미군 함대를 격파하도록 명령하였다.

그 사이 후속하던 전함 기리시마는 적 함대를 영격하지 않고 그대로 항진해서 과달카날의 핸더슨 비행장 쪽으로 접근하여 포격할 계획을 세웠다.

기함 기리시마가 함대 결전을 회피한 결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리시마는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하기 위해서 14인치의 대공 고폭탄을 대량 적재하고 있었다.

이 탄(彈)들은 항공기뿐만 아니라 신관만 조정하면 대지 공격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 탄들로 두껍게 장갑을 두른 적 전함의 함상 구조물을 파괴할 수는 있었으나 격침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곤도는 기리시마를 미 함대와 대응시키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23시, 과달카날 해역에 진입해서 이미 일본 함대의 존재를 탐지해낸 전함 워싱턴의 레이더는 바로 정면 340도 방향 18,000야드 전방에서 횡으로 달리고 있는 일본 함대를 잡아냈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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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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