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야마모토 격추 2 - 부겐빌 상공에서 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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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81회 작성일 16-02-0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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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의 마지막 사진- 라바울에서의 훈시



한편 시찰에 나선 야마모토는 일본 해군의 남태평양 본거지인 트럭 섬의 기함 무사시를 떠나 육군의 남태평양 본거지인 라바울로 이동하였다. 라바울의 지역 사령관은 암호 정보가 누설되었을 가능성을 염려하여 야마모토를 만류했으나 야마모토는 계획대로 일정을 강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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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장 우가키 마토메 중장



암호 체계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군이 아직 해독을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함께 방문 지역이 안전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당시 야마모토의 방문 지역은 일본 해군이 제공권을 잡고 있었다. 미군 항공대의 내습은 없었고 가끔 먼 과달카날에서 단기로 날아온 P-38기가 고공에서 정찰 후 도주하는 일이 발생할 뿐이었다. 이 지역은 항공 방문을 한다 해도 안전하다는 인식을 가질 만했다.

시찰 비행에는 일본 해군의 쌍발 공격기인 일식 육상 공격기 두 기가 지정되었다. 한 기는 야마모토와 일부 참모가 탑승하고 다른 한 기는 연합함대 사령관 참모장 우가키중장과 다른 참모들이 탑승하였다.

일본 시각으로 4월 18일 6시, 야마모토 시찰단의 항공기들이 이륙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야마모토 육공기의 조종사는 베테랑 조종사인 고타니 다케오 준위였다. 야마모토는 부조종사석에 착석하였다. 부겐빌까지의 거리는 315마일이었다.

야마모토의 일행이 탑승한 두 기의 1식 육공기는 이륙하자 고도 6천5백 피트로 상승하여 부겐빌 방향으로 비행했다. 그를 호위하는 6기의 제로기들은 4시 방향의 우측 후방에서 1천5백 피트 더 높게 날며 비행했다. 호위기들은 일본 전투기들의 전통적인 3기 1개 편대의 V자 편대를 이루어 호위 비행을 했다. 호위 전투기 대장은 야나기야 겐지 비행 병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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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 1식 육상공격기 –약칭 육공기



반대편 과달카날에서도 미군기들이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격 위치로 이동했다. 이날 4월 18일은 두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가 항모 호넷을 이륙하여 일본 본토를 폭격한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첼의 공격대는 아침 07:25부터 과달카날의 쿠쿰 비행장을 이륙하기 시작했다. 야마모토가 이륙한 지 30분 뒤였다. 이륙 중 작전조의 짐 맥크라나한 중위의 P-38기가 타이어 문제로 출격이 취소된 것 외에는 순조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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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기 편대장 야나기야 병조장



그러나 이륙 후 작전조의 조 무어 중위의 P-38기에도 이상이 생겼다. 연료 탱크에서 엔진으로 연료가 주입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P-38 역시 출격을 취소하고 되돌아갔다. 야마모토를 공격할 작전조에서 두 기가 이탈하게 되자 엄호조에서 베스비 H 홈스와 레이몬드 K 하인 두 기를 이동시켜 작전조를 보강하였다.

지휘관 미첼 소령의 편대 4기는 선두에서 저공으로 날며 공격대를 선도했다. 그 바로 뒤를 작전조의 편대가 후속했다. 미첼의 장거리 비행 출격은 그때까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의 노련한 인도와 치밀한 비행으로 공격대는 계획보다 딱 1분 앞선 오전 9시 34분에 요격 계획 지점에 도착했다. 타이밍은 절묘하여서 P-38 조종사들은 엷은 안개 속에서 막 하강을 개시한 야마모토의 비행기를 발견하였다. P-38들은 보조 연료 탱크를 사출하고 우측의 야마모토 쪽으로 코스를 바꾸어 풀 파워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작전조 홈스의 P-38 연료 탱크가 사출되지 않았다. 그는 여러 방법을 써봤으나 연료 탱크는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는 동료 하인 기의 호위를 받으며 귀로에 올랐다. 미첼은 남아있는 작전조의 란피어와 바버에게 야마모토를 지체없이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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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바버 중위



야마모토 탑승기에 가장 근접해서 날던 제로기들은 갑자기 저공에서 출현하여 급상승하는 미군기들에게 크게 놀랐다. 일본 조종사들은 과달카날 출격으로 미국 P-38과 여러 번 공중전을 해본 경력이 있었다. 운동성이 둔한 P-38들은 대개 고공 높이 날다가 일본기를 발견하면 급속한 강하로서 일본기를 강타하고 도주하는 전법을 택하고 있었다. 그런 경험을 가진 그들에게 바로 저공에서 급상승하며 돌진해오는 P-38의 출현은 전혀 의외였다. 그러나 당황도 잠시, 제로기들은 보조 연료 탱크를 사출하고 두 P-38기에게 덤볐다. 이를 본 란피어 대위는 즉각 기수를 돌려 제로기 돌격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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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전투기- 정식 명칭은 영식 함상 전투기다



란피어 대위가 호위 제로기들을 가로막는 사이 렉스 바버 대위는 미군기의 공격을 회피하여 급강하로 도주하는 두 기의 육상 공격기들을 추격했다. 두 조종사 모두 적 폭격기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전법의 원칙을 따랐다. 그는 급횡전하여 육공기들의 후방으로 들어섰다. 바버는 즉시 육공기의 우측 엔진을 겨누고 사격을 개시하였다. 엔진에 충분히 화력을 퍼부었다고 생각한 그는 기수를 돌려 기관포와 기관총들의 화력을 기체 후부와 미익 부분에 퍼부었다. 이어서 좌측 엔진에 사격을 가하자 육공기는 검은 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이어 육공기는 좌측으로 기울며 급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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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란피어 대위



바버는 겨우 충돌을 모면할 수가 있었다. 그가 기체를 바로 잡고 되돌아보니 지상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그는 그 육공기가 격추된 것을 알았다. 바버는 부겐빌 섬의 해안을 따라 나무 높이로 비행하며 두 번째 육공기를 찾았다. 그는 어느 육공기에 고위 장성이 탑승했는지를 알 수가 없어 둘 다 격추해야 그 임무를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첫 격추된 비행기에 야마모토가 탑승해 있었다.

바버는 드디어 저공 비행으로 도주하는 두 번째의 육공기를 발견하였다. 연합 함대 참모장 우카기 마토메 중장과 일부 참모들의 탑승기였다. 육공기는 부겐빌 섬의 모이라 곶의 상공을 저공으로 날아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때 과달카날로 돌아가던 중 연료 탱크를 성공적으로 낙하 시키고 다시 되돌아온 홈즈 대위와 하인의 P-38기들이 이 육공기에 따라 붙었다. 홈즈의 사격은 육공기의 오른쪽 엔진을 명중시켜 흰 연기를 내뿜게 만들었다. 그러나 P-38은 지나치게 빠르게 접근하여서 엔진 고장으로 속도가 줄어든 육공기를 지나쳐 버렸다.

후속한 바버는 기회를 노려 파손을 입고 비틀거리는 육공기에 사격을 가했다. 육공기의 기체로부터 금속 조각들이 떨어져 나와 뒤에서 쫓아가는 바버의 P-38를 파손시켰지만 바버에게 공격 받은 육공기는 결국 해면에 추락하였다.

작전조의 목표였던 두 기의 육공기 격추에 성공한 후 바버와 홈즈, 그리고 하인의 3기들은 호위하던 제로기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무려 104발의 실탄이 바버의 P-38기에 명중하였으나 격추되지는 않았다. 이후 바버는 홈스와 공동으로 우가키 참모장 기의 격추 공로를 인정받았고, 우가키 참모장과 다른 두 명의 탑승원들은 살아 남아 구조되었다.

한편 공격 대장 미첼 소령의 엄호조는 제로기들과 잠시 엮여 들었으나 격추의 전과를 얻지는 못했다. 미첼은 야마모토의 추락 지점에서 나는 검은 연기를 보았다. 바로 이 시점에 홈즈의 동료기인 하인의 전투기가 사라져버렸다. 그는 바다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첼의 전투기들은 연료 소모가 한계에 달해 더 이상 상공에서 지체할 수가 없었다. 미첼은 임무 종료를 명령하고 기지로 기수를 돌렸다. 보조 연료 탱크 때문에 귀대하다가 다시 돌아오느라 연료 소비가 많았던 홈즈 대위의 전투기는 과달카날까지 귀환하지 못하고 도중의 러셀 섬에 불시착하여야 했다.

다음 날 라바울에서 긴급 파견되었던 연합함대 참모 와타나베가 비행정으로 정찰하여 추락 현장을 확인했고 즉각 수색대가 파견되었지만 수색대는 그 날 밤이 될 때까지 야마모토의 추락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야마모토의 추락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부대는 일본 육군 6사단 23연대 보병 포중대로 하마쓰나 소위가 지휘하는 부대였다. 그들은 추락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누가 그 육공기에 탑승했는지를 몰랐다. 그는 단지 고위 장성이 탑승했다는 정보를 전달받고 수색을 왔을 뿐이었다.

하마쓰나 소위는 탑승원들의 신원을 확인하려 했지만 불길에 너무 훼손되어 식별이 불가능했다. 다만 가죽 비행화에 잉크로 쓰여진 이름을 보고 신원을 겨우 알아 볼 수 있었다. 하마쓰나 소위는 다른 사체들과는 상당히 다른 탑승원의 시신에 유의했다. 그 사체는 추락 후 육공기가 불타면서 생긴 둥그런 원형의 면적 밖에서 발견되었는데 불에 타지 않은 온전한 상태였다. 그 시신은 멀리 튕겨져 나간 부조종사 좌석의 벨트에 매인 채 육공기를 등지고 앉아 있는 자세였고 그의 머리는 마치 낮잠을 자는 듯이 앞으로 숙여져 있었다. 야마모토의 시신이었다. 그에게서 1m 떨어진 곳에 약간 나이가 든 사람이 팔다리를 편 채 누워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연합 함대의 다카다 군의장이었다. 그는 단추가 풀어진 옷을 입고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였다. 군의장의 몸에서는 아무런 상처도 발견되지 않았다.

육공기를 조종했던 조종사 고타니 다케오 준위의 시신은 추락한 육공기에서 500여 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야마모토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P-38이 발사한 50 구경의 온전한 실탄이 아니었다. 야마모토의 몸에 작은 구멍을 내며 파고 든 것들은 실탄의 파편들이었다. 50구경 실탄이 육공기 기체를 뚫고 관통하던 중 부서지며 생긴 파편들이었거나 아니면 P-38에 장착된 20mm 포탄이 폭발하면서 생긴 파편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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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의 탑승기 잔해



야마모토와 추락으로 죽은 육공기 탑승원들의 화장식이 4월 21일 부인 해군 항공대 기지에서 거행되었다. 야마모토와 승무원들이 화장된 유해는 대형 비행정을 이용해 라바울로 이송되었다가 전함 무사시에 의해서 일본 본국 요코스카로 운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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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의 기함이었던 무사시



미군기 중 하인의 전투기만이 미첼 공격대가 입은 유일한 피해였다. 하인의 격추에 대해서 야나기야 대장이 자기가 한 P-38에게 사격을 가해 파손시켰다는 증언을 했으나 그 일본 호위 전투기대의 최고 에이스 스기다 쇼이치 병조장에게 격추당했다는 것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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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다 쇼이치 병조장



야마모토 격추 후에도 과달카날의 P-38들은 연일 부겐빌까지의 장거리 출격을 감행했다. 야마모토의 격추가 일본 암호문을 해독하여 이룬 결과가 아니라 이 지역에 집중한 공격 작전 중에 우연히 성공시킨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이후 야마모토 격추를 누가 했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2003년 조사를 끝낸 당국은 공식적으로 야마모토 격추를 렉스 바버의 단독 공로로서 인정하였다. 렉스 바버는 야마모토 격추 출격 이후에도 3기를 더 격추하였고 공군에 더 근무하다가 1961년에 대령으로 퇴역하였다.

그리고 야마모토의 호위기 조종사들은 주군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불충한 자들로 평가받아 6명의 조종사들은 생환하기 힘든 출격에 계속 투입되었다. 그리고 결국엔 야마모토 호위기 조종사 6명 중 5명이 전사하고 야나기야 자신도 과달카날로 출격을 했다가 팔 하나를 절단해야 하는 중상을 입고 후방으로 호송되었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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