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시간과 기억 - 왜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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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0회 작성일 16-02-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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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은 시간 차원에서 나뉜다. 우리가 현재 생각하고 있으며, 스스로 깨닫고 있는 자신의 의식 경험을 심리학도들은 단기(짧은)기억이라고 부른다. 의도적으로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30초 정도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되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경험 하듯, 방금 들었던 전화번호나 사람 이름을 곧 잊게 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중얼거리며 외우든지 적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 의식 공간에서는 여러 정신적인 활동과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작업(일하는)기억이라고도 부른다.

30초를 벗어나, 몇 분에서부터 몇 년 혹은 몇 십 전에 일어났던 여러 사건이나 알고 있는 정보들을 모두 뭉뚱그려 장기(긴)기억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다루지 않지만 장기기억에 있는 정보를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구분하는 것은 가능하다. 기억을 시간이라는 차원에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시간 흐름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이 기억과 밀접하게 관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다.


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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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점점 한 해가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출처: gettyimages>


연말 연시가 되면, 화살과 같이 지나간 한 해를 허망해 하는 한탄을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게 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점점 한 해가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걸까? 우리 삶에서 시간의 흐름이 단순히 시계 바늘의 움직임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 년은 일 년이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며, 나이든 분들의 넋두리라고 치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주관적인 느낌과 생각도 심리학도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시간과 시간의 흐름은 우리가 직접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기에,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과 해석(이를 시간 지각이라고 부를 수 있다)이 우리 인간의 마음 작용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들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마도 이러한 주관적인 느낌이 기억의 문제일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여러 새로운 경험이 젊었을 때보다 더 줄어들고 그래서 머릿속에 특별히 남게 되는 기억들이 적을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에게는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들이 첫 경험이 되는 것이고 그러기에 뚜렷한 기억 흔적으로 남게 된다. 첫 만남, 첫 여행 등등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이가 든 중장년층에게는 회사 가고, 일하고, 퇴근하는, 같은 일상들이 쳇바퀴처럼 돌아가게 된다. 이 연령에 해당하는 독자라면 자신이 최근 새롭게 경험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아마도 별로 없지 않을까. 연말연시에 지난 한해를 회상해보니 무엇을 했는지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한 해 동안의 특별한 기억들이 없다 보니 그 해가 빨리 지나간 것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간 흐름이 빠른지 느린지의 주관적인 느낌은 회상해 낼 수 있는 기억 흔적들의 수에 의존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설명을 여러 심리학자들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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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 경과가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비율로 계산된다면 스무 살짜리에게 일 년은 1/20이고, 육십 어르신에게는 1/60이 되어 일 년을 더 짧게 즉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출처: gettyimages>


나이에 따라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을 굳이 기억과 관련시키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시간 경과는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비율로 계산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스무 살짜리에게 일 년은 1/20이고, 육십 어르신에게는 1/60이 되어 일 년을 더 짧게 즉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나이가 시간의 흐름을 평가하는 인지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왜 살아온 세월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상대적인 평가의 분모가 되는지를 다시 설명해야 되지만 말이다.

특히 장년 이후의 어른들이 주로 하는 말이기에 “늙어서”라고 즉 인지적 혹은 생리적 노화로 설명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며 대뇌의 활동을 좌우하는 신경세포들 간의 전달 속도가 떨어지고 그래서 신체 리듬, 시간 지각, 주의 집중력 등 대부분의 심리적 기능이 느려진다. 그리고 이런 기능 저하가 오히려 외부 변화를 빠른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우리들이 천천히 걷을 때 정상적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반대로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느낌, 나이 탓만은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우리가 당연시 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 사실일까? 심리학자인 프리드만과 엔센이 네덜란드와 뉴질랜드의 16세에서 80세까지의 1865명에게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지난 일주일(혹은 지난달, 지난해, 지난10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를 응답받고, 나이와의 관련성을 통계적, 실험적 방법으로 분석한 연구가 있다. 흥미로운 결과는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으로 응답하였으며, 실제 나이에 따른 차이가 아주 작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나이 탓만은 아니라는 시사를 주는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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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시간 안에 여러 일들을 마무리 짓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남은 시간을 생각하게 되고, 시간 흐름에 민감해지는 게 보통이다. <출처: gettyimages>


그러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느낌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이 연구자들은 “시간 압박(time pressure)”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여러 일들을 마무리 짓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남은 시간을 생각하게 되고, 시간 흐름에 민감해지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시간이 충분치 않아 일을 마치지 못했던 이러한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일반적인 기분이나 느낌을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아주 바빴던 해를 돌이켜 볼 때 유독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끼게 되는 현상이 이 설명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이 나이를 먹어가며, 그때그때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치여 살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끼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설명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간적인 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노후에 오히려 시간이 더 늦게 지나가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그래서 위 설명이 주는 교훈은 명확해 보인다. 지난해를 돌이키며 한 해가 너무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내가 점점 늙어가고 있구나” 한탄하지 말고, “내가 지난해를 아주 바쁘게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구나” 여기며 오히려 스스로를 칭찬해도 좋을 것 같다.

어느 한 설명만으로 주관적인 시간 지각의 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심리학도들이 설명해야 할, 시간의 흐름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가 달라지는 여러 흥미로운 현상들이 있다. 재미있는 몰입 상태에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느낀다든지, 어느 장소를 찾아갈 때, 갈 때보다는 돌아올 때 더 빨리 온 것처럼 생각되는 현상이 예가 된다.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해본다.


*이글은 필자가 모일간지에 투고했던 글을 증보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참고문헌

  • Friedman, W. & Janssen, S.M.J. (2010). Aging and the speed of time. Acta Psychologica, 134, 130-141.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며 [인지공학심리학:인간-시스템 상호작용의 이해], [언어심리학], [인지심리학], [현대심리학개론]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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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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