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겨울전쟁 [3] - 약소국 저항의 상징이었던 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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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052회 작성일 16-02-0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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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전쟁



11월 26일, 몰로토프는 소련 주재 핀란드 대사를 소환하여 국경지대인 마이니라(Mainila)에서 핀란드군이 발사한 7발의 포탄으로 13명의 소련군이 사상 당하였다고 항의하였다. 흔히 ‘마이니라 포격 사건’으로 불리는 이 충돌은 마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벌인 글라이비츠(Gleiwitz) 방송국 사건1)처럼 소련의 자작극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핀란드가 포격을 하였다는 주장도 많아 현재까지도 논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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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개전의 빌미로 삼은 마이니라 포격 사건을 풍자하기 위해 1941년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당시 포탄에 마이니라라고 쓰는 핀란드군의 모습.



어쨌든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던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국교를 단절한 다음날인 11월 30일 공격을 개시하며 마침내 겨울전쟁이 시작되었다. 소련은 핀란드를 신속히 점령한 다음 일단 위성국가화한 후 기회를 봐서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하려 하였다. 국경 인근의 땅을 달라면서 트집을 잡았지만 애당초 소련의 목적은 핀란드의 전부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핀란드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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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 핀란드 침공전을 지휘한 메레츠코프. 훗날 38선 분할 당시 한반도 북부에 주둔한 소련군을 이끌어 우리와 악연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소련은 제7군이 카렐리야 지협을 통과하여 비푸리(Viipuri)로, 제8군이 라도가 호수 북부를 우회하여 만네르하임선 후방으로, 제9군은 국경 중앙부를 관통하여 오울루(Oulu)로 그리고 제14군이 북극해의 요충지인 페차모(Petsamo)로 각각 진격할 예정이었다. 소련군은 핀란드와의 전쟁을 한마디로 누워서 떡 먹기로 생각했다. 별다른 세부적 전술이나 대안도 없이 그저 압도적 전력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침략은 스탈린의 지시하에 처세의 달인인 국방장관 보로실로프(Kliment Voroshilov)가 주도했고 전선에서 4개 야전군을 진두지휘할 인물은 레닌그라드 군관구(Leningrad Military District) 사령관인 메레츠코프(Kirill Meretskov)였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도 했지만 군사적 능력은 평범한 수준으로 나름대로 처신을 잘해 대숙청의 광풍에서 용케 살아남은 인물이었다. 스탈린은 어느 누구에게 임무를 부여해도 핀란드 정복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련군의 자만



소련 공군이 핀란드 내 요지를 공습함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전력이 국경을 넘어 돌진했다. 국경 전초에 배치된 핀란드군은 눈 덮인 대지를 가르고 달려오는 엄청난 소련군 전차들을 막을 수단이 부족하였다. 결국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한 채 후퇴하였고 일선 소련군 지휘관들은 부하들에게 "너무 전진하다 국경을 넘어 스웨덴까지 들어가는 실수는 하지 마라"는 오만한 지시까지 하였을 정도로 승리를 자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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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 설치된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 소련군의 여유로운 모습. 선전 사진처럼 개전 첫 주의 상황은 소련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전선의 병사들도 점령 예정지를 신속히 차지하여 따뜻한 실내에서 희희낙락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적어도 전쟁 첫 주의 모습은 소련의 의도대로 그렇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침략자의 오만함은 12월 1일, 국경 도시 테리요키(Terijoki)를 임시 수도로 하여 지난 내전에 패해 소련으로 도주하였던 매국노 쿠시넨(Otto Ville Kuusinen)을 수반으로 하는 괴뢰 정부 ‘핀란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하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외세의 지배를 받은 후 어렵게 독립을 쟁취한 핀란드인들은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사실 정면충돌은 너무 무모하여 피하는 것이 맞기도 했지만 초전의 후퇴는 소련군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맞상대하여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잘 알고 있던 만네르하임의 작전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침략자에게 낯선 환경과 기후를 이용하여 게릴라전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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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매국노 쿠시넨(우)를 수반으로 성립된 괴뢰국인 핀란드 민주공화국과의 협정 조인식 모습. 자신 있게 전쟁을 개시한 소련 수뇌부의 거만한 모습이 역력하다.



공격 일주일째인 12월 6일, 카렐리야 지협을 통과하여 핀란드 영내 30~40km까지 들어온 소련군은 핀란드군이 엄폐하고 있던 만네르하임선에 도착하였다. 라도가 호수변의 타이팔레(Taipale)를 시작으로 방어선 곳곳에서 소련군의 돌파 작전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진군만 하여 온 소련군은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며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핀란드군의 대응



소련군이 달려들자 지뢰들이 폭발하였다. 우회하려고 해도 그곳 역시 핀란드군이 매설해 놓은 지뢰와 부비트랩이 있었다. 워낙 지형이 거칠어 한정된 좁은 길을 따라 일렬로 줄지어 진격하여 왔던 소련군은 선두가 만네르하임선에 막혀 전진을 멈추자 별다른 대형이나 방어선을 갖추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렀다. 덕분에 소련군 대열이 길게 신장되면서 부대 간 거리가 늘어나 측면이나 배후가 노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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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네르하임선을 향해 카렐리아 지협 지역을 통과 중인 소련 제7군.



한마디로 덩치가 너무 크다 보니 좁은 곳에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고 결국 그렇게 밤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주간에 항공기와 기갑부대의 지원을 받는 소련군이 우세했지만 해가 떨어진 밤이 되자 상황이 돌변하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에 낯선 설원에서 소련군이 더 이상 작전을 펼치기는 불가능하였다. 바로 만네르하임이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는 예하 지휘관에게 반격을 명령하였다.

12월 8일, 드디어 그동안 기회를 엿보던 핀란드군이 공격에 나섰다. 핀란드군은 신속하게 치고 빠질 수 있도록 부대를 소규모로 나누고 스키를 이용하여 고속으로 휘젓고 다니는 전법으로 소련군 진영을 흔들었다. 자만하여 경계병도 세우지 않고 숙영하던 소련군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핀란드군이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공격을 가하자 놀라서 아무 곳이나 총질을 하다 아군끼리 교전을 벌이는 한심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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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군은 위장 효과가 큰 설상복을 착용하여 스키를 타고 이동하며 기습을 하는 방식으로 소련군을 공격하였다.



이처럼 소련군이 자중지란에 빠지면 침투한 핀란드군은 즉시 현지를 이탈하여 인근에서 상황을 지켜보다 소련군 진영이 잠잠해지면 다시 침투하여 공격을 가하는 식으로 밤새 기습과 탈출을 반복하였다. 그러다 날이 밝으면 이번에는 멀리 엄폐한 핀란드군 저격수들이 정확한 사격으로 소련군을 공격하였다. 소련에게는 잊고 싶은 악몽 같은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었고 이런 패턴은 겨울전쟁 내내 반복된 일상이 되었다.




장작패기 전술



현대 유격전의 전범으로 언급되곤 할 만큼 그 전과가 훌륭했던 핀란드군의 기습 작전을 흔히 장착패기(Mottie) 전술이라 한다. 더구나 북극권인 핀란드의 동절기는 해가 떠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지형지물에 익숙한 핀란드군에게 절대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핀란드의 겨울은 단지 밤이 긴 것뿐만이 아니었다. 소련군에게 어둠 속에서 출몰하는 핀란드군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는 바로 동장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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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파고 숙영하다가 동사한 소련군의 시신. 추위에 익숙한 소련군에게도 핀란드의 겨울 혹한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영하 30도가 보통일 만큼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나라인데, 1939년 12월은 수시로 영하 40도까지 기온이 곤두박질쳤을 만큼 혹한이 이어졌다. 소련도 역사적으로 추위라는 무기를 적절히 사용하여온 국가였지만 이번 싸움터는 핀란드인들의 홈 코트였다. 더구나 핀란드 침공전에 동원된 소련군의 대부분은 소련에서도 따뜻하다고 할 수 있는 남부 우크라이나 출신 병력이어서 이런 무서운 혹한은 처음 겪는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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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에서 눈에 잘 띄는 군복을 입은 소련군은 핀란드 저격병의 손쉬운 목표물이 되었다.



핀란드군은 충분한 방한용 장비를 갖췄고 작전 후에는 신속히 귀대해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거점을 미리 마련하였다. 반면 핀란드군이 어지간한 곳을 미리 파괴해 버렸기에 소련군은 매섭게 몰아치는 북풍한설을 잠시라도 피할 곳이 없었다. 더구나 소련은 동계전투를 치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이니라 포격 사건과 별개로 이미 11월 15일에 스탈린이 전쟁을 월말에 개시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보니 준비를 갖출 시간이 너무 부족하였다.

또한 설상복으로 위장한 핀란드군을 소련군이 알아보기 힘들었던데 반하여 소련군은 흰 눈 속에서 눈에 너무 잘 띄는 일반 군복을 착용하여 핀란드 저격병들에게 손쉬운 목표물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소련군은 눈 속에 간신히 개통한 험로를 일렬종대 형태로 진군하는 방법을 바꾸지 않아 선두와 후미가 동시에 공격을 받으면 거대한 부대 전체가 오도 가도 못하고 순식간에 눈 속에 고립되었다가 무너져 내리고는 했다.



폴란드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독일이 벌인 자작극. 독일-폴란드 국경 지대의 독일 방송국을 폴란드 군복을 입은 독일군이 공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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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발행2016.02.0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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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독일이 벌인 자작극. 독일-폴란드 국경 지대의 독일 방송국을 폴란드 군복을 입은 독일군이 공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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