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기억과정 - 공부한 내용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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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28회 작성일 16-02-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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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인 부버가 “기억한다는 것이 바로 산다는 것(To remember is to live.)”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잠시만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주는 통찰에 공감이 갈 것이다. 사실 노인들은 자신의 모든 기억이 없어지는 치매 상태가 가장 큰 공포라고까지 말한다. 그러기에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심리학에서 기억만큼 중요한 연구 주제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될 내용에 따라 기억을 잘하는 방법도 다르다. 이번 글에서는, 여러분이 심리학개론이나 경제학원론과 같은 교과서의 한 장(예, 기억과정)을 공부하고, 나중에 그 장에 관한 내용을 단답식이나 주관식 문제로 시험을 본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기억을 잘 해내 ‘A’를 받는 답안을 쓸 수 있겠는지, 기억에 관한 연구와 관련 지으며 생각해보자.



수동적인 저장을 넘어 능동적인 구성으로



기억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의 기억과정에 관한 이해가 어느 정도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기억을 비디오 촬영이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한글 파일을 저장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다. 저장할 내용을 이미지나 디지털 부호로 바꿔, 기기 안 공간에 집어넣어 두고, 필요하면 꺼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수동적인 저장을 넘어서 능동적인 구성을 포함한다. 외부 정보를 받아들여 부호화(encoding)하고, 이를 유지 혹은 저장(storage) 하였다가, 끄집어 인출(retrieval)하는 정보처리과정에 구성적 처리가 관여한다. 예를 들어, 범행 장면을 목격하고 그림처럼(이미지부호) 생생하게 머릿속에 저장했던(부호화) 내용이, 시간이 지나며 과거에 알고 있던 범죄사건 기억과 섞여, 법정 증언(언어부호)에 포함될(인출) 수도 있다. 세 과정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기억의 성공과 실패(망각), 정확한 기억과 왜곡, 추론과 편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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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Q4R 학습 방법



한 장의 내용을 처음부터 무작정 읽기 시작하기 전에 우선 전체 장의 구성을 훑어보는 것이 좋다. 전체 장이 어떤 하위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락의 제목은 무엇이고, 다시 어떤 하위 문단들로 나눠져 있고 그 문단에 붙여진 소제목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 전체 구조를 노트에 다시 한 번 적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부할 내용이 어떤 구조로 되었는지, 공부할 내용이 각기 어떤 부분에 들어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종의 틀을 만드는 작업이다. 아울러 책장을 넘기며, 재미있어 보이거나 관심을 끄는 그림, 도표 등도 훑어본다. 나중에 정독을 할 것이기에 이해가 안 돼도 상관없다(Preview, 훑어보기).

훑어보며 해야 할 중요한 작업은 마음에 떠오르는 의문과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호화’라는 단어를 보고, “내가 아는 것은 모리스 부호인데, 기억도 이런 부호란 말인가?”라는 식의 의문을 갖는 것이다. 백지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알고 있는 사전 지식과 연결시키는 것이 학습이다. 의문이 떠오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연결을 시도하는 과정이다. 물론 어떤 의문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소제목을 그냥 질문으로(“인출이란 게 뭐야?”) 만들면 된다. 질문을 만드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기에 적극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Question, 의문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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훑어보기-의문제기-능동적 읽기-뜻을 암기하기-숙고하기-복습하기의 여섯 과정이 기억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출처 : NGD>


다음은 읽는 과정이다. 꼼꼼히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며, 훑어보면서 생겼던 의문의 답을 찾도록 한다. 그리고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표시를 하고(나중에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질문 할 수 있도록), 한 문단 읽기를 마친 후에는, 그 문단의 요지를 한 두 문장으로 다시 요약해 책 옆 공간이나 노트에 적어본다. 이 세 과정은 말하자면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며 읽기를 하라는 것이다. 특히 핵심 요지를 쓸 수 없다면, 이해에 실패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교과서 읽기 전후에 강의나 수업을 듣는 것이 보통이기에, 수업 내용과 책 읽은 내용을 연결시키도록 한다. 자신이 요약했던 노트와 강의 노트를 합쳐 새롭게 내용을 구성하면 금상첨화다.(Read, 능동적 읽기)

읽을 때나 읽고 나서 해야 할 중요한 작업은, 새로 접한 용어들(개념)을 잘 암기하는 것이다. 내용이 새롭다는 것은 필수적으로 새로운 용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암기하라는 것은 용어들을 단순히 앵무새처럼 입으로 반복하라는 것이 아니다. 용어가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하여,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며, 용어의 구체적이 예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책에서 주요 용어들은 본문에서 고딕과 같은 다른 폰트로 표시하거나 장의 끝 부분에 따로 모아 놓는다.(Recite, 뜻을 암기하기)

한 장의 읽기가 끝났다면 내용을 전체적으로 숙고해보는 담금질 과정이 필요하다. 한 장의 구조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고, 각 단락과 문단에 포함된 내용을 기억해 보고, 주요 용어를 스스로 설명해 보고, 수업에서 중요하다고 언급되었던 내용이 무엇인지를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이다. 기억이 잘 안 되면 책이나 노트를 다시 보고 확인한다.(Reflect, 숙고하기)

지금까지의 과정을 정리하자. 1) 한 장의 내용이 어떻게 조직, 구성되었는지를 파악하고 머릿속에 기본적인 틀로 만들어 놓고, 2)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3) 읽으면서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고 실패하는 경우 다시 읽거나,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여 해결해야 하고, 4) 주요 용어들을 잘 이해하여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며, 5) 이 네 가지 작업을 머릿속에서 연습한다. 6) 그리고 시험을 앞두고 이 전 과정을 다시 한 번 복습(Review)하면 된다. 이 여섯 과정이 PQ4R(Preview, Question, Read, Recite, Reflect, Review)이라고 불리는 학습 방법이며 기억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인출연습에 관한 실험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는 기억 전략으로 인출연습(retrieval practice)이 있다. 인출연습이란 말 그대로 학습한 내용을 끄집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했던 주요 용어들을 인출연습 한다면, 용어들을 목록 카드에 하나씩 적은 후 한 카드를 뽑아 나온 용어를 설명해본다. 그리고 모든 용어를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혹은 스스로 주관식 문제( 예, “기억의 종류를 비교하라”)를 내고 답을 써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스스로 출제자가 되어 문제를 내고 시험을 봐 기억을 검사해 보는 모든 방법이 인출연습이다. 그래서 검사효과(testing effects)라고도 부른다.

최근에 SCIENCE 지에 실린 실험 논문이 인출연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40개의
스와힐리어-영어 단어 쌍(mashua-boat)을 다음과 같은 네 조건에서 학습하도록 하고 비교하였다.

1) 14547364253282.jpg조건: 40개 단어 쌍을 학습한 후 스와힐리어 단서를 주고 영어 단어(즉, mashuta - ?)를 기억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부와 검사(Study-Test)를 하나의 묶음으로 4번 반복한다.

2)14547364259234.jpg조건: 40개 단어 쌍을 학습한 후 스와힐리어 단서를 주고 영어 단어(즉, mashuta - ?)를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 네 번째공부-검사 묶음까지는 검사에서 기억해 내지 못한 단어 쌍만 다시 학습하도록(Sⁿ) 하고, 검사는 40개의 단어 쌍 모두에 대해 반복한다.

3)14547364265492.jpg조건: 40개 단어 쌍을 학습하고, 스와힐리어 단서를 주고 영어 단어(즉, mashuta - ?)를 기억하게 한 후, 두 번째부터 네 번째 공부-검사 묶음까지는 모든 단어를 다시 학습 시켰지만 검사에서는 기억해 내지 못했던 단어 쌍만 검사(Tⁿ)한다.

4)14547364271478.jpg조건: 40개 단어 쌍을 학습하고 스와힐리어 단서를 주고 영어 단어(즉, mashuta - ?)를 기억하게 한 후, 두 번째 공부-검사 묶음부터는 검사에서 기억해 내지 못한 단어 쌍만 다시 학습 하도록(Sⁿ) 하고, 검사에서도기억해내지 못했던 단어 쌍만 검사(Tⁿ)한다.

이 네 가지 방식으로 공부와 검사를 했던 실험참가자들을 일주일 후에 다시 불러 40개의 단어 쌍에 대해 기억검사(즉, mashuta - ?)를 실시하였다. 실험상황이 독자들에게는 다소 복잡하겠지만 실험결과를 예측해 보자. 일주일 지난 후에도 어느 조건에서 기억을 더 잘했을까? 만약 반복학습이 반복검사보다 중요하다면 1), 3) 조건이 1), 2) 조건보다 더 좋을 것이고, 반복검사가 더 중요하다면 반대의 예측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다시 학습 할래, 검사를 받을래?”를 선택하게 하면 다시 학습하겠다는 것이 보통이다. 즉 기억을 인출하는 검사를 받기보다는 다시 공부하는 것이 기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이러한 상식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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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출연습 실험결과


그림에서 나타난 것처럼 반복적으로 검사했던 조건(1과 2)이 다른 두 조건(3, 4)에 비해 훨씬 기억을 잘하였다. 이 결과는 인출연습 즉 시험이나 검사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검사과정에서도 학습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근의 역시 같은 잡지에 실린 다른 실험 결과는 인출연습이 학습할 내용(단어 쌍)을 매개하는 요인에 영향을 끼친다는 가설을 제안하고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추후 연구를 통해 보다 자세한 기제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훈은 확실하다. 인출연습의 ‘R'을 포함시켜 PQ5R이 기억을 잘하게 하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J. D Karpicke, H. L. Roediger III, Science 319, 966(2008); M. A. Pyc, K. A. Rawson, Science 330, 335(2010).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며 [인지공학심리학:인간-시스템 상호작용의 이해], [언어심리학], [인지심리학], [현대심리학개론]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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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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